[비즈한국] 2019년 천문학자들은 거대한 타원은하 M87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 전역에 설치된 전파 망원경을 총동원한 역사적인 프로젝트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을 통해 이룬 성과다. 이후 2022년 이번에는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의 모습까지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관측에 더 시간이 걸린 이유는 별과 먼지 구름의 밀도가 높아 시야가 빽빽하게 가려져 찍기가 더 어려워서다.
블랙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블랙홀, 검은 구멍이란 이름 자체가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 아닌가? 그런데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는 블랙홀의 모습을 대체 어떻게 사진으로 찍는다는 걸까?
맞는 말이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블랙홀 자체를 사진으로 찍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 그 바깥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충분히 볼 수 있다. 블랙홀은 아주 강한 중력으로 주변에 많은 물질을 끌어당긴다. 블랙홀 곁에 빠르게 맴도는 물질은 뜨겁게 달궈지면서 빛을 낸다. 그 빛의 흔적을 본 것이 바로 지난 2019년과 2022년의 관측 이미지다.
M87 중심과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 모두 특징적인 빛의 고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가운데는 까맣게 텅 비어 있다. 이 안에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주의 가장 깊은 어둠, 사건의 지평선이 숨어 있다.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간 모든 것은 절대 밖으로 탈출할 수 없다. 블랙홀 자체는 점이지만 천문학자들은 보통 블랙홀의 규모를 비교할 때 사건의 지평선 크기로 비교한다. 아쉽게도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블랙홀 주변 극단적으로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날아온 빛의 고리를 볼 수 있다. 주황색 도넛처럼 보이는 것이 인류가 확인한 블랙홀의 그림자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관측한 데이터는 현재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돼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아카이브 데이터를 새롭게 분석한 일부 천문학자들이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주황색 도넛 모양의 블랙홀 이미지가 사실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이 만든 것처럼 주황색 도넛 모양의 블랙홀 이미지를 재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본 블랙홀의 인증샷은 정말 잘못됐을까?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이 겨냥한 두 블랙홀은 사실 하늘에서 아주 작게 보인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400만 배 정도의 질량을 갖는다. 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크기는 겨우 1억 6000만 km 수준이다. 수성 궤도 지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무려 2만 7000광년 떨어져 있다. 지구의 하늘에서 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고작 0.00001° 정도 너비, 정말 점 수준으로 작게 보인다. 간단하게 비유하면 달 정도의 거리에 떨어진 작은 도넛을 보는 수준이다. M87 중심 블랙홀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로 작은 천체를 선명하게 구분해서 보려면 아주 거대한 망원경이 필요하다. 거의 지구 크기만 한 거대한 접시가 필요하다. 물론 그런 거대한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다. 대신 천문학자들은 지구 전역에 분산된 전파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동기화해서 합치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여러 대의 전파 망원경으로 동일한 천체를 관측하는 방식을 전파 간섭계라고 부른다.
다만 전파 간섭계에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지구의 모든 면적을 다 전파 망원경으로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거대한 전파 간섭계 곳곳에는 빈 틈이 생긴다. 여러 개의 조각 거울을 다 모아서 하나의 매끈한 거울을 만들지 못하고 중간중간 구멍이 뚫린 채로 거울에 비춰보는 셈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서 중간중간 미처 채우지 못한 거울 조각에 어떤 모습이 비쳤을지를 추적해서 블랙홀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최근 마코토 미요시를 비롯한 일본 천문학자들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관측 결과를 활용해서 2022년에 공개된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이미지를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유명한 주황색 도넛 모양의 블랙홀 이미지를 다시 만들지 못했다. 대신 고리 모양이 아닌 단순히 하나의 덩어리진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기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관측만으로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와 사건의 지평선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 블랙홀 이미지에서 구현된 빛의 고리의 크기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이 분해할 수 있는 한계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천문학에서 광원에서 날아온 빛이 얼마나 퍼져 보이는지를 ‘점 확산 함수(Point spread function)’로 나타낸다. 원래는 한 점으로 보여야 하는 빛이 망원경을 거치면서 사방으로 둥글고 펑퍼짐하게 보인다. 이러한 형태를 PSF라고 부른다. 이번 문제를 제기한 연구진은 당시 관측에 사용된 망원경들의 배치와 성능을 고려했을 때, 상이 얼마나 펑퍼짐하게 보일 수 있는지 그 PSF의 한계가 사진에 찍힌 빛의 고리와 거의 비슷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선명한 빛의 고리 형태보다는 오히려 하나로 뭉개진 얼룩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존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이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위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오류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은 이론적으로 구현한 블랙홀의 이미지 모델을 바탕으로 관측 데이터를 재구성했다. 그런데 애초에 이론적으로 구한 모델 이미지 자체가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 해당하는 빛의 고리 형태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실제 관측 성능이나 한계에 맞지 않은 그저 이상적인 고리 형태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학습시켰기 때문에, 실제로는 관측되지 않은 고리 형태의 이미지가 가짜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22년 6월 사건의 지평선 연구팀은 처음으로 미요시 팀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게시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측 결과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은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미요시의 연구팀이 자신들의 관측 결과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별다른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결국 미요시 연구팀은 연이어 M87 은하 중심 블랙홀의 이미지 분석에서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빛의 고리는 실제 관측되지 않은 허상이라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에게 더 자세한 반박과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를 했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은 별다른 반박 없이 잠잠했다. 그러다가 최근 2024년 10월 29일 공식 블로그에 미요시 팀의 분석을 반박하는 자세한 글을 올렸다.
