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언론에 공개된 5화까지 보고 쓴 것으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비즈한국] ‘또 오해영’ 서현진과 ‘도깨비’ 공유라니,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조합이다. 여기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를 연출한 김규태 PD가 가세했다. ‘기간제 결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미스터리 멜로 ‘트렁크’다. 11월 29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트렁크’에 대한 기대는 작을래야 작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트렁크’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다. 노인지(서현진)는 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 NM(New Marriage) 소속 직원으로, 이제 다섯 번째 결혼을 맡았다. 상대는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불안과 외로움에 잠식된 음악 프로듀서 한정원(공유).
특이한 점은 한정원의 기간제 결혼을 추천한 사람이 한정원의 전처 이서연(정윤하)이란 점이다. 여전히 전처에게 집착하는 한정원에게 이서연은 1년의 기간제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는 그를 보지 않을 거라 협박하며 이 특이한 결혼을 받아들이게 했다.
물론 예상 가능하듯 노인지와 한정원은 점차 서로가 신경 쓰이고, 신경 쓰다 보니 서로 가까워진다. 결혼에 상처가 있어 아예 위악적으로 결혼생활 속 아내를 직업으로 선택한 여자와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진절머리 나는 가정폭력을 지켜봐야 했고 자신의 결혼 또한 상처로 남은 남자. 계약으로 묶여 한 공간에서 사는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게 되는 건 불문가지다. 이런 흐름만 있다면 그냥 멜로거나 로맨틱 코미디로 가능할 텐데, ‘트렁크’는 미스터리를 한껏 끼얹는다.
화려한 무늬의 트렁크가 호숫가에 떠오르면서 살인사건이 암시되는데, 초반에는 죽은 사람이 누군이지도 알려주지 않아 궁금증을 키운다. 또한 한정원에게 기간제 결혼을 추천한 이서연은 자신 또한 기간제 결혼으로 남편을 맞은 상황인데, 전처와 전남편과 현처와 현남편이라는 도무지 한 공간에 함께하면 안 될 이들이 걸핏하면 마주하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간제 결혼과 가짜 배우자라는 파격적인 소재 외에도 ‘트렁크’는 불편하게 여겨질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결혼과 배우자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배금주의부터 가정폭력, 집착과 스토킹, 동성애와 아웃팅, 가스라이팅,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극적인 요소들이 배치돼 있고, 수위 높은 베드신도 포함돼 있다. 물론 자극적인 면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고려하고, 막장 요소도 최대한 품위 있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느껴지긴 한다. 문제는 이들이 서사가 유기적으로 얽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것.
노인지와 한정원 사이의 관계성은 좋다. 서로 상처가 있는 인물들이 계약 결혼으로 가까워진다는 서사는 여러 웹툰과 웹소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거니와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다뤄져 익숙한 편이다. 결혼에 대한 상처를 공유하는 노인지와 한정원을, 내밀한 감정 연기에 뛰어난 서현진과 공유가 맡아 유려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이들에 이서연과 그의 기간제 남편 윤지오(조이건)이 붙으면 도무지 서사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한정원과 이서연에겐 아직 남은 감정과 상흔이 있지만, 이서연이 이렇게까지 하는 속내는 짐작하기 어렵다. 서현진-공유에 반해 정윤하-조이건의 연기 톤이 조금 튀는 편이라 어떤 부분에선 몰입이 깨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노인지를 쫓아다니는 스토커 엄태성(김동원)의 존재도 극에 긴장감을 한껏 불어넣는 인물이긴 한데, 그에 따른 서사가 빈약해 아쉽다.
일정 부분 키를 쥐고 있는 듯한 권도담(이정은)과 노인지의 친구(전혜진)를 포함해 신스틸러 조연과 특별출연한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비밀스러운 기간제 결혼을 주도하는 NM의 대표로 엄지원이 출연하고,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로 최영준이 나온다. 이외 이기우, 정경호, 차승원 등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등장한다.
남은 3회차를 보면 흩어져 있던 서사가 완결될지 모르겠지만 5화까지 시청한 소감을 말하자면, 극중 나오는 이 대사 같은 느낌? “뭐가 너무 많은데, 뭐가 너무 없어.” 참고로 ‘트렁크’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을 쓴 김려령 작가의 소설 ‘트렁크’를 원작으로 한다. 단, 각색이 꽤 있는 편이라 원작을 읽었어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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