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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그때 그 시절 프로야구 '한글 유니폼의 추억'

풀어쓰기 방식 알파벳이 유리한 건 사실…모방 벗어나 다양한 시도 이어져야

2024.10.28(Mon) 13:53:00

[비즈한국] 2024년 KBO 한국시리즈는 정규리그 1위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를 꺾고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두 팀이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만난 것은 1993년 이후 31년 만이다.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이다.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는 삼성과 1986년, 1987년, 1993년에 세 번 맞붙어 삼성의 우승을 모두 좌절시켰다. 특히 1986년과 1987년 시리즈는 해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고, 1993년 시리즈에서는 삼성이 4차전까지 2승 1무 1패로 앞섰지만 5, 6, 7차전을 모두 내주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근 한국프로야구 각 구단 유니폼은 영어로 쓰여진 로고타입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중반 이전에는 한글 로고타입의 유니폼이 더 많았다. 사진=각 구단 제공

 

1993년 경기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니폼 디자인이다. 유니폼 전면에 모기업명인 ‘해태’와 ‘삼성’이 큼직하게 레터링되어 있다. 해태는 해태제과의 한글 로고타입을 그대로 가져왔고, 삼성은 디자인파크에서 제작한 독자적인 조형을 따랐다.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역동적인 글자들은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됐다. 당시 디자인파크는 삼성뿐만 아니라 여러 구단의 시각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는 작업을 도맡아 진행했다.

 

당시 리그에는 해태와 삼성뿐만 아니라 빙그레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 청보 핀토스 등 한글 로고타입을 사용하는 팀들이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정책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구단 로고타입에서 한글은 점차 사라지고 로만 알파벳이 중심이 되었다. 해태와 삼성 역시 1990년대 중반에 알파벳 로고를 채택해 유니폼에 적용했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역시 처음부터 알파벳 로고를 사용했다. 이는 프로야구단의 BI(Brand Identity) 트렌드가 기업 BI 변화와 궤를 같이 한 결과로 보인다.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 시절 유니폼을 입은 투수 선동열. 사진=기아타이거즈 홈페이지

 

야구단 엠블럼이나 유니폼에는 좌우로 길게 펼쳐지는 형태의 문자 디자인이 이상적이다. 글자를 일렬로 균형 있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벳은 풀어쓰는 방식이어서 이러한 디자인에 유리하지만, 모아쓰기 구조인 한글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태와 삼성의 옛 유니폼에는 2글자만 배치되어 다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 프로야구가 모델로 삼은 미국과 일본 리그 유니폼에서 주로 알파벳 로고타입을 사용하는 것도 한글 사용에 제약을 준 요소 중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구단명이 너무 짧지 않다면 한글 필기체로도 좌우로 넓게 펼쳐진 역동적인 디자인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KT 위즈’처럼 짧은 경우에는, 옛 LG 트윈스 유니폼처럼 로고를 우측 상단에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2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는 짧지 않다. 그러나 구단 디자인은 여전히 해외 리그, 특히 미국과 일본 리그를 모방한 듯한 인상을 준다. 모든 구단이 한글 로고타입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알파벳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문자 디자인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만약 홈 유니폼에 한글 디자인 적용이 어렵다면, 원정 유니폼이나 이벤트 유니폼에서라도 과감하게 한글 중심의 디자인을 채택해보면 좋겠다. 야구는 이제 한국에서 명실공히 인기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에 걸맞게 관련 디자인에서도 우리 고유의 색채를 더 많이 반영했으면 한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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