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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0] 김기섭-외로움의 풍경

2024.11.20(Wed) 11:16:50

[비즈한국]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멋진 카피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소통을 뜻하고, 이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예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때 가치를 지닌다. 공감은 시대정신과 보편적 예술 언어에서 나온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쉬운 미술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즌 10을 맞으면서 공자가 말한 ‘좋은 예술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는 작가를 응원한다.

 

김기섭 회화에서는 형이상학적 분위기가 묻어난다. 어찌 보면 서정적인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이는데 단순한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박정훈 기자


20세기 초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나타났다.  이 그림을 본 유럽 사람들은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하며 놀라워했다. 

 

이런 그림으로 순식간에 파리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사람은 그리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화가로 입문한 조르지오 데 키리코(1888-1978)다. 당시 새로운 예술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통하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까지 나서서 ‘형이상학적 그림’이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키리코의 그림은 ‘형이상학적 회화’란 이름으로 서양미술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20세기 서양미술사에 하나의 사조로 등장한 ‘형이상학적 회화’는 1911년부터 1918년까지 키리코가 제작한 작품을 말한다. 키리코의 그림은 왜 이런 대단한 대접을 받았을까.

 

인상주의 이후 서양미술에서는 회화가 더는 현실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미술가들은 현실 재현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회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20세기 벽두부터 새로운 길 찾기는 뜨거웠다. 그 중 하나가 키리코의 회화였다. 

 

Internal Reflection Series 56: 91×116.8cm Oil and acrylic on canvas 2024

 

키리코가 찾아낸 길은 안갯속처럼 모호한 세계였다. 철학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과도 흡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이었다. 명쾌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무언가 깊은 사유의 이미지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생각의 세계를 풍경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풍경인데 부조리한 사물을 결합한 묘한 분위기의 광장을 담은 키리코의 회화는 생각이 일어나는 머릿속을 구체적 형상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그래서 당대 미술계에서 새로운 회화 방식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키리코의 회화는 그 이후 미술사에 등장하게 되는 초현실주의의 바탕이 되었고,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같은 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기섭 회화에서도 형이상학적 분위기가 묻어난다. 어찌 보면 서정적인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이는데 단순한 풍경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Internal L. Universe Series 163: 72.7×91cm Acrylic on canvas 2021


 

강한 일출의 빛을 받은 후지산이 구름을 두르고 배경에 깔려 있고, 앞에는 뚜렷한 실루엣으로 그린 사슴들이 한가롭게 노닌다. 그런가 하면 잔잔한 물결이 밀려오는 해변에 늑대들이 하울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동물들의 몸은 평면화돼 있고 수많은 색점으로 이루어져 추상성을 띠고 있다. 

 

서정적 풍경과 불합리한 동물의 조합을 통해 작가는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그림을 ‘외로운 풍경’이라면서 풍경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외로운 감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생각의 여러 얼굴 중 김기섭이 택한 것은 ‘외로움’이다. 우리가 산이나 바닷가 풍경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인간 본연의 감성으로 보는 작가는 이를 풍경으로 연출해 표현하고 있다. 사유를 담은 김기섭의 그림은 딱딱한 철학책이 아니라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시집을 읽는 느낌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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