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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 팽창률을 둘러싼 천문학 대논쟁 ①

우주 배경 복사와 은하 후퇴속도 통해 구한 값이 다른 '허블 텐션' 문제에서 촉발

2024.10.08(Tue) 13:13:50

[비즈한국] 1920년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천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 우주의 진짜 크기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 은하 바깥에 또 다른 은하가 존재하는지를 두고 촉발된 천문학계의 논쟁은 본격적으로 우리 우주의 진짜 크기가 대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천문학 대논쟁의 주인공은 히버 커티스와 할로우 섀플리였다. 흥미로운 점은 둘은 대논쟁 전에 워싱턴 D.C.로 가는 기차에서 먼저 마주쳤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각자의 전략이 노출될 것을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인사 몇 마디만 나누고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주 어색했을 것이다. 

 

많은 천문학자들과 기자들이 아주 격렬한 토론을 기대하면서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 모두 젠틀맨이었고, 토론은 너무나 정중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또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결국 모두의 이목을 끈 두 천문학자의 말싸움은 예상과 달리 시시하게 끝났다. 사실 천문학 대논쟁은 현장의 격론보다는 그로 인해 본격적으로 우주의 크기에 대한 논쟁이 천문학계 메인 무대에서 다뤄지게 됐다는 데 더 의의가 있다. 

 

우주의 팽창률을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는 두 천문학자 아담 리스(왼쪽)와 웬디 프리드먼. 사진=스웨덴왕립과학원, 시카고대학교


대논쟁 이후 100년이 넘게 흘렀다. 최근 두 명의 천문학자가 격렬하게 논문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1920년대에 시시하게 끝났던 대논쟁과 달리 이번 대논쟁은 꽤 격렬하다. 21세기 천문학 대논쟁의 주인공은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천문학자 아담 리스와 시카고대학교의 천문학자 웬디 프리드먼이다. 아담 리스는 브라이언 슈미트, 솔 펄머터와 함께 초신성 관측을 통해 우주의 가속 팽창을 확인하고 암흑 에너지의 가능성을 제기한 공로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최근 리스와 프리드먼은 제임스 웹이 관측한 은하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우주의 팽창 속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앞서 초신성 관측을 통해 우주의 가속 팽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리스는 우리가 지금까지 추정한 은하들까지의 거리 값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프리드먼은 최근 동료들과 비밀리에 진행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추정한 은하들까지의 거리에 심각하고 공통된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공방의 주제가 얼핏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둘 중 누구의 말이 맞느냐에 따라 우주의 미래와 운명, 그리고 현대 천문학의 운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일단 두 천문학자가 왜 이렇게 첨예하게 논쟁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현대 천문학에서 가장 난해하고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독한 수수께끼 ‘허블 텐션(Hubble Tension)’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허블 텐션은 관측 방식에 따라 우주의 팽창률이 다르게 구해지는 문제다. 

 

우주의 팽창률을 구하는 방식은 사실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서 허블 텐션의 핵심이 되는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빅뱅 직후 뜨겁게 뭉쳐 있던 우주가 고르게 팽창하면서 우주 전역에 온기를 퍼뜨리면서 남긴 흔적에 해당하는 우주 배경 복사를 관측하는 방법이다. 초기 우주가 식어가던 당시, 우주 전역에는 밀도가 아주 미세하게 더 높거나 낮은 차이가 무작위로 생겼다. 그 밀도 차이로 인해 오늘날 관측되는 우주 배경 복사의 온도 분포에도 미세한 차이가 남았다. 이것을 온도 요동 또는 밀도 요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미세한 요동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통계적으로 확인하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비율을 유추할 수 있고, 우주의 팽창률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어떤 우주론 모델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추정치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빅뱅 직후 통째로 우주가 식으면서 우주 전역에 남은 흔적을 분석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팽창률을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 방법은 은하들의 거리와 각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후퇴 속도를 직접 비교해서 우주의 팽창률을 구하는 것이다. 오래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관측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쓰이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팽창률을 직접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은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지 그 후퇴 속도는 사실 꽤 직접적으로 구할 수 있다. 관측된 은하의 빛 스펙트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긴 파장 쪽으로 치우쳐 관측되는지, 그 적색편이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문제는 은하의 거리를 구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아주 가까운 별들이라면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공전 움직임 때문에 관측되는 시차를 통해 별까지의 거리를 재면 된다. 시차는 삼각법이라는 아주 간단한 수학을 사용한다. 수학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더 이상 시차는 소용이 없다. 우리 은하를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시차는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훨씬 먼 거리에 놓은 다른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멀리 떨어진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을까? 사실 기본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멀리서 보이는 천체의 실제 밝기를 따로 알아내서, 그것을 기준으로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의 겉보기 밝기와 비교하면 된다. 그러면 실제로는 아주 밝은 천체가 얼마나 먼 거리에 있길래 실제 하늘에서 이토록 어둡게 보이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은하 천문학에서 거리 재기의 핵심은 거리를 굳이 모르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해당 천체의 실제 밝기를 따로 알아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렇게 실제 밝기를 따로 알아낼 수 있어서 그 천체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지표가 되는 천체를 천문학에서는 표준 촛불이라고 부른다. 촛불 자체의 원래 밝기를 알고 있으니, 하늘에서 어둡게 보이는 촛불의 겉보기 밝기를 통해 그 양초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개념이다. 

