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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전문경영인이 모두 '선의의 대리인'일까? 교묘한 사익 추구 수법들

허위 용역, 상품권깡, 무익한 투자…전문 경영인 사익 편취 방지하려면 오너·대주주가 관리 강화해야

2024.10.21(Mon) 11:08:47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눈을 피해 사익을 편취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경영학에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개념이 있다. 주인과 대리인 간에 이해관계 상충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뜻한다. 이를 회사에 대입하면 주인은 오너이고, 대리인은 전문경영인이다. 경영상 주요 결정을 오너와 전문경영인 중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인지 정답은 없다. 오너 경영과 전문 경영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어느 방법이 효율적인지는 회사의 규모, 상황, 사회적 관습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기업의 선단식 경영, 족벌 경영의 폐해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래서 전문 경영이 우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최근에는 전문 경영의 실패 사례가 자주 등장하니 흥미롭기만 하다. 여러 사건에서 접한 경험을 통해 회사의 규모가 크지 않거나,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의 경우에는 오너의 열정과 헌신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 경영의 일부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더라도 오너의 관리와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오너 또는 대주주의 무관심과 안이함을 이용해 회사의 전문경영인, 직원(본부장·팀장 등)이 사익을 편취하는 사례와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 등을 살펴본다.

 

전문경영인 등이 회사를 운영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면서 손쉽게 사익을 편취하는 방법으로는 먼저 친인척, 지인을 임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있다. 필요한 인력이 아닌데도 급여 등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채용하는데, 심지어 채용한 것처럼 형식만 갖추고 실제로는 친인척 등이 근무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울산지법 2012고단2234 판결은 현장소장인 피고인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사안의 개요와 법 위반 판단 부분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 피고인은 건설사의 현장소장인데 자신의 처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음에도 일한 것처럼 인건비를 청구했고, 동생·사촌·아는 동생 등은 이미 월급을 받았음에도 이들이 일용직 노동자인 것처럼 인건비를 청구해 건설사로부터 합계 1157만 원을 받았다.

 

·​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현장소장으로서 건설사를 위해 공사 현장의 인력 채용 및 관리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의무를 위배하고, 건설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것이다.

 

다음으로 전문경영인 등이 손쉽게 사익을 얻는 방법으로는 허위 용역 계약을 체결해 거래처에게 용역 대금을 지급한 후, 그 거래처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있다. 허위 용역 계약이란, 제공되는 용역 자체가 없는데 형식적으로 용역 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계약서를 꾸미는 것과, 용역을 받긴 받되 용역 대금을 과대 계상하는 경우다.

 

이 역시 흔한 사례다. 서울고법 2022노2233 판결은 용역을 제공 받은 사실이 없음에도 마치 용역을 제공 받아 용역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처럼 허위 컨설팅 용역 계약을 체결한 후 거래처에 수억 원을 지급한 사안에서, 업무상횡령죄와 다른 혐의의 범죄를 인정한 후 피고인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보다 더 대담하게 회사의 재산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널리 쓰이는 방법에는 ‘상품권깡’이 있다. 법인카드를 이용해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한 후 이를 상품권 매매업소에 판매해 현금화하고, 이를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식이다. 회사 내 다른 임직원으로부터 상품권의 행방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거래처 관계자 등에게 명절선물로 제공했다고 하며 관계상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주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둘러댄다. 법인카드를 유흥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법인카드가 복지 또는 급여와 비슷한 혜택으로 여겨지는 관행이 있긴 하지만, 업무 관련성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원칙적으로 횡령이 된다.

 

전문경영인의 사익 추구 행위가 위법한 행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전후 맥락에 따라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는 노골적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회사의 자산을 사용해 형법상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다. 이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든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지분이 있는 거래처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개인의 명성을 위해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 투자를 집행하거나, 본인의 임금을 과도하게 책정하거나, 회사 일은 방치한 채 개인 사업에 열중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은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에 따라 회사의 경영에 관한 일정 부분 권한과 재량을 갖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사익 추구가 형법상 범죄인지, 상법 등 법령, 사규, 충실의무 위반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전후 맥락을 살펴봤을 때 사익 추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전문경영인이 거래처에 투자해 지분을 얻는 경우가 있다. 전문경영인은 그 거래처와 반복적으로 거래하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거래처로 회사의 영업비밀·판매조직·유통망 등을 빼돌린 후, 결국 그 거래처에 입사하는 사례도 있다. 보통 법인등기부에는 임원 취임 내역만 기재될 뿐 지분 관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 다른 회사에 투자했는지 사전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대주주·오너 등이 관리와 통제를 게을리하다가 전문경영인 퇴사 후 거래처에 대표로 취임함으로써 뒤늦게 위와 같은 내용을 인지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 같은 일을 겪으면 대주주·오너 등은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충격에 힘들어한다.

 

사업은 어렵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믿고 쓰는 일이 제일 어렵다. 필자는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하면 부족한 부분을 메움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앞서 열거된 일들을 직접 겪거나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다 보니,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사전에 전문경영인, 업무 집행자 등을 적절하게 관리·통제하도록 권유하곤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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