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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혁신하기 좋은 계절" 핀란드 '슬러시 2024'를 다녀오다

북유럽 혹독한 겨울 이겨내려 탄생…올해는 AI·헬스테크 기술 활용한 혁신적 솔루션 대거 소개

2024.11.28(Thu) 10:41:40

[비즈한국] 지난 주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유럽 3대 스타트업 축제 중 하나인 ‘슬러시(Slush)’가 열렸다. 유럽 최북단에 있는 혹독한 핀란드의 겨울은 오후 4시만 되어도 칠흑같이 어둡다. 춥고 어둡고 침울한 긴 겨울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언가에 몰두하기 딱 좋다. 리눅스(Linux)가 헬싱키공과대학 출신 대학생에게서 탄생한 것이나 핀란드에 게임스튜디오가 약 250개에 이를 만큼 게임산업이 발달한 것도 모두 이 혹독하게 좋은(?) 조건 때문일 것이다. 

 

슬러시는 올해로 16회를 맞았다. 슬러시 2024에는 1만 3000명이 넘는 참가자와 3300명의 VC 및 투자자, 5500명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모였다. 특히 AI, 헬스테크, 지속 가능성 분야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드라마틱하게도 슬러시가 시작된 11월 20일 헬싱키에 첫 함박눈이 내려 온 거리에 눈이 쌓였다. 사람들은 흙과 눈이 섞여 질척이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슬러시’라는 이름을 제대로 느끼며 혁신에 대해 밤새 토론을 했다. 

 

‘​슬러시 2024’​ 개막일에는 함박눈이 내려 ‘슬러시’라는 이름에 딱 맞는 행사가 되었다. 사진=slush


#슬러시에 등장한 주목할 만한 유럽 스타트업

 

행사에는 AI 및 헬스테크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솔루션이 대거 소개되었다. 오스트리아 기반의 아테리오스코프(Arterioscope)는 심혈관 질환 조기 진단 기술을 선보였다. 아테리오스코프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에서 분사한 스타트업으로 최근 ‘AI 기반 진단’이라는 트렌드에 매우 적합한 솔루션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특히 ‘슬러시 100’ 경연대회에서 Top 20에 들어, 본 행사 준결승 무대에 올라 전 세계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슬러시 100무대에 오른 오스트리아 헬스테크 스타트업 아테리오스코프(Arterioscope)​. 사진=slush 유튜브 캡처


독일 바이오테크 기업 세나라(Senara GmbH)는 지속 가능한 유제품 생산 기술을 발표했다. 동물 친화적으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세포 기반 추출을 통해 유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은 기존 농업 방식에 비해 환경 영향을 크게 줄이면서도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세나라도 슬러시 100의 준결승 무대에 올라 많은 이들 앞에서 ‘유제품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솔루션을 소개했다. 세나라는 EU 혁신 기금을 지원받고 있다. 

 

슬러시에서 발표하는 세나라 CEO 스벤야 다네비츠 프로세다(Svenja Dannewitz Prosseda). 사진=Senara Linkedin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술 기업 슬라이(SLY)는 태양광 센서를 활용한 산불 및 가스 누출 탐지 기술을 소개했다. 슬라이는 자체 개발한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98% 이상의 정확도로 산불 및 가스누출 등 이상 상황을 감지한다. 

 

슬러시 100 준결승에 진출한 환경 기술 스타트업 슬라이(Sly). 사진=slush 유튜브 캡처


그 밖에 슬러시 100 무대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스타트업들이 여럿 있었다. 런던 기반의 콘텐트레이더(ContentRadar)는 AI를 활용한 콘텐츠 관리 플랫폼을 선보이며 마케팅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소개했다. 브뤼셀에 본사를 둔 마이너스 AI(Miners AI)는 AI를 통해 지질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해, 광물 시스템을 예측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광물을 탐사하는 솔루션을 선보였다. 광물 탐사 산업에서 특히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슬러시 100(Slush 100) 우승한 헬스테크 ‘오아시스 나우’

 

슬러시 100(Slush 100) 피칭 대회는 슬러시의 핵심 이벤트 중 하나이다. 스타트업들은 100만 유로(14억 6300만 원)의 투자금을 두고 경연한다. 이번 대회의 스폰서는 미국의 VC 제네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와 베를린 기반의 VC 체리 벤처스(Cherry Ventures)다. 

