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을 업체 선정을 앞두고 고소·고발전을 이어가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이 일단락됐다. 양 사가 상대방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며 겉으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만 갈등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을 놓고 양 사의 견해가 엇갈리는데, 일부 경찰 수사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이 지난 22일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여부를 가려 달라며 냈던 경찰 고발을 취소했다. 한화오션 측은 “세계가 대한민국 조선업을 주목하는 가운데 해양 방산 수출 확대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고발 취소로 상호 보완과 협력의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도 25일 한화오션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 취하서를 내면서 화답했다. HD현대중공업 측도 “국내 조선산업 발전과 K-방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취하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글로벌 조선 시장이 중국의 수주량 독주로 위협받는 상황과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 캐나다 잠수함 도입 등 해외 대형 사업 수주를 위해 국내 대표 조선업체끼리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실제 한국을 제외한 일본, 독일, 스페인 등 해양 방산 강국은 모두 ‘원 팀’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두 회사의 고소·고발 취소 뒤에는 평소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의 만남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양 사는 각자 보유한 함정 기술과 연구개발(R&D) 역량을 모아 K-방산 해외 진출 확대를 도모하자는 정부의 원 팀 전략에 적극 협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 분야 첫 협력은 캐나다가 추진 중인 ‘캐나다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CPSP)’에서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3000t급 잠수함 8~12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다만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KDDX 사업 건조업체 지정이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양 사가 각자 유리한 입지에 서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오션은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방산업체 지정 신청’을 낸 상태다. 이를 산자부가 받아들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복수 업체로 지정하면 방위사업청은 추후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 방식 중 하나를 택해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방사청은 내년 상반기에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 착수를 목표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종건 방사청장은 “현실적으로 올해까지는 사업자를 선정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내년 전반기에 빠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관례대로 기본설계를 맡은 자사가 수의계약 방식을 낙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자사 군사기밀을 불법 유출해 유죄가 확정됐고 계약의 기본은 경쟁이 원칙인 점 등을 들어 입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의 방산업체 지정 신청을 철회해야 한다며 단독 건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한화오션은 방사청이 제안한 ‘공동 개발·동시 건조’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 작업을 나눠서 진행하고 함 건조도 함께하는 방식이다.
한편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고발을 취소했지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기에 경찰 수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고발을 취하한 한화오션의 입장을 고려해 조만간 수사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HD현대와 한화오션이 협력해야 전력화 납기 일정을 맞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방사청이 특정업체 손을 들어주는 순간 법적 리스크라는 부담이 생긴다. 기본설계와 상세설계 업체를 분리하는 것이 사업 지연의 요소가 되는 만큼 HD현대가 초도함 건조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한화오션의 피해를 고려해, 두 회사가 협의해 상생과 전력화 납기 일정을 동시에 잡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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