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멋진 카피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소통을 뜻하고, 이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예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때 가치를 지닌다. 공감은 시대정신과 보편적 예술 언어에서 나온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쉬운 미술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즌 10을 맞으면서 공자가 말한 ‘좋은 예술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는 작가를 응원한다.
서양 회화가 면의 그림이라면 동양 회화는 선이 중심이 되는 작업이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보면 선은 면과 면이 연결된 결과이지 선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회화에서는 선이 그림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로 대접받아 왔다.
면 중심 회화를 추구해온 서양미술에서 선의 의미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다. 그동안 선은 사물을 설명하기 위한 윤곽선, 면의 성격을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보조 수단 또는 그림의 기본 구성을 위한 밑그림 정도로 쓰였다.
20세기 초 선에 관심을 갖고 독자적 성격을 보여준 작가로는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성의 불안한 심리와 고통을 인체를 통해 표현했는데, 이를 독자적인 선으로 담아내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가 됐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던 표현주의 화가 라울 뒤피도 선에다 음악적 성격을 담아 감각적 즐거움을 보여주었고, 같은 표현주의 화가 조르주 루오는 뒤피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선으로 종교적 정신 세계의 깊이를 창출해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됐다.
추상미술의 등장으로 선의 가치는 회화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혔다. 선 자체가 독립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를 미술사에서는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동양 회화에서 선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동양 회화는 선의 운용으로 발전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 자체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예술로는 서예를 꼽을 수 있다.
서예에서 선은 의미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성품이나 정신성까지도 담아낸다. 조선 말에 이르러 선은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내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신감각 산수’로 불리는 필법적 회화가 그것이다. 서예의 선은 서양 추상 미술에도 영향을 준다. 추상표현주의의 한 갈래인 ‘서법적 추상’이 그것이다. 이 시기 서양 화가들은 서예 필법의 힘과 우연적 효과, 직관적 구성으로 새로운 회화를 만들 수 있었다.
드로잉 개념의 선을 운용해서 특색 있는 회화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가 공예나다. 그는 선의 굵기와 번짐 효과를 이용해 추억의 색감을 보여준다. 오래된 시간이 묻어나는 물건에서 풍기는 아련한 정서와 그것이 지닌 아름다운 추억을 선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레트로 풍의 물건을 수집해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며 시간의 흔적을 추적한다. 마모된 정도나 손때가 묻어나는 상태를 찾아내 이를 물건의 성격으로 부여한다. 그래서 선으로 표현한 공예나의 정물화는 ‘물건의 초상화’라고 불린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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