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에는 정말 다양한 은하가 있다. 은하는 보통 모양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별들이 펑퍼짐하게 공 모양으로 분포하는 타원 은하가 있다. 타원 은하 속 별들은 은하 중심 블랙홀을 중심으로 각각의 별이 무작위로 궤도를 돈다. 벌떼가 윙윙거리면서 무리지어 나는 모습을 보면 전체적으로 둥근 타원 모양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두 번째로 별들이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모여 있는 원반 은하가 있다. 별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은하 중심 주변을 회전하기 때문에 납작한 원반 모양을 이룬다. 보통 원반 은하는 크고 아름다운 나선팔을 그리기 때문에 나선 은하로도 불린다.
그런데 우주에 있는 은하들 중에는 이 두 가지 분류만으로는 정의하기 까다로운 이상한 모양의 은하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은하를 꼽는다면, 거대한 도넛처럼 선명한 고리 형태를 두른 호그 천체를 꼽을 수 있다.
약 6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호그의 천체도 어쨌든 은하다. 우리 은하처럼 수많은 별들이 모여 있다. 이 독특한 고리 모양의 천체는 1950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하지만 워낙 모양이 독특하다보니,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천문학자들도 이게 은하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이 천체를 처음 발견했던 천문학자 호그도 이것이 고리 모양을 하고 있는 행성상 성운일 거라고 생각했다.
행성상 성운은 태양처럼 그다지 무겁지 않은 별이 진화를 마치고 붕괴할 때, 사방으로 물질을 토해내면서 남기는 잔해다. 행성상 성운은 사실 별의 자전, 쌍성 여부 등 여러 복잡한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고리 형태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에 속한다. 이름 그대로 거대한 고리 모양을 하고 있는 고리 성운이 대표적이다. 호그는 처음에 이 이상한 은하를 발견했을 때, 그저 멀리서 발견된 또 다른 고리 성운으로 생각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무거운 은하에 의해 주변 시공간이 왜곡되면서 만들어진 중력 렌즈 이미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주 절묘하게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와 그 너머 배경 천체가 거의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면, 배경 천체의 허상이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를 완벽하게 둥글게 감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사진 속 중심부와 외곽의 둥근 고리가 각각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고, 중력 렌즈일 거란 호그의 추측도 단지 가설에 머물렀다. 사실 제대로 된 중력 렌즈 이미지 관측은 1990년 허블 우주 망원경이 우주에 올라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주 망원경은커녕 아직 우주에 인공위성 하나 올리는 것도 버거웠던 1950년에 지상 망원경 관측으로 무려 중력 렌즈 이미지를 관측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 호그가 굉장히 대담하게 느껴진다.
이후 1987년 드디어 호그 천체를 더 자세히 연구하게 됐다. 안쪽의 중심부와 외곽을 둘러싼 고리 부분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결과, 둘 모두 동일한 적색편이를 보였다. 이는 중심부와 외곽 고리가 모두 같은 거리에 있는 하나의 천체임을 의미한다. 만약 호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듯이 이게 정말 중력 렌즈 이미지였다면, 외곽의 고리 형태가 흐릿하게 뭉개진 모습으로 보였어야 한다. 훨씬 더 멀리 있는 배경 은하여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후 새롭게 진행된 관측 이미지를 보면 고리 부분도 개별 별과 성단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이것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은하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그 천체의 중심부는 유독 노랗게 빛난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미지근한 별들이 높은 밀도로 은하 중심부에 모여 있다. 그에 비해 외곽 고리는 푸르고 하얗게 빛난다. 훨씬 최근에 태어난 어리고 뜨거운 별들로 고리가 이루어져 있다. 중심의 은하핵과 외곽 고리는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 사이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단순히 원반 은하나 나선 은하로 분류하기가 난감하다. 일반적인 원반 은하라기에는 원반이 텅 비어 있다. 누군가 피자 속만 다 파먹고 둥근 빵 테두리만 남겨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천문학자들은 호그 천체와 같은 극히 드문 예외를 고리 은하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슷한 또 다른 대표적인 은하로 NGC 1291가 있다.
