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소식은 유럽 스타트업계에서도 뜨거운 화제다. 미국 테크계의 거물들이 각기 트럼프와 해리슨을 지지하며 벌이는 시끄럽고 유난했던 지원전의 상황은 유럽에서도 흥미로운 관람거리였다. 미국에 비하면 유럽의 테크 거물들은 다소 ‘지루하고 조용한’ 편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일론 머스크는 적극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며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트럼프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하루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전력을 다해 트럼프를 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기술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이 AI와 자율주행 등 혁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X를 통해 트럼프 지지 발언을 자주 게시하며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11월 6일 트럼프가 대선 승리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배출된 ‘새로운 스타(a new star)’였다.
머스크 외에도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아마존의 앤디 재시(Andy Jassy)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도 트럼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복구하고 여러 차례 직접 소통했으며, 아마존은 트럼프에게 안부를 묻는 통화를 하는 등 관계를 다시 쌓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빅테크 업계가 트럼프의 규제 완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트럼프와 거리를 두는 인사들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규제 강화를 지지했다. 트럼프의 재선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 내 테크 기업들 간에도 정치적 입장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며 양극화를 심화해왔다.
결국 트럼프 2.0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특히 트럼프는 유럽의 기술 규제 정책 등과 날카로운 각을 세웠기에 유럽 스타트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후 유럽은 기후변화 대응, 방위 산업, AI 규제 등 여러 방면에서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테크 산업의 위기감 고조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유럽 기후 테크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과거부터 기후변화를 ‘조작된 위기’라고 규정하며 화석 연료 개발을 지지해왔다. 2017년 첫 트럼프 첫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했던 일이 ‘파리 기후협정 탈퇴’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2기 행정부에서도 파리 기후협정 탈퇴는 예견된 수순이라고 본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했던 인플레이션 감소법(IRA)은 친환경 기술 기업을 위해 대규모 보조금을 제공했으나, 트럼프는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유럽의 기후 테크 기업들은 이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철회될 경우 미국 시장에서의 확장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베를린의 플래닛 A(Planet A)는 유럽 그린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사이다. 플래닛 A의 파트너 리나 티데(Lena Thiede)는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 ‘시프티드(Sifted)’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재선은 글로벌 친환경 혁신에 대한 후퇴를 의미한다”고 평가하며 “유럽이 독자적으로 기후 테크 혁신을 지원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베를린의 기후 테크 전문 VC인 월드 펀드(World Fund)의 설립 파트너 다리아 사하로바(Daria Saharova)는 “이번 트럼프의 당선을 유럽은 자립성을 강화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후 테크 스타트업을 유럽 내에서 성장시키기 위한 자본을 충분히 조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베를린-샌프란시스코 기반 VC 펀드 헤드라인(Headline)의 파트너 크리스찬 밀레(Christian Miele)는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EU 간의 무역 장벽을 높여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기후 테크 스타트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으로 미국 진출을 했었는데, 이런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긴장한 유럽 방위 산업 스타트업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유럽 방위 산업 스타트업들에게도 도전 과제를 안겨줄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미국 기업과의 방위 계약을 줄이고 자국 기업 위주의 공급망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NATO)와 유럽 방위 예산 문제도 유럽 테크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나토에 지출을 늘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유럽 국가들이 방위 예산을 증대하지 않으면 나토의 유대가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파리 기반의 딥테크 투자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은 “미국이 나토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나토에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면 유럽 스타트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EU 및 유럽 각국 국방부는 자체적으로 유럽 스타트업들과의 계약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간접 지원을 축소할 가능성도 방위 산업 스타트업들에 큰 리스크로 다가온다. 베를린과 런던 기반 VC인 프로젝트 A(Project A)의 영국 매니징 디렉터 잭 왕(Jack Wang)은 “트럼프가 당선 후 2년 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될 경우 유럽과 영국은 방위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잭 왕은 “이러한 변화가 유럽 방위 산업 스타트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미국과의 기존 계약에 의존해온 기업들에게는 단기적인 매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비를 강조했다.
한편 유럽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귀환으로 미국은 유럽에 관심을 줄이고, 아시아 중심으로 외교 정책을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유럽은 방위 능력을 강화하고 자체 방위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 변화는 유럽 방위 스타트업들이 자국 내 방위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규제 영역에 있던 스타트업들은 ‘기대감’
AI 스타트업들에게는 트럼프의 재선이 미국 시장에서 더 큰 기회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AI 행정명령(E.O 14110)’을 폐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AI 행정명령은 규제 중심의 기술 개발을 강조하며, 기업이 개발한 AI 모델이 위험을 초래할 경우 연방정부에 해당 정보를 통지하도록 규정한다. 트럼프는 “스타트업들이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며 AI 행정명령의 폐지를 시사했다. 이에 따른 규제 축소로 빅테크 투자 환경이 개선되면 데이터센터 건립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타트업에게는 마냥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캠브리지 기반의 AI 사운드 스타트업 드코르 퓨처 인더스트리즈(Decorte Future Industries)의 설립자이자 미국·영국·유럽 창업자들이 모여 설립한 인공지능창업자협회(AIFA) 회장인 로엘란드 드코르트(Dr. Roeland Decorte)는 “트럼프 행정부는 AI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에게는 유리한 변화이지만 스타트업들에게는 역효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 섞인 의견을 밝혔다.
의료 기술 및 헬스 테크 분야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유럽 스타트업들은 성장 기회가 지속적으로 생기기를 기대하고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본사를 둔 퀴빔(Quibim)의 창업자 앙헬 알베리치-바야리(Ángel Alberich-Bayarri)는 “유럽에 본사를 둔 우리는 규제를 뛰어넘어 미국의 여러 병원과 이미 다양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미국이 의료 혁신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것을 믿는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연대, 연대, 더 강한 유럽이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으로 결국 유럽은 더 뭉치고,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테크업계의 주된 반응이다. 기존에 유럽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 온 만큼, 유럽의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트럼프 당선 이후 더욱 절실해졌다. 유럽 GDP와 기술 생태계가 강해질수록 지정학적 위험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가져올 변화는 기후, 방위, AI,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유럽스타트업들에게 기회와 도전 과제를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 유럽의 기술 업계는 자국 내 생태계를 강화하고 자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유럽의 스타트업이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유럽 스타트업을 위한 우선 투자 및 보호주의 정책 등이 강화될 전망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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