우선 사건의 지평선 연구팀은 미요시 팀이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변동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은 M87 중심 블랙홀에 비해 훨씬 질량과 규모가 작다. 그만큼 주변 사건의 지평선 크기도 작고 블랙홀에 붙잡힌 물질도 더 빠르게 회전한다. 블랙홀 주변 빛도 더 빠르게 요동치고 계속 모습이 바뀐다. 실제로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 빛의 모습은 거의 10분 단위로 요동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의 지평선 팀은 이러한 변동성까지 모두 고려해 시간의 변화에 따른 블랙홀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요시 팀의 분석은 이런 변동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이후에 진행된 편광 관측에서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의 존재가 확인된다는 증거도 제시했다. 실제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은 블랙홀 주변에 편광된 빛을 관측해 그 주변 자기장이 어떻게 꼬여 있는지에 대한 관측 증거도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미요시 팀의 반박에 다시 재반박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도 한 발짝 물러나 조금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미요시 연구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의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외부 분석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실제로 이제는 미요시 연구팀뿐 아니라 몇몇 독립된 연구팀에서 기존 고리 모양의 블랙홀 이미지가 왜곡된 결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블랙홀 주변에 고리 모양의 사건의 지평선이 아예 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망원경 성능으로 고리 모양의 뚜렷한 사건의 지평선까지 보는 게 불가능한데도 고리 모양일 거라는 기대 아래 학습시킨 알고리즘을 사용한 바람에 ‘보고 싶은 걸 보게 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21세기 인류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블랙홀의 이미지 촬영, 그 역사적인 사진이 어쩌면 잘못된 사진일 수도 있다니! 아직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이번 논란을 블랙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건 곤란하다. 주황색 도넛 모양의 블랙홀 이미지를 지지하는 쪽이나 지지하지 않는 쪽이나, 우주에 블랙홀이라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촬영한 그 괴물의 초상화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괴물의 초상화가 맞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봐야 한다.
결국 주황색 도넛 모양 블랙홀의 사진이 잘못된 결과로 판명 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데이터를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누구나 검증할 수 있도록 공개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의 태도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도 더 정확하게 블랙홀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주황색 도넛 모양의 블랙홀 사진은 마지막까지 블랙홀의 인증샷으로 남게 될까, 아니면 잠깐 오해한 블랙홀의 왜곡된 모습으로 남게 될까. 앞으로도 천문학자들은 역사적인 블랙홀의 인증샷을 기념하면서 계속 도넛을 먹을 수 있을까?
현재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팀은 앞으로 더 많은 망원경을 투입하고, 동시에 전파 대역에서의 우주 망원경 관측까지 계획하면서 훨씬 선명한 분해능으로 M87과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이미지를 추가 관측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아가 단순히 사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예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가 실시간으로 어떻게 요동치는지, 블랙홀 주변 물질의 변동성을 마치 움짤 영상처럼 촬영하려는 시도까지 계획하고 있다. 추가 관측이 진행된다면 최근 뜨겁게 달궈진 블랙홀 이미지 논쟁이 해결될 것이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34/4/3237/7660988?login=fals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6ddb
https://eventhorizontelescope.org/blog/imaging-reanalyses-eht-dat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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