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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이토록 주도면밀한 드라마라니

후속편 기다리게 만드는 추리의 향연…정교하고 섬세한 연출로 긴장감 극대화

2024.10.31(Thu) 11:09:48

[비즈한국] 큰일이다. 이 드라마를 상찬할 만한 마땅한 단어와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제목과 한석규 주연, MBC금토드라마란 사전 정보를 들었을 땐 크게 기대되지 않았다. 엄청난 자본을 쏟아붓는 OTT 드라마도 죽 쑤기 십상인 마당에 지상파에 ‘김사부’ 한석규의 조합? 살짝 안일하고도 올드한 느낌이 들었거든. 그런데 웬걸, 역시 MBC는 드라마 왕국이고, 한석규는 한석규였다. 여기에 새로운 발견까지 더해지며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친자)’는 한 주가 빨리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인적 없는 산 속에서 찾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흔적, 그리고 또 하나의 백골 시신.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는 그곳에서 딸 장하빈의 흔적을 발견한다. 사진=MBC 제공

 

‘이친자’는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서 딸 장하빈(채원빈)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의 비밀과 마주하며 진실을 쫓는 스릴러다. 하빈은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갔던 어린 시절, 동생 하준과 놀다가 동생은 사망하고 자신만 피투성이로 발견된 적이 있다. 장태수는 그 이후 딸이 아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하빈이 남들과 다른 점이 있음을 애초에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의심이 기본인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딸 하빈의 입장에선 아버지 태수가 친밀하게 여겨질 리 만무하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한다니, 그만한 배신이 또 어디 있나.

 

이혼한 전처가 데리고 있던 딸 하빈은 전처의 죽음 이후 장태수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딸을 향해 의심을 품고 있는 태수와 마찬가지로 딸도 아빠를 경계한다. 사진=MBC 제공

 

그리고 인적 없는 산 속의 허름한 창고에서 2리터 가까운 피가 발견되며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장태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가출팸 소녀 송민아(한수아)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딸이라는 증언을 듣게 되고, 창고가 있던 대화산이 딸이 훔친 휴대폰이 마지막으로 켜진 위치임을 알게 되고,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섬유가 딸이 가방에 걸려 있던 가방고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심지어 이후 인근에서 발견된 다른 백골 시신도 딸과 관련 있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러니 초반 시청자의 입장은 장태수에게 동조된다. 딸을 믿지 못하는 장태수의 처신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속속들이 드러나는 정황증거가 모두, 하빈이 이 사건과 아예 무관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살해당한 가출팸 멤버 송민아, 그리고 백골 시신으로 밝혀진 이수현과 밀접한 관계로 얽혀 있는 가출팸 리더 최영민. ‘소년시대’에서 양철홍 역으로 얼굴을 알린 김정진의 연기도 돋보인다. 사진=MBC 제공

 

그러나 태수의 의심이 합리적이라 느껴질 무렵, 우리는 뒤통수를 맞는다. 태수와 이혼하고 최근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태수의 전처이자 하빈의 엄마 윤지수(오연수)가 전혀 의외의 장소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4화 엔딩은 장하빈과 장태수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태수의 입장에서 하빈을 바라보던 시청자들은 더더욱 충격이었고. 여기에 살해당한 송민아가 속해 있는 가출팸 리더 최영민(김정진)과 가출팸 무리가 사는 집주인 김성희(최유화), 그리고 하빈의 1학년 때 담임이었던 박준태(유의태)가 모종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데다, 셋 모두 백골 시신으로 밝혀진 하빈의 친구 이수현(송지현)과 연관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다단해진다.

 

비밀을 숨긴 장태수의 전처 윤지수 역을 맡아 유감없이 자신의 연기를 펼쳐내는 오연수. 초반 등장할 땐 특별출연인 줄 알았는데, 역시 오연수에게 이 역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진=MBC 제공

 

의심하고 의심받고, 또 다른 사람이 의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그러다 의심을 하는 주체 또한 의심스러워지는 이야기. ‘이친자’는 장태수 같은 인물은 물론 시청자까지 끝없는 의심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그 의심의 과정은 전혀 억지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쫀쫀한 대본의 힘이 크고, 대한민국이 다 아는 한석규의 장악력이 뛰어나고, 한석규와 합을 맞추는 딸 하빈 역의 신예 채원빈의 몰입도 훌륭하기에 그렇다. 각각 이성과 감성을 대표하는 듯한 범죄행동분석팀원 이어진(한예리)과 구대홍(노재원) 경장의 대립과 조화도 흥미롭다.

 

장태수를 보좌하는 범죄행동분석팀원 이어진과 구대홍 경장. 각각 이성과 감성, 좌뇌와 우뇌를 상징하는 인물답게 자리 배치도 주로 좌와 우로 나뉘어 비춘다. 사진=MBC 제공

 

그리고 무엇보다, 공들인 연출의 힘이 돋보인다. ‘이친자’를 상찬할 요소는 차고 넘치는데 그 모든 요소를 매끄럽게 그러안는 힘이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에 있다. 명암과 그림자의 적절한 활용, 대립과 상하 등 다양한 앵글로 인물의 심리와 상황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솜씨가 엄청나다. 딸에 대한 의심과 고통 사이 괴로워하던 장태수가 딸의 알리바이가 거짓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를 비추는 신은 ‘이친자’ 팬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 ‘이친자’의 연출은 ‘옷소매 붉은 끝동’을 정지인 PD와 함께 공동 연출한 송연화 PD가 맡았는데, 같은 시기 방영 중인 인기작 ‘정년이’의 연출을 정지인 PD가 맡고 있는 점도 시청자 입장에선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친자’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때로는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화면을 보여주곤 한다. 멀찍이 떨어진 식탁에서의 대립 구도는 그만큼 먼 서로의 심리를 반영한 장면. 사진=MBC 제공

 

‘이친자’는 10부작 중 이제 5화까지 방영됐다(10월 31일 기준). 그러나 아직까지 사건의 명쾌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이 각본은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수상작. 원작이 없는 창작 각본인지라 시청자들은 코난에 빙의된 듯 열심히 추리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송민아와 이수현을 죽인 범인이 누구이고 왜 죽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더 중요한 포인트로 보이지만. 잘나가다가 결말에 이르러 용두사미로 끝나는 작품들을 여럿 봐왔지만, ‘이친자’만큼은 그렇지 않으리란 기대가 크다. 아직까지 ‘이친자’가 아니라면 바로 시청을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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