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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이게 표절이 아니라고? 메로나-메론바 소송을 보며

법원 "멜론색 누구나 쓸 수 있다"지만 색상, 배치뿐 아니라 서체 디자인 맥락까지 고려해야

2024.10.16(Wed) 14:28:32

[비즈한국] 디자인 표절 시비는 시대와 업계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성숙해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최근 1심 판결이 난 빙그레와 서주의 소송은 패키지 디자인의 유사성에 대한 법원의 인식이 어떤지 엿볼 수 있는 사례다. 그 대상은 빙그레 ‘메로나’와 서주 ‘메론바’다.  

 

둘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다. 1992년 출시된 멜론맛 아이스크림 빙그레 메로나는 자타공인 빙그레의 대표 제품으로 통한다. 그런데 효자원에서 유사 제품 메론바를 출시했고, 빙그레는 2005년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패소했다. 메로나의 포장이 특정 상품을 연상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효자원 메론바는 인수 합병을 거쳐 서주 메론바(2014)가 되었고, 빙그레는 여전한 유사성을 문제 삼아 다시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도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빙그레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 의사를 밝혔다.

 

빙그레는 서주 ‘메론바’의 패키지 디자인이 자사의 메로나와 유사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지만 항소 의사를 밝혔다. 사진=빙그레, 서주


패소한 빙그레는 메로나의 포장지 디자인이 단순히 색상뿐 아니라 색 조합, 이미지의 위치, ‘메로나’ 로고 서체 등 각 디자인 요소의 총합임을 강조하며 유사한 조합을 가진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사실상 메로나로 인식되고 있다는 주지성을 내세워 항소의 뜻을 밝혔다. 멜론맛을 연상시키는 녹색은 모두의 것일지라도 세부 요소를 결합한 디자인 결과물은 빙그레의 성과라는 것이다. 한편 법원의 논리는 19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일 본연의 색상을 특정 주체가 독점하는 것은 공익상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얘기가 반복된다.

 

법원은 과일 소재의 제품에서 과일이 갖는 본연의 색상을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빙그레의 포장지가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로고는 어떨까. 두 제품은 색상과 이미지 배치뿐 아니라 포장지 중앙에 위치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로고 서체도 유사하다. 초성을 키운 각진 고딕 형태에, 획 내외부에 다른 색상 포인트를 추가한 모습은 멜론이라는 과일의 특성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멜론이라면 오히려 한글 로고의 획을 둥글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포인트 색상도 파란색으로 멜론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색상(검정색)과 주변에 흰색 테두리를 두르고 두께까지 비슷하게 맞추어 메로나의 그것과 유사하게 만든 메론바의 고딕형 로고 서체는 통상적인 멜론을 묘사했다고 볼 수 없다. 메론바는 표절을 의식한 것인지 획 대신 안쪽 공간에 포인트를 넣고, 포인트 색상으로 빨간색을 추가 후 조형을 조금 더 조악하게 만들었다. 메론바 로고가 메로나를 베꼈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또 있다. 글자 조합이 비슷한 ‘메’와 ‘나’는 ‘메’, ‘바’로 비슷하게 디자인했다. 하지만 종성이 있는 ‘론’ 부분은 메로나의 ‘로’를 참고할 수 없어 한층 어설프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메론바’에서 ‘론’의 퀄리티가 특히 낮은 모습이 되었다.

 

메로나의 로고 서체와 주변 문구 배치는 실제 멜론의 모양이나 색상과 관련 없는 고유 디자인이다. 메론바가 이것까지 차용한 것은 단순한 동일 카테고리 제품의 범위를 넘어서 상대 제품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 명성에 기대어 소비자의 혼동을 유도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로 보인다. 메로나 포장지가 빙그레의 고유 디자인이 아니라고 판시한 법원은 이 부분에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저 상품 포장에 쓰이는 색상 사용은 자유라는 원칙만 강조할 뿐이다. 디자인 유사성을 판단할 때는 색상이나 배치 같은 단편적인 요소뿐 아니라 서체 디자인 맥락까지 포함한 종합적 고려가 요구된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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