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대규모 투자유치를 강조하면서 AI의 근간이자 우리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에 대한 정부 투자를 약속했다. 한동안 부진을 겪던 반도체는 지난해 말부터 살아나기 시작해 12개월 연속 수출 증가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투자 확대를 약속하면서 앞으로 순항할 길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외국계 투자은행의 시각이나 지표가 보여주는 수치는 다르다는 점이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를 연달아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K 반도체에 유독 과도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지만 투자환경을 보여주는 지표인 ‘토빈 Q’를 살펴보면 외국계 투자은행의 경고를 흘려듣기만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토빈 Q가 다른 산업들에 비해 증가속도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9월 26일 ‘국가 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AI가 인류의 삶을 바꾸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AI 대전환을 통한 국가 대개조가 미래 명운을 결정할 것”이라며 “정부가 앞으로 클라우드나 네트워크, AI, 반도체를 비롯한 AI 전반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AI 3대 강국 도약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세계 경기 침체 속에 죽을 쑤던 우리나라 반도체는 지난해 11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증가하며 우리나라 수출을 이끌어왔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9월 수출은 추석 연휴로 조업일수가 감소에도 증가하면서 12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갔다. 여기에는 9월 136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반도체 수출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이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꽃길이 깔린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경고음을 연일 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9월 15일 ‘겨울이 닥친다(Winter looms)’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SK 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26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낮추고,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축소’로 변경했다. 또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도 10만 5000원에서 7만 6000원으로 낮췄다. 내년부터 AI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의 공급과잉 현상, 스마트폰과 PC 수요 감소에 따른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의 수요 위축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맥쿼리도 9월 말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12만 5000원에서 6만 4000원으로 낮추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했다. 맥쿼리는 “D램 메모리 공급 과잉으로 평균판매가격(ASP)이 하락 전환한 가운데 전방 산업의 수요 위축이 실적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최근 반도체 수출 회복 흐름을 들어 모건스탠리와 맥쿼리 보고서의 내용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투자 기회를 나타내는 토빈 Q를 보면 반도체 산업의 상황이 그다지 녹록하지는 않다.
토빈 Q는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1918~2002년)이 제시한 개념으로 주식 시장에서 평가된 기업의 시장가치를, 기업이 보유한 실물자본의 가치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미래 이익에 대한 기대가 주식 시장 가치에 반영된 기업일수록 토빈 Q가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토빈 Q가 높을수록 기업들은 미래 기대 이익을 노리고 투자를 더욱 늘리게 된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우 최근 5년(2018~2022년) 토빈 Q가 과거 5년(2013~2017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산업별로 보면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부품 및 컴퓨터 제조업의 토빈 Q 증가폭은 다른 제조업 분야에 비해 낮다. 의약품 제조업의 경우 토빈 Q가 2013~2017년 2.3에서 2018~2022년 3.7로 1.4포인트나 증가했다. 또 전기장비 제조업도 같은 기간 토빈 Q가 1.5에서 2.2로 0.7포인트 늘어났다. 이에 반해 반도체 등 전자부품·컴퓨터 제조업의 토빈 Q는 2013~2017년 2.0에서 2018~1022년 2.3으로 0.3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가 다른 산업보다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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