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며칠 전, 모두가 기다렸던 새로운 유로파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가 지구를 떠났다. 유로파 클리퍼는 우리가 오랫동안 품고 있는 우주에 대한 가장 위대한 비밀, 과연 생명체는 지구에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흔히 태양계에서 지구 바깥 다른 곳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게 된다면 화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천문학자들은 화성 너머 더 먼 태양계 외곽을 바라본다. 목성과 토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들을 주목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꽁꽁 얼어붙은 얼음 표면 아래에는 지구 표면보다 더 많은 액체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워낙 거리도 멀고, 두꺼운 얼음 표면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이 위성들의 지하 바다에는 태양빛이 거의 비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도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에 심해 생태계가 있는 것처럼, 어쩌면 얼음 위성들의 지하 바다에도 나름의 생태계가 존재할지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는 이러한 이야기가 모두 모호한 관측 데이터에 기반을 둔 상상과 추측, 기대일 뿐이었다. 진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 직접 그 현장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유로파에 직접 가서 생명체의 흔적을 확인하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목성 주변에도 지구 곁의 달처럼 위성들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은 1610년 천문학자 갈릴레이에 의해 밝혀졌다. 그의 발견은 우주에 떠 있는 존재가 지구만을 중심에 두고 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우주의 중심이 지구일 것이란 생각을 뒤집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게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 곁의 위성은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전통적으로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행성, 목성은 신들의 왕, 제우스, 주피터로 불렸다. 그래서 갈릴레이가 목성 곁에서 발견한 네 위성에는 신화 속 제우스가 탐했던 대상의 이름이 붙었다. 가니메데, 이오, 칼리스토, 그리고 유로파. 신화에 따르면 꽃을 따고 있던 유로파의 모습에 반한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한 다음 유로파를 납치한다. 제우스가 유로파를 납치하고 돌아다녔던 지역 일대를 유로파의 이름을 따서 유럽 대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로파는 태양계 행성 곁을 맴도는 위성들 중 여섯 번째로 크다. 목성 곁 다른 세 개의 갈릴레이 위성, 토성 곁의 타이탄, 그리고 지구의 달 다음이다. 우리 달은 표면이 매우 울퉁불퉁하다. 곳곳에는 운석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가 남아 있다. 반면 유로파는 거의 매끈한 얼음 표면을 갖고 있다. 중간중간 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긴 크고 작은 크레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달에 비하면 훨씬 매끈하다. 이것은 유로파 표면이 훨씬 최근에 갈아엎어졌음을 보여준다.
앞서 보이저와 파이어니어 등 여러 탐사선이 목성 중력을 활용해 더 먼 우주로 떠나면서 목성 곁을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 꾸준히 목성 곁에 머무르며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0년대 천문학자들은 아예 목성 중력에 붙잡혀 그 곁을 지키는 궤도선을 계획했다. 이 탐사선에는 처음으로 목성 주변 위성의 존재를 밝혀낸 천문학자 갈릴레오의 이름을 붙였다. 당시 갈릴레오 탐사선은 목성의 구름 표면뿐 아니라 유로파를 비롯한 여러 위성들을 탐사했다. 그리고 우연히 표면의 갈라진 얼음 표면을 뚫고 뿜어 나오는 물줄기를 통과했다.
사실 정작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2018년, 갈릴레오 탐사선의 아카이브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던 천문학자들은 이미 갈릴레오 탐사선이 유로파에서 물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당시 갈릴레오 탐사선의 데이터에 따르면 유로파는 거대한 목성 곁에서 또 다른 작은 자기장을 형성했다. 이것은 유로파에서 전하를 띠고 있는 작은 입자들이 새어 나오면서, 그것이 목성의 강력한 자기장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천문학자들은 이온화된 염분을 머금고 있는 바닷물이 우주 공간 밖으로 뿜어 나오는 것이라 추정한다.
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게 된 건, 사실 토성 주변에서 진행된 카시니 탐사선의 활약 덕분이었다. 카시니는 토성 주변의 얼음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물줄기가 뿜어 나오는 장면을 실제 사진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물줄기를 아예 통과하면서 그 주변 자기장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엔셀라두스의 물줄기를 통과하는 동안 카시니가 보여준 데이터가 이미 오래전 갈릴레오가 유로파 곁을 지나가면서 보여준 형태와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묻혀있던 갈릴레오의 데이터에 숨겨 있던 놀라운 보물을 뒤늦게 밝혀낼 수 있었다. 당시 데이터에 따르면 유로파 표면 바깥으로 최대 160km 높이까지 물줄기가 뿜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더 최근에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통해 유로파의 물줄기를 재확인했다. 2014년 허블 우주 망원경은 유로파가 목성 원반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동안 유로파 주변을 겨냥했다. 유로파의 물줄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날아온 목성의 빛, 그리고 유로파의 물줄기를 통과하고 날아온 목성의 빛을 비교하면 유로파에서 분출된 물분자에 의해 일부 파장에서 빛이 흡수되는 흔적을 비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목성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동안 유로파에서 많은 물이 뿜어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구 바깥 다른 천체에서도 간헐천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 최근에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다시 한번 유로파를 관측했다. 그리고 물줄기가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에서 물과 이산화탄소, 메테인을 포함한 다양한 분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이은 우주 망원경 관측을 통해 유로파에 물이 있고, 심지어 우주 공간으로 우주 간헐천이 뿜어 나올 거라는 추측은 이제 거의 사실로 여겨진다.
