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국내 서비스 중개 및 유통의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흐름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택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오프라인 매장이 주로 입점하는 상가 건물은 텅텅 비었다. 대면 판매를 주된 영업 방식으로 삼는 직접 판매와 네트워크 판매는 대책 없이 지속적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형마트는 매출이 줄다 못해 점포까지 줄어드는 추세다.
온라인에서는 검색, 구매, 결제 등이 플랫폼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특정 플랫폼이 대세가 되면 이용자는 그 플랫폼에 종속돼 여간해선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다. 독점 플랫폼은 이렇게 지배력을 확보하는데, 그 결과 중소 유통업체나 소규모 플랫폼은 몰락하고 제품 판매, 서비스 이용 등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독점 플랫폼이 차지한다.
플랫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업은 없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시간문제일 뿐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도 플랫폼에서 거래될 것이다. 플랫폼은 어떤 측면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을 열어주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플랫폼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같은 현실을 생각했을 때 현재 공정거래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영역은 입점업체-플랫폼-소비자 간의 거래, 즉 플랫폼 거래다. 현재 하도급, 가맹사업, 방문판매, 대리점 거래, 대규모유통업 거래 등의 영역에서 단행법(특정한 사항에 관하여 만든 법률)을 시행하고 있으나 플랫폼 거래는 이러한 거래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 플랫폼 거래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규율이 더 시급한 이유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 때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에 대한 입법 논의가 일었다. 신기하게도 여론의 동향을 보면 입법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지나친 사전 규제로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혁신이 위축된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우호적 여론이 다수라는 점이 국내 유통·서비스 중개 시장에서 플랫폼이 대세임을 보여준다.
결국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등 단행법을 제정하는 대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내용을 보면 ①시장지배적 사업자(독과점 사업자)를 추정하는 규정을 개정하고 ②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등 6개 분야에서 ③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조건 대우 요구 등 4개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한다고 한다.
얼핏 보면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사후 추정 요건의 문턱은 오히려 높아졌다. 기존 조항에 따르면 시장점유율 50%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이 돼야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된다. 개정안에 의하면 구글·애플·네이버·카카오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지만 쿠팡·배달의민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법이란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혹자는 공정거래법 개정만으로 규제가 충분하니 단행법을 제정하는 것은 옥상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야 맞는 말이나, 현실적으로 보면 단행법을 제정해야 정부부처 내 부서가 생기고, 조직을 구성하며, 예산을 배정해 적극적으로 법률이 집행하게 되니 단행법을 제정하고 안 하고는 규제의 강도에 큰 차이를 만든다.
이 같은 입법·개정 논의는 향후 플랫폼 규제에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논쟁에 참고할 만한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N 사는 부동산 정보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신에게 제공한 부동산 매물 정보를 경쟁사인 K 사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K 사는 부동산 서비스 부문에서 매출이 급감했고, 결국 2018년 이후 부동산 서비스를 외주업체에 위탁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N 사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경쟁 사업자 배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2020년 9월 시정명령과 약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플랫폼이 지배력을 사용해 입점업체가 다른 플랫폼에 입점하는 ‘멀티호밍(multi-homing)’과 경쟁 플랫폼을 배제하는 행위를 제재하면서다.
또 다른 사례는 K 사가 가맹 택시 사업을 운영하면서 4개 경쟁사에 영업상 비밀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제휴 계약을 요구하고, 만약 경쟁사가 K 사의 요구를 거절하면 해당 경쟁사 소속 기사가 K 사의 콜을 받지 못하도록 한 사건이 있었다.
언뜻 보면 K 사가 콜을 주고 안 주고는 K 사의 자율적인 판단으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K 사의 위와 같은 정책은 이 회사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문제가 됐다.
K 사는 택시 호출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가진 시장지배적 사업자이므로, 경쟁사로서는 K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만약 어떤 경쟁사가 K 사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그 경쟁사 소속 기사는 시장에서 90%의 콜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경쟁사가 K 사에게 영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K 사는 그 영업 정보를 가지고 경쟁사 기사가 운행을 많이 하는 지역, 시간대 등을 분석해 자신의 기사를 투입하는 전략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위는 2024년 10월 2일 K 사에 시정명령, 과징금 724억 원(잠정)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까지 나섰다.
그밖에 공정위가 제재한 플랫폼의 주요 불공정 거래 행위(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는, G 사가 시장지배력을 사용해 게임사가 자사 앱 마켓에서만 게임을 출시하도록 요구한 행위, G 사가 운영체제를 배포해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후 기기 제조사에 변형 운영체제의 개발·탑재를 금지한 행위 등이 있다.
플랫폼은 서비스 혁신에 기여하는 면이 있고,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시장에서 토종 플랫폼의 비중이 높아 플랫폼 규제를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플랫폼의 공과를 눈여겨볼 때가 됐다. 플랫폼 간 경쟁을 통해 소비자 후생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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