 

제네럴 카탈리스는 전 세계 700개 이상 기업에 투자했고, 에어비앤비(Airbnb), 스트라이프(Stripe), 스냅(Snap), 딜리버루(Deliveroo) 같은 유명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미국 VC이지만, 유럽, 인도, 이스라엘,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케임브리지,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의 벤처 캐피털 기업 라 파밀리아(La Famiglia)를 인수해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체리 벤처스는 잘란도(Zalando), 스포티파이(Spotify), 우버(Uber) 출신 창업자들이 설립한 VC이다. 베를린, 런던, 스톡홀름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현재 100개 이상의 포트폴리오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직접 창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 멘토링, 네트워크, 코칭 등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4년 슬러시 100 우승은 네덜란드 기반 헬스테크 스타트업 오아시스 나우(OASYS NOW)에게 돌아갔다. 이 회사는 AI 기반의 임상시험 환자 모집 플랫폼을 개발해 병원과 의료진에게 환자가 신속히 매칭되도록 돕는다. 주요 제품은 그립(GRIP) 앱과 엘라이저블(ELaiGIBLE) 플랫폼이다. 그립 앱은 사용자가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고 관련 임상시험 정보를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엘라이저블 플랫폼은 의료진이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와 환자 데이터를 간단히 매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기존에 몇 개월 걸리던 이 과정을 몇 분으로 단축했다.

 

건강에 관한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오아시스 나우는 데이터 보안에 특별히 신경 쓴다. 유럽개인정보보호법인 GDPR을 준수하고 데이터 사용에서 투명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가 데이터 활용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등 데이터 소유자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 

 

2024년 슬러시 100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헬스테크 스타트업 ‘오아시스 나우’. 사진=oasys now


캐나다 기반의 모하나(Mohana)는 여성 호르몬 건강을 위한 맞춤형 영양 솔루션을 선보여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접근성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아일랜드의 데브 앨리(Dev Ally)였다. 2019년부터 디지털 물품 서비스에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럽접근성법’이 제정됨에 따라서 기업들이 이 법령을 준수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슬러시가 슬러시 했다

 

슬러시 첫날 헬싱키에 내린 함박눈은 금세 비가 되어 잿빛 풍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슬러시라는 이름 덕분인지 곧 질척거리고 지저분해질 풍경에도 사람들은 들뜬 분위기였다. 낭만적인 겨울이 아니라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겨울을 날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대학생들이 2008년 슬러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오갔다. 

 

핀란드 스타트업 핵심 생태계의 일부인 알토이에스(Aaltoes, Altos Entrepreneurship Society)가 슬러시의 물꼬를 텄다. 알토이에스는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 학생들이 주도하는 비영리 조직으로 2008년 설립되었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 이 조직의 목적이다. 알토이에스는 스타트업의 여름(Summer of Startups) 프로그램, 스타트업사우나(Startup Sauna)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며 창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학생 조직이 만든 스타트업 행사가 슬러시다. 

 

슬러시는 이제 핀란드 학생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와 스타트업 등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창업 생태계에 관해 논하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특히 유럽을 넘어 한국, 인도,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다양한 대륙의 다양한 생태계가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다. 춥고 깜깜하기만 한 겨울에 무엇을 할 것인가. 방구석에 누워 창업이나 하자는 것이 그들의 시작이었다. 하얀 눈이 금세 흙탕물이 될지라도 그것은 문제될 것 없고, 나는 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가겠다는 것이 슬러시의 정신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11월, 슬러시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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