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금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폭 축소된다. 지난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3사 모두 5G 주파수 28GHz 대역을 포기하며 기금 확보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 여기에 올해 제4이동통신사 사업 취소 여파로 차질이 이어질 전망이다. 두 기금은 AI 분야 투자 등에 활용할 투자 재원으로 꼽힌다. 결국 ICT 연구개발(R&D)과 중소기업 지원 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CT 기금, 내년에도 대규모 삭감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은 각각 8692억 원, 7368억 원으로 전년 대비 큰 감소세를 보이며, 적자 운영에 따른 예산 구조조정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정진기금은 올해 9825억 원에서 11.5%, 방발기금은 올해 9054억 원에서 18.6% 축소된다. 2025년도 기금운용계획안상 기금별 운용규모를 보면 올해 총계 기준 1조 3797억 원이었던 정진기금은 1조 110억 원으로 26.7% 감소하고, 방발기금은 1조 2527억 원에서 8753억 원으로 30.1% 줄어든다.
정진기금은 정보통신 기술개발이나 국책연구개발사업에 투입된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 분야 서비스 활성화, 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사업 등에 쓰인다. ICT 분야 진흥을 위한 기금 예산은 지난해 4분의 1가량 삭감됐는데 내년에도 운영 규모가 줄어들면서 기금으로 추진되던 사업들도 위축될 것이란 평가다. 기금 운용 계획상 방송통신서비스 해외진출 사업(22억 원 감소) 등이 축소 운영될 예정이고 과기정통부 예산에서는 디지털 신산업 육성과 디지털 혁신 전면화 등이 각각 996억 원, 82억 원 줄어든다.
다만 지난해 대규모 삭감돼 논란이 일었던 R&D 예산은 19조 원으로 편성돼 원복된다. 2년 전 예산 18조 8686억 원 대비 1000억 원 가량 인상되는 것으로 올해와 비교하면 약 2조원 늘어난 규모다. 중점투자 분야는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이다.
#4조 원 적자, 디지털 경쟁력 위해 ‘재설계’ 필요
배경에는 조 단위 적자 구조가 있다. 이자로 매년 1000억 원이 나가고 있고 핵심 재원인 주파수 할당 대가는 줄어들었다. 통신사들에게 징수하는 주파수 할당 대가는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에 4.5:5.5 비율로 분배된다.
지난해 기준 주파수 할당 대가는 전년의 48% 수준 감소했다. 지난 2022년 과기정통부가 5G 주파수 할당에 따른 3년차 이행점검을 실시한 결과, 통신 3사는 28GHz 대역에서 망구축 의무량의 10~12%대만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2022년 12월 KT와 LG유플러스에 이어 지난해 5월에는 SKT의 28GHz 주파수 할당을 취소했다.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를 메우는 과정에서 정진기금의 부족한 재원을 우체국보험 적립금에서 연 4.04%의 이자로 2500억 원 차입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5G 주파수 할당 취소를 두고 “통신 3사가 28GHz 의무구축 미이행에 따라 장치 구축 비용 절감 효과와 서비스 품질 대비 비싼 요금제를 통해 이익을 확대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주파수 주인 찾기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꼽히지만 올해 상반기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자격 취소로 ICT 기금 추가 확보에 대한 기대도 무산된 상태다.
지난 17일 윤석열 정부 전반기 과학기술·디지털 정책 성과 및 향후계획 브리핑에서 송상훈 정보통신정책실장은 “기금 사업 이외에도 일반회계나 다른 회계에 새로운 사업들을 편성해서 전체적인 지출을 유지·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네트워크 구축 전략 달성에 실패했다는 비판과 함께 기금 운용 축소로 ICT R&D와 지원 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CT 기금의 내년도 적자는 4조 원 규모로, 정부는 앞으로 매년 최소 3000억 원씩 운영 규모를 줄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2026년과 2028년에 돌아오는 주파수 재할당 시기에 재도전한다는 의지도 밝혔다. 다만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춰도 실패했던 이번 사례처럼 새 주인 찾기에 회의적인 시각이 두드러진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구축과 사업 유지에는 막대한 자본과 역량이 들어간다. 경매 대급 분납 등에도 한계가 드러났는데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금 재원 확보와 투자 전반의 틀을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 육성, 연구 개발 지원 등 기금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것.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건전하고 좋은 기금이고 여러 콘텐츠 사업자들의 육성에 기여하지만 이 기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5년 이상의 중장기 계획이나 전략적인 활용 계획 등을 보완해야 한다”며 “일반회계가 적용돼야 하는 부분에도 기금이 쓰이며 재원이 되는 통신사와 방송사의 유인도 부족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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