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최고가를 다시 쓸 동안 소외된 업종이 있었다. 바로 반도체주다. 주요 반도체기업을 추종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 8일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 15일에는 3.42% 급락하기도 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주의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국내 대표 종목인 삼성전자는 지난 한 주간 6% 이상 급락하며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낮은 5만 원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주가 부양을 위해 10조 원 어치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지만, 5% 이상 반짝 급등 이후, 아직 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반도체업종을 순매도했다. 지난 7월 12일 이후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17조5000억 원 순매도했는데, 그 중 반도체가 18조9600억 원, 삼성전자가 16조3000억 원 팔아치웠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수급 안정의 키는 반도체, 삼성전자에 대한 매도가 진정되는지 여부”라며 “반도체, 삼성전자로 매도가 완화될 경우 지금까지 강했던 업종들에 매물이 출회되는 교통정리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외국인 수급 안정, 코스피 분위기 반전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반도체주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트럼프의 영향력이 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만들겠다고 외치는 트럼프가 관세뿐만 아니라 중국향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전에도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도둑질했다”고 하거나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정말 나쁜 거래”라고 비난한 바 있다. 당선된 이후에도 반중 강경파인 루비오 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왈츠 의원을 국토안보보좌관에 지명하면서 정책 불확실성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을 누르고 있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위기감이 과도하다고 말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은 지금과 같이 막연한 불안감이 투자심리를 짓누르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이 상황이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것은 공약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가 인선 마무리를 포함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여기서 정제된 정책에 대한 윤곽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지만 미국 경제와 정치 부담 등의 이유로 공약대로 실제 정책이 수립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트럼프 공약은 충격적이었지만 실제 정책은 공약에 비해 크게 순화됐다.
오히려 현재 반도체업종 주가는 과거 업황 악화와 경기 불안심리 등을 반영하고 있다. 더 이상 나올 악재가 없다면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것만으로도 기술적 반등이 가능한 수준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보다는 SK하이닉스를 더 선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실적 정체가 예상되는 반면, SK하이닉스는 1분기 부진 이후에는 가파른 이익 개선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경민 연구원은 “AI반도체 경쟁력에 따라 실적, 주가가 차별화를 보일 것”이라며 “내년에도 고부가가치 반도체가 주목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SK하이닉스 주가가 좀 더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진단했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불안정한 매크로 상황에서는 밸류에이션 매력도가 높고 시장의 우려가 어느 정도 반영된 삼성전자가 편안한 선택이지만, 전방 수요가 개선되기 이전까지는 기술력과 AI 경쟁력을 갖춘 SK하이닉스를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결국, 내년에도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계속될 전망인 가운데 AI 반도체 제조는 TSMC,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가 선두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승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대형 GPU 고객사에게 HBM3E 12단을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내년에도 HBM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며 "1cnm(선단) 공정의 높은 생산성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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