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공간을 물리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의 공간이란 소비자가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기업이 소비자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소통 창구다. 도심 곳곳 들어선 팝업 스토어가 바로 브랜드의 가치를 담아 디자인한 사례다. 17일 브랜드비즈 컨퍼런스 2024에 연사로 나온 정연진 콜렉티브 비 대표는 공간 디자인은 “공간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사용자에게 닿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연진 콜렉티브 비 대표는 2009년 스페이스 브랜딩 회사 얼반테이너의 공동 창업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2018년 공간 디자인 컨설팅 회사 콜렉티브 비를 설립했다. 정 대표는 에피소드의 ‘수유 838’, 클럽 ‘옥타곤’, 커먼그라운드, 네이버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와 브랜딩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정연진 대표는 공간 디자인을 ‘통역’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일을 “브랜드와 사용자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험을 디자인적 사고로 다루는 일을 한다고 소개한다”라며 “우리는 공간을 디자인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통역자로서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의 철학을 반영한 프로젝트 중 하나가 클럽 옥타곤이다. 정 대표는 “경험을 토대로 두 가지 포인트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 첫째는 사운드다. 클럽계의 ‘오페라하우스’를 목표로 사운드 설계에만 3개월 투자했다. 둘째는 안주의 차별화다. 클럽 최초로 오픈키친을 도입해 일반 클럽에 비해 음식의 수준을 높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20년간 한 번도 생각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클라이언트가 각각의 니즈를 이야기하는데, 이들을 모두 한 배에 태울 수는 없다는 것. 정 대표는 ‘공급자의 마인드’로 니즈를 설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MZ를 타깃으로 하고 싶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만들어 달라’ 등의 요구에는 왜, 어떻게 같은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 사용자는 빠진 니즈”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공간은 소유권을 가진 사업자, 공간을 관리하는 운영자,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주체가 브랜드의 메시지,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공간 디자인의 목적이다.
에피소드 수유 838은 철저히 ‘사용자’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다. 에피소드는 SK D&D의 공유 주거 브랜드로, 커뮤니티가 있는 1인 주거 공간을 만든다. 입주자는 각자의 방을 가지고 공용 공간과 커뮤니티를 함께 이용한다. 콜렉티브 비는 ‘브랜드 가치 전달’ ‘사람의 연결’ ‘유연한 공간’ 세 가지를 목표로 수유 838을 디자인했다. 사용자는 ‘임대료 절약이 아닌 커뮤니티와 공간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과감한 사람’으로 설정했다.
브랜드 가치를 전하기 위해 리사이클 패널과 가구를 사용했고, 사용자의 연결성을 위해 무빙 파티션으로 공용 공간의 목적을 없앴다. 언제든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기 위해서다. 입주자만 고려하지 않았다. 숙박 시설의 필수 공간인 세탁실, 택배 보관실, 쓰레기처리장은 ‘운영 인력’을 주요 사용자로 설정하고 이들 중심의 설비를 구축했다. 예컨대 택배 보관실은 쉽게 짐을 나를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세탁실에는 분실물을 보관하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사용자 중심의 공간 디자인은 호응을 얻었다. 수유 838은 입주율이 90%에 달했고, 디자인상만 다섯 번 수상하는 고무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이 같은 철학은 전시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콜렉티브 비는 아디다스 스토어에서 신제품과 브랜드의 역사를 함께 담았다. 다만 130켤레의 신발을 전시하면서 사용자(방문객)에게도 메시지가 와닿도록 고민했다. 사용자를 ‘문화에 대한 경험 욕구가 높은 대중’으로 설정하고, 신발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삼았다. 신발을 하나하나 연도별로 진열하고, 90년대 출시한 제품에는 오래된 브라운관 TV를 뒀다. 반면 신규 상품 주위에는 손바닥만 한 최신형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조명과 화면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구분했다.
정연진 대표는 최근 우후죽순 생겨나는 팝업스토어를 향해 목적성을 고민할 것을 강조했다. “목적을 정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방문객을 늘릴 것인지,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고 싶은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것인지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라며 “자극을 위한 자극을 만드는 브랜드가 많다고 느낀다. 그러나 브랜드를 위해 정말 자극적인 요소가 필요한지 고민하길 바란다. 모든 목적을 달성하는 공간은 없다”라고 짚었다.
그는 존 헤스켓 교수의 ‘디자인이란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마감재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는 작업이 아니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사용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공간이라는 ‘통일된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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