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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조 잡아라" 퇴직연금 실물 이전에 은행-증권사 유치 경쟁 활활

추가 비용 없이 운용사 바꿀 수 있어…37개 금융사 시행, 수익률 개선 효과 두고는 전망 갈려

2024.11.05(Tue) 16:40:46

[비즈한국] 퇴직연금 실물(현물) 이전 서비스를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에 보유한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운용하는 금융사(사업자)만 바꾸는 서비스로, 10월 31일부터 정식 시행됐다. 은행과 증권사가 고객 잡기에 나선 가운데 400조 원 규모의 적립금이 어디로 이동할지 눈길이 쏠린다.

 

보건복지부는 9월 4일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개혁안에는 국민연금 뿐 아니라 기초, 퇴직, 개인연금 등 다양한 체계의 구조개혁 방안이 담겼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는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의 일환이다. 사업자 간의 경쟁을 촉진하고,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퇴직연금 계좌는 다른 사업자로 이전할 경우 기존에 가입한 상품을 해지해 현금화 한 뒤, 바뀐 곳에서 다시 상품에 가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입자는 중도해지 비용을 내거나 손실을 봤는데, 서비스 시행으로 추가 비용 없이 옮길 수 있게 됐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을 하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먼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중 동일한 제도 내에서 이전할 수 있다. 이 중 DB형과 DC형은 회사에서 이관·수관하는 금융사 모두와 퇴직연금 계약을 맺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이전하려는 금융사에서 가입자가 운용하는 상품을 취급해야 한다. DC형과 개인형 IRP는 적립금의 전체 이전만 가능해, 수관한 금융사가 취급하지 않는 상품은 현금화 해야 한다.

 

10월 31일부터 실물 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37개 사업자다. 서비스 대상은 총 44개 사였으나 전산 시스템 구축 지연 등으로 7개 사(부산은행, 경남은행, 삼성생명, 하나증권, 광주은행, iM은행, iM증권)는 개시하지 못했다.

 

퇴직연금 유치 경쟁은 은행 대 증권사의 구도로 형성됐다. 실물 이전이 가능한 상품이 정해져 있는데, 보험사는 취급하지 않는 곳이 많아서다. 서비스 대상인 상품은 △예금, 신탁제공형 이율보증보험(GIC), 파생결합사채(ELB·DLB) 등 원리금보장상품 △공모펀드(머니마켓펀드 제외) △상장지수펀드(ETF) △채무증권 등이다.

 

불가능한 상품은 계약 형태와 상품 특성에 따라 나뉜다. 보험계약 형태의 자산관리 계약, 운용관리와 자산관리를 각각 다른 사업자로 지정하는 ‘언번들형’ 계약 상품은 이전할 수 없다. 이에 따라 37개 사업자 중 보험계약·언번들형만 취급하는 7개 생명보험사(DB·IBK·동양·신한·푸본현대·하나·흥국), 3개 손해보험사(DB·롯데·현대), 2개 은행(전북·제주), 1개 증권사(DB)는 상품 제공 관련 시스템만 구축한 상태다.

 

상품 특성에 따라서는 △디폴트 옵션(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을 때 사전에 정해둔 상품으로 금융사가 자동 운용) △지분증권 △리츠 △사모펀드 △주가연계펀드(ELF) △파생결합증권(DLS) △RP(환매채) △MMF △종금사 발행어음 등이 실물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다. 상품 제공 수수료 부과 상품과 임의해지 대상인 소규모펀드, 환매수수료가 있는 펀드, 환매 불가 펀드, 압류 및 질권 설정 상품 등도 이전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개별 상품마다 조건이 달라 계좌를 옮기려는 금융사에서 사전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기존 퇴직연금 상품을 다른 금융사로 손실 없이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가 10월 31일부터 시행됐다. 사진=연합뉴스


퇴직연금 적립금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8년 190조 원에서 2023년 382조 원으로 5년 새 2배가량 증가했다. 적립금의 50% 이상은 은행이 운용하고 있으며, 증권사와 보험사가 운용하는 비중은 각각 20%대다.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은행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체 적립금 중 원금 보장형 상품이 87.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2023년 기준). 원금 보장형은 안전한 대신 수익률이 낮다.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사업자 공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최근 1년 수익률은 원금 비보장 상품이 보장 대비 2~3배 높았다. 다만 5년 이상 장기 운용할 때는 원금 보장과 비보장의 수익률이 2%대로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로 가입자가 공격적인 운용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서비스 시행 이후 시장 변화에 대한 전망도 나뉜다. 강승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 이전 서비스는 수익률 개선보다 퇴직연금 운용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춘 제도”라며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꾸준히 운용해야 수익성도 지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사업자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겠지만 부수적인 효과로 본다. 은행, 보험사, 증권사마다 취급하는 펀드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물론 금융사마다 고객 유치를 위해 더 좋은 상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한다면 가입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경쟁 촉진 효과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라고 짚었다.

 

반면 금융사의 특성에 따라 ‘머니무브’가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DC형 등 수익률 제고를 고려하는 가입자는 사업자를 바꾸고 싶을 수 있다. 원금 비보장 상품은 아무래도 은행이나 보험사보다 증권사에서 운용하기 유리하다”라고 전했다.

 

남 연구위원은 “실적 배당형 상품의 경우 사업자마다 취급하는 상품이 다르다. 은행에서 증권사 수준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실물 이전 서비스가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비중을 높이는 데 유리한 방안이 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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