고리 은하와 비슷하게 극고리 은하(polar-ring galaxy)로 불리는 은하들도 있는데, 이름은 비슷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극고리 은하는 비교적 그 기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극고리 은하는 평범한 두 은하가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충돌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고리가 만들어진다. 은하 충돌의 결과는 각 은하의 질량, 각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의 양, 그리고 은하가 서로 부딪히는 각도와 속도에 따라 다양하다. 극고리 은하도 아주 극적인 사례 중 하나다. 충돌하는 은하 두 개가 마치 서로를 파고들어 관통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것도 인상적이긴 하지만 호그 천체와는 분명 다르다. 극고리 은하는 호그 천체와 같은 완벽한 고리 은하보다는 더 흔한 편이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고리 형태의 은하는 대체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그나마 이와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사례로 수레바퀴 은하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수레바퀴 은하도 중심의 밝게 빛나는 은하 핵과 가장자리를 둥글게 에워싼 고리 구조를 볼 수 있다.
사실 이곳은 굉장히 극적인 은하 충돌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원래 평범한 원반 모양을 하고 있던 은하를 향해 약간 작은 은하가 거의 정중앙을 파고들면서 충돌했다. 그 순간 사방으로 둥근 충격파가 퍼졌고, 원래 존재했을 나선팔이 모두 흐트러졌다. 달에 운석이 떨어지면 둥근 크레이터가 생기듯, 일종의 은하 버전의 거대한 크레이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수레바퀴 은하 역시 호그 천체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잘 보면 수레바퀴 은하에는 이름에 걸맞게 은하 가장자리에서 핵까지 연결하는 여러 가닥의 바퀴살 같은 가스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충돌 직후 파괴되었던 나선팔 구조가 다시 복원되는 모습이다.
극고리 은하, 수레바퀴 은하와 비교했을 때 호그 천체는 은하 중심부와 가장자리 고리 형태가 너무나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 사이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가장자리 고리 형태도 전혀 비대칭하거나 찌그러지지 않았다. 완벽하고 질서정연한 고리를 그린다.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이런 완벽한 고리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아직 명확히 모른다.
몇 가지 가설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사실 이 은하가 중심에 막대를 갖고 있는 막대 은하였다는 가설이다. 은하 중심 막대 구조는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을 중심부로 빨아들이면서 은하 안의 질량 분포를 변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변 다른 은하들과 직접 충돌하지 않더라도 막대를 품고 있는 은하는 홀로 형태가 훨씬 역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가설에 따르면 오래전 이 은하 중심에 존재한 막대 구조를 통해 별 원반에 존재했던 많은 가스 물질이 전부 은하 중심에 밀집했다. 그 결과 가장자리에는 둥근 일부만 남게 되었고, 중심에는 나이 든 별들이 모인 노란 핵이 형성되었다.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말로 중심 막대 구조가 원래는 원반 가득 채우고 있던 은하 피자를 가장자리만 남겨두고 다 먹어버린 셈이다!
이 가설은 한때 주목받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천문학자들이 크게 공감하지는 않는다. 보통 은하 중심 막대 구조로 인해 은하 형태가 바뀌면 중심에는 완벽하게 둥근 핵보다는 좀 더 크게 찌그러진 타원 모양의 은하핵을 남긴다. 또 여전히 은하 외곽의 고리 부분에 별들이 완벽하게 둥근 원 궤도를 유지하면서 돌고 있기 때문에, 오래전 은하 중심 막대 구조에 의해 별과 가스 물질의 역학적 움직임이 변형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는 가설은 힘을 잃게 되었다.
원래는 평범했던 작고 둥근 은하가 주변에서 다른 은하로부터 물질을 빼앗아오면서 외곽에 둥근 고리 형태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름 6만 광년에 달하는 거대한 호그 천체의 가장자리 고리는 우리 은하보다 더 많은 가스 물질을 품고 있다. 따라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양의 가스 물질이 외부에서 유입되었을 거라 보기도 어렵다. 아름답고 독특한 이 풍경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앞에서 본 호그 천체 사진은 허블 우주 망원경이 2001년 7월 9일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호그 천체의 거대한 고리에서 1시 방향에 멀리 또 다른 비슷한 고리 형태 은하가 우연히 겹친 것을 볼 수 있다. 우주 전체 은하에서 0.1%밖에 안 될 거라 추정되는 독특한 고리 형태의 은하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가 우연히 비슷한 방향에 겹쳐 보인다니! 정말 놀라운 우연이다. 가까운 우주, 그리고 훨씬 먼 우주, 거리가 전혀 다른 두 곳에서 절묘하게 두 개의 호그 천체가 겹쳐 보이는 모습은 확률이 극도로 낮을지라도 이 광활한 우주라면 결국 어디선가는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극도로 희박한 확률일지라도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은 그 확률의 희박함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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