 

가장 대표적인 표준 촛불은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빗이 연구한 세페이드 변광성, 그리고 백색왜성이 인접한 다른 별에서 물질을 빼앗아 먹거나 혹은 다른 백색왜성과 충돌하면서 폭발하는 것이라 알려진 Ia형 초신성이다. 리빗은 마젤란 은하 속 변광성을 연구해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변화하는 주기가 정확하게 그 별의 실제 밝기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관계를 활용하면 하늘에서 밝기가 규칙적으로 변하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광 주기만 보고 그 실제 밝기를 따로 알아낼 수 있고, 따라서 거리까지 알 수 있다. 

 

제임스 웹으로 본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를 비교한 그래프. 사진=NASA, ESA, A. Riess(STScI), and G. Anand(STScI)

 

Ia형 초신성의 경우에는 조금 과격한 가정을 전제로 한다. 백색왜성은 태양 질량의 1.4배라는 한계 질량을 돌파하는 순간 불안정한 상태를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폭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별이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낼지는 결국 그 별의 질량에 달려 있다. 모든 Ia형 초신성이 동일한 질량의 한계를 돌파하는 순간 터진다면 우리는 모든 Ia형 초신성의 가장 밝게 터지는 순간의 밝기가 얼추 비슷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Ia형 초신성은 이러한 일종의 기대를 바탕으로 아주 먼 우주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표준 촛불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우주 배경 복사로 구한 우주의 팽창률과 세페이드 변광성, Ia형 초신성 등 은하의 거리를 직접 구해서 그것을 은하들의 후퇴속도와 직접 비교해서 구한 우주의 팽창률이 다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우주 배경 복사로 구한 결과는 63km/s/Mpc 정도다. 반면 은하의 후퇴 현상으로 직접 구한 결과는 73km/s/Mpc 정도다. 흥미롭게도 은하들의 후퇴로 느끼는 우주의 팽창률이 우주 전체의 열기가 식는 것을 통해 느끼는 우주의 팽창보다 더 빠르다. 게다가 각각의 관측 방법이 더 정교해지면서 각각의 오차는 작아지지만 두 방식의 간극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똑같은 우주를 바라보면서 두 방법으로 구해낸 팽창률이 전혀 다른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이 사태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애초에 두 방법이 똑같은 우주를 보기는 하나? 이 난제를 허블 텐션이라고 부른다. ​

 

허블 텐션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까지 많은 천문학자들은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유추한 우주의 팽창에 약간 오해가 있던 게 아닐까 의심했다. 이 방법은 은하들의 움직임을 보고 우주의 팽창률을 구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팽창 효과뿐 아니라 인접한 은하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개별적인 움직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하필이면 우연히 주변 은하들의 밀도가 휑한 텅 빈 보이드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면, 주변 은하들은 우주 전체의 평균 팽창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관측한 결과 우리 은하 주변에서 거대 보이드의 뚜렷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두 가지 방법으로 해마다 추정한 허블 상수 값을 비교한 그래프. 빨간색은 은하의 후퇴 현상을 통해 추정한 허블 상수 값의 변화를, 파란색은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통해 추정한 결과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해마다 각 추정치의 오차 범위는 줄었지만 두 값 자체의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래프=https://www.mdpi.com/2218-1997/9/2/94

 

이렇게 되자 프리드먼은 아주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 발짝 물러서서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가까운 은하들부터 먼 은하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우주 규모, 거리를 잰 방식에는 공통된 대전제가 깔려 있다.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서 확인한 우주의 특징이 먼 우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전제다. 일종의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빗은 그다지 멀지 않은 수십만 광년 거리의 세페이드 변광성들 사이에서 일관된 법칙을 발견했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리빗이 발견한 법칙을 그대로 적용해 훨씬 먼 수백만, 수천만, 수억 광년 떨어진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재는 기준으로 활용했다. 

 

마찬가지로 Ia형 초신성이 항상 비슷한 밝기에서 가장 밝게 폭발할 것이라는 특징도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서 확인한 결과일 뿐이다. 천문학자들은 그 특징이 먼 우주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 생각해 그대로 적용해 우주의 거리를 재왔다. 

 

천문학자들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그 거리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별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더 먼 별로 거리를 재면서 거리 측정 방식의 눈금을 조율해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삼각 시차법을 활용해서 아주 정확하게 거리를 알 수 있는 별들 중에는 마침 세페이드 변광성들도 있다. 이 별들은 굳이 리빗의 법칙을 쓰지 않아도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변광성들의 정확한 실제 밝기를 알 수 있고, 리빗이 발견한 세페이드 변광성의 관계를 더 정밀하게 보정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먼 우주까지의 거리를 재나가는 방식의 철학을 천문학에서는 ‘거리 사다리’라고 부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순서대로 밟아가면서 더 먼 우주로 거리를 잰다는 뜻이다. 현대 천문학에서 우주의 스케일을 재는 데 가장 근간이 되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 사다리에 의문을 품었다. 그동안 하나하나 밟아온 사다리의 각 발판이 정말 완벽했을까? 중간에 발판 하나만 삐끗해도 우리는 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한다. 최근 발표된 프리드먼의 연구는 그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뒷이야기는 다음 칼럼에.)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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