먼 거리에 꽁꽁 얼어 있는 얼음 위성 유로파 표면 아래에 어떻게 액체 바다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목성의 강한 중력과 자기장이다.
목성에 바짝 붙어서 도는 유로파는 목성의 강한 중력을 받는다. 특히 목성을 바로 바라보는 쪽과 목성을 등지고 있는 쪽은 목성으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조금 다르기 때문에, 유로파의 각 영역에서 받게 되는 목성에 의한 중력의 세기도 달라진다. 이러한 중력의 차이는 유로파에겐 마치 자신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힘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유로파는 목성 주변에서 크게 찌그러진 타원을 그리면서 돈다. 3.5일마다 한 번씩 목성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멀어지면서 목성으로부터 받는 중력의 세기가 지속적으로 변하는 중이다. 재밌게 표현하자면 목성은 자신의 강력한 중력으로 유로파를 계속 조물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유로파 얼음 내부는 가열되고, 그로 인해 얼음 표면 내부는 얼지 않은 액체 상태 바다로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목성에게 중력적인 괴롭힘을 당하느라, 유로파 얼음 표면에는 길게 갈라진 독특한 상처가 많이 남았다. 일명 혼돈 지형(Chaos Terrain)으로 불리는 유로파 표면의 복잡한 흔적들은, 살짝 녹아 있는 지하 바다 위에 유로파의 얼음 층이 둥둥 떠다니면서 서로 부딪치고 갈라지면서 생긴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갈라진 상처를 비집고 그 밑에 숨어 있는 액체 바닷물 일부가 우주 공간으로 뿜어 나온다. 특히 달보다 더 작은 유로파는 중력도 약하다. 그래서 유로파 표면 밖으로 새어나오는 물줄기는 수백 km 높이까지 아주 거세게 나올 수 있다.
유로파 자체의 크기는 달보다 더 작지만, 흥미롭게도 그 안에 매장된 액체 바닷물의 양은 지구의 바닷물을 다 모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지구에 물이 많다고들 생각하지만,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은 말 그대로 표면에 얇게 고여 있을 뿐이다. 표면에 살짝 묻어 있는 바닷물을 다 모아도 그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태양계에서 물을 가장 많이 머금은 가장 촉촉한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지구가 아니다. 유로파다.
그렇다면 이런 유로파 바닷속에 미지의 외계 해저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NASA는 유로파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왜 굳이 토성 주변의 엔셀라두스가 아닌, 목성 주변의 유로파를 먼저 선택했는지 궁금할 수 있다. 물론 엔셀라두스도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그간 인류는 목성과 그 주변 위성을 더 많이 탐사했고, 엔셀라두스보다 유로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또 토성은 목성에 비해 훨씬 멀다. 탐사선을 보내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만큼, 일단 첫 번째 타깃으로 유로파를 선택했다.
이번에 지구를 떠난 유로파 클리퍼는 앞으로 5년간 우주를 항해한다. 2030년이 되면 목성과 그 주변 위성에 도착한다. 유로파 클리퍼에는 유로파 지하 바다를 탐사하기 위한 탐사 장비 10가지가 탑재되어 있다. 우선 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하는 가시광 카메라가 있다. 두 번째로 적외선 카메라는 유로파의 두꺼운 얼음을 뚫고 그 내부 온도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파악한다. 유로파의 바다 수온도 지역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어느 바다가 따뜻한지 혹은 더 추운지를 파악하면, 비교적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게 기대할 수 있는 심해 화산 후보지를 찾을 수 있다.
유로파의 자기장을 탐사하는 장비들도 있다. 앞선 갈릴레오 탐사선, 그리고 엔셀라두스 곁을 지나간 카시니 탐사선 때와 마찬가지로 유로파 주변 자기장을 통해 목성 곁을 지나갈 때마다 유로파의 자기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 아래 정말 액체 바다가 있는지, 염분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다. 유로파 클리퍼는 중력장의 변화도 감지하면서, 얼음 표면 아래 바다의 매장량이나 위치를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탐사선에 탑재된 다양한 분광기는 탐사선이 물줄기를 직접 통과할 때마다 물속에 어떤 화학 성분이 녹아 있는지 확인하며 생명 활동의 징후를 찾게 된다.
이번 유로파 클리퍼 탐사는 이후에 진행될 차기 유로파 탐사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천문학자들은 유로파의 얼음 표면 위에 아예 착륙선을 내려보내고, 그 얼음을 뚫고 지하 바다 속으로 해저 탐사 로봇을 보내는 방식의 탐사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미 NASA에서는 울퉁불퉁한 유로파의 얼음 표면 위에 착륙선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내려보낼지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이런 미래 탐사들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이제 지구의 바다가 아닌, 다른 외계의 바닷속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 속에 혹시 외계 오징어, 외계 플랑크톤이 존재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말 지구 바깥에 외계 생명체, 외계 생태계가 존재할까? 머지않아 이 질문에 드디어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심지어 태양계 바깥도 아닌, 태양계 안에서의 탐사 결과만으로!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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