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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K-로고 연대기' 디자이너의 스케치북에서 대한민국을 엿보다

대한민국 로고 디자인 역사 집대성…디테일한 외곽선 처리로 원작 그대로 재현

2024.11.11(Mon) 13:04:58

[비즈한국] ‘디자인’은 여러 세부 영역을 포괄하는 단어다. 그중에서 비전공자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로고 디자인이 있다. 조직의 이념과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시각 언어인 로고는 현대적인 아이덴티티 디자인 개념이 자리 잡기 전에도 우리 생활 곳곳에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을 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미 개발된 디자인을 제대로 활용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심미안과 기술은 세계 수준에 비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 기존 작업물의 보존과 연구 계승이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그렇다는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1940년대부터 1990년 말까지 우리나라의 각종 로고를 집대성한 ‘K-로고 연대기’​. 사진=CDR 제공

 

최근 월간 디자인의 임프린트 브랜드인 스튜디오 마감과 CI 전문회사 CDR이 협업하여 펴낸 ‘K-로고 연대기: 20세기 대한민국의 초상’​(K-로고 연대기)은 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책이다. ‘K-로고 연대기’​는 광복 직후인 1945년부터 20세기의 마지막 순간인 1999년까지 세상에 나온 로고 3000여 종을 2권으로 나눠 집대성하고 적절한 설명과 아티클을 추가하여, 단순 아카이브 북을 넘어서 연대별로 변화하는 시대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항상 사회와 엮여 작동하는 디자인 분야의 특성상 로고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양하다. 자신이 만든 장애자올림픽(패럴림픽) 로고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디자이너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다가, 야당의 로고 디자인을 맡아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비밀 유지를 위해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홀로 남아 일했다는 평화민주당 프로젝트 앞에서는 엄혹했던 시대의 단면을 본다. 독립운동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이 지금보다 훨씬 심한 견제를 받았던 당시, 경찰의 감시와 임대인의 잇따른 거부로 당사 입주에 어려움을 겪은 통일민주당의 사례는 잘 알려진 얘기다. 한국수자원공사 로고 부분에는 70년대보다 80년대 로고에서 타원 사용이 유행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그 시절 실무에 정통한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책에 수록된 수많은 로고의 외곽선 처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재현에 대한 신뢰도를 크게 높인다. 사진=CDR 제공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등장하는 로고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그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도 자동으로 재생된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은 일본과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유치전을 위한 로고는 ‘2002’라는 숫자 가운데의 0 두 개를 태극무늬와 축구공으로 바꾼 디자인이다. 다소 투박하지만 간절한 염원이 담긴 이 로고는 90년대 중반 동네 공터에서 굴러다니던 흔한 축구공에 인쇄되어 공을 차는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나항공이 문을 열면서 채택한 첫 번째 로고는 사람의 옆얼굴과 팔까지 묘사하고 있어 디테일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로고가 현역이던 시절 아시아나를 이용하면서도 어색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으니 신기한 일이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수록된 이미지의 퀄리티다. 수집한 로고를 책에 흑백 형태로 수록하려면 2차 가공이 필요하다. 흑백 외곽선을 그리는 것이 주 업무인 서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K-로고 연대기’​에 실린 수많은 로고의 외곽선에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디지털화를 거치면서 작업자의 역량 부족으로 외곽선이 망가지거나 원본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도 했다. 그러나 ‘K-로고 연대기’​의 원작 재현은 신뢰도가 높다. 

 

첫 장을 펼치기 전에는 ‘K-로고 연대기’​를 전공자를 위한 전문 디자인 서적으로 여겼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오히려 모두에게 필요한 교양서적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공자에게 유용하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에 ‘K-로고 연대기’​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로고를 시작으로 다른 디자인 영역에서도 이처럼 높은 밀도를 지닌 아카이빙 북이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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