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임금 삭감, 복지 후퇴. 졸속 조직개편안 당장 폐기하라.” 지난 16일 오후 4시 KT 서울 광화문 지사 앞에는 회사의 구조조정 결정에 대한 노조의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서는 전국에서 KT노동조합(제1노조) 간부진 수백여 명이 모여 일방적 조직개편 철회를 촉구했다. 회사의 ‘통보’로 시작했던 인력 재배치 계획은 곧 노사 합의로 매듭을 지었다. 집회 시작 후 12시간여 만인 17일 새벽 노사가 신규 법인으로 전출되는 직원에 대한 보상과 인력 조정 목표치 등을 조정하는 안을 합의하면서다. 경영 효율화의 필요성에 대해 노조가 일부 공감하면서 합의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통신 인프라에 미칠 영향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남아있다.
#본사 직원 3분의 1 구조조정, 급박하게 돌아간 ‘10일’
KT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손보는 ‘자회사 분사·인력 재배치’ 계획으로 열흘간 혼란을 겪었다. 회사가 지난 8일 ‘인력구조 혁신 방안’을 1노조인 KT노조에 처음 전달한 뒤 노조에서는 연일 긴급회의가 이어졌고 14일 철야 투쟁이 시작됐다. KT가 이사회(15일)에서 이 혁신안을 의결한 직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KT 광화문 사옥 앞에서는 KT노조 전국 235개 지부의 간부 288명이 참여한 조직 개편안 반대 집회가 열렸다.
노조가 대규모 단체행동에 나선 지 하루 만에 노사 갈등은 봉합 수순이다. KT, 노조 등에 따르면 노사는 17일 네트워크 자회사 설립과 인력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합의점을 도출하고 재배치 계획을 시행하기로 협의했다. 김인관 KT 노조위원장이 전날 김영섭 KT 대표와 만나 근로자가 전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대우를 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KT가 이를 받아들여 기존 계획을 일부 수정하기로 하면서다. 사측의 기존 안보다 특별희망퇴직금과 자회사 전출자가 받는 지원금이 상향되고, 촉탁직 근무조건이 개선됐다.
앞서 KT 내부에서 유출된 ‘현장 인력구조 혁신방안’ 문서에 따르면 인력 조정 대상은 본사 네트워크 관리 부문 직원 5750명이다. 전체 KT 직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KT는 선로 통신 시설 설계와 관련 시공, 고객 전송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 KT OSP와 전원시설 설계 및 유지 보수, 선박 무선통신 운용 등을 맡는 KTP&M 등 두 자회사를 신설하고 본사 직원들을 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본사에서 각각 3400명, 380명이 이동하고 신설 법인 이동 대상자가 아닌 1900명은 그룹 내 다른 직무로 전환하거나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계획이다.
합의안에서는 자회사 전출 또는 희망퇴직 인원 목표치를 삭제하기로 했다. 근속 10년 이상인 자회사 전출자에게 본사 기본급의 70%, 전직 지원금 20%를 주는 안에서 전직 지원금을 30%로 상향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자회사 전출자에 대한 복지는 본사 수준으로 유지하고, 촉탁직 직원 근무 보장 기간은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특별희망퇴직금 보상은 당초 계획보다 최대 1억 원을 더 지급하기로 했다.
KT는 “AICT 회사로의 전환을 위한 인력 구조 혁신 차원으로 현장 전문회사 신설을 통해 현장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신설 법인의 의사결정 체계는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져 현장 상황에 최적화한 유연하고 신속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졸속 합의”·‘통신 안정성’ 약화 지적 나오는 배경은
다만 일각에서는 노조가 일방적 조직개편안에 대한 반대 집회를 진행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회사와 타협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KT새노조와 현 KT노조 집행부에 반대하는 인원으로 구성된 KT전국민주동지회 조합원들은 이번 합의안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제2노조인 KT새노조는 “구조조정안 졸속 노사 합의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고 KT민주동지회는 “구조조정 기조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 합의안에 사인했다. 기존 연봉과의 차액을 남은 정년기간에 따라 일부 지급하겠다던 것을 전액 지급하고 복지수준을 KT에 맞춘다는 것이 ‘진전된’ 합의안”이라며 비판했다.
두 소수노조는 지난 16일 1노조 집회 현장에서도 “2003·2009·2014년과 같은 구조조정은 위원장직을 걸고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김인관 KT노조위원장 발언에 “약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압박하기도 했다. 과거 인력 구조조정 당시 축적된 노사, 노조 간 불신이 다시 떠오르는 가운데 KT새노조가 오는 21일부터 KT 광화문 사옥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내홍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이 통신 인프라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인력에 대한 보상 문제는 합의를 이뤘지만 네트워크 운용의 안정성 영향 문제는 그대로다. 김준현 KT노조 강북지방본부 위원장의 “선로와 전원 분야는 KT의 근간이다. 이 분야를 떼고 통신을 다뤄본 적이 없다”는 집회 발언처럼 이 같은 우려는 공통된 지적이다. 개편 대상 업무들은 통신망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등 통신업의 핵심 기능과 밀접하다. 비용에 비해 수익성은 낮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간단하게 분사를 결정할 업무는 아니다. 통신 영향성에 대한 내부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했다.
KT새노조는 지난 2014년 구조조정 사례에 비춰볼 때 이번 네트워크 부문의 ‘외주화’가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황창규 전 KT 회장 체제에서 진행된 해당 구조조정은 현장 영업, 개통, 사후관리(AS), 지사 영업 창구 업무 등을 KT M&S, KTIS, KTCS 등 7개 계열사에 위탁하는 게 주요 골자였다. KT새노조 관계자는 “인터넷 모뎀, TV 설치 업무가 자회사 체계로 전환된 후 임금, 도급 단가가 낮아지면서 한 직원이 담당하는 업무량이 늘고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외주를 주는 업무이기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본사 직원이 담당할 수 없지만 결국 KT 직원들이 직접 가서 처리해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서비스 품질의 한계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2015년 말 기준 이들 계열사와 KT 본사 직원 간 연봉 차이는 3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안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감사에 참석하는 김영섭 KT 대표에 대해 관련 질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현동 화재사건을 계기로 인프라를 보완 구축해 대응해가고 있는데 이번 계획을 막지 못한다면 또 한 번 통신대란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섭단체인 1노조와의 협의를 완료한 KT는 오는 21~24일, 25~28일 두 차례에 걸쳐 신설 법인 및 그룹사 전출 희망자 접수를 진행한다. 특별 희망퇴직은 22일부터 내달 4일까지 접수 받는다. KT 관계자는 “네트워크 부문 투자는 전혀 줄지 않고 유지된다. 통신 회사로서의 당연한 책무이며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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