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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전설이 된 국민차 부활이 별로 반갑지 않은 이유

실용적인 소형차에서 재미 위한 세컨드카로 변신…재해석 좋지만 계륵 같은 포지션 경계해야

2024.10.02(Wed) 13:28:39

[비즈한국] 유럽의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느 정도 복구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경제성장으로 가는 길을 닦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출현한 피아트 500, 시트로엥 2CV, 오스틴 미니, BMW 이세타 등의 많은 소형차가 서민의 발 역할을 하며 거리 구석구석을 누볐다. 상징성은 물론 디자인도 독특한 이들은 현대적인 해석을 거쳐 부활한 경우가 많다.

 

1938년 선보인 ‘딱정벌레’ 폭스바겐 비틀은 히틀러의 지시로 시작된 국민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당시 평균 독일인 가족의 규모에 맞춰 성인과 어린이를 태우고 짐도 넉넉하게 실을 수 있는 국민 소형차를 목표로 개발됐다. 비틀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94년이다.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콘셉트 원’(Concept One)은 오리지널의 외관 특징인 거대한 앞뒤 펜더를 살리면서 원형과 반원을 테마로 하여 재해석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호평을 받은 콘셉트 원은 1998년 뉴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그대로 양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피아트 500, 오스틴 미니, 폭스바겐 비틀과 같은 소형차들이 서민의 발이 되어 거리를 누볐다. 이들 차량은 현대적인 디자인 해석을 거쳐 다시 부활했지만, 본래의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패션카나 세컨드 카로 변모했다. 사진=폭스바겐 제공

 

1959년 데뷔한 오스틴 미니는 3m 남짓한 작은 차체에 전륜구동 소형차가 갖춰야 할 모든 설계를 구현한 엔지니어 알렉 이시고니스 경의 역작으로 불린다. 큰 변화 없이 생산되던 미니는 2000년 풀 모델 체인지됐다. 브랜드를 인수한 BMW는 새로운 미니를 내놓으면서 타원형 헤드램프와 하나로 이어진 듯한 윈도우 라인 등의 특징을 살림으로써 오리지널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드라이빙 머신을 지향하는 모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듯, 경제적인 소형차보다 운전 재미에 초점을 맞춘 펀카, 패션카로 성격을 바꿨다. 미니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에 들어간 유니언 잭 디테일은 ‘디자인’이 강조된 차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 500이 모습을 드러냈다. 500이란 이름은 1936년 처음 쓰였고 1957년 선보인 새로운 500을 통해 유명해졌다. 중소형차 메이커로서 피아트의 전성기를 상징하기도 하는 500의 외관 디자인 특징은 루프에서부터 아래로 완만하게 퍼지는 사다리꼴 실루엣과 차체 측면을 병행하게 가로지르는 두 줄의 캐릭터 라인이다. 2007년 출시 50주년을 맞아 재출시된 500은 사다리꼴 실루엣과 캐릭터 라인을 그대로 살렸다.

 

비틀과 미니는 재해석된 디자인이 오리지널의 기본 정신을 잃은 채 대형화되고 비대해졌으며, 경제성을 강조했던 초기 모델들과 달리 고가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서 실패하기도 했다. 소형차의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새로운 모델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BMW 제공

 

부활한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경제적인 운송 목적보다는 재미를 위한 세컨드 카, 패션카에 가깝게 변신했다는 점이다. 공간 활용에 사활을 건 오리지널 미니는 부품 하나도 세심하게 고민했다. 각 바퀴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구현하면서 비용과 무게를 낮추기 위해 고무 재질의 콘 서스펜션을 쓴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신형 미니는 차급 자체가 달라 보일 정도로 오리지널보다 눈에 띄게 커졌다. 비틀과 500도 소형차가 가져야 할 덕목보다 스타일링에 치우친 애매한 구성으로 보인다. 셋 다 전체적으로 거품이 붙어 너무 비대해졌다. 비틀이 수년간 판매 부진을 겪다가 결국 단종된 것도 애매한 포지션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크라이슬러코리아가 피아트 500을 한국 시장에 처음 출시할 때 터무니없는 고가 정책을 내세우다가 실패,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을 1000만 원가량 낮춘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코미디 같은 일화다. 아무리 피아트가 한국인에게 낯선 브랜드라고 해도 곳곳에 번쩍거리는 크롬 장식 몇 개로 고가를 정당화하기엔 무리였다.

 

자동차가 꼭 기본 목적에만 충실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양한 틈새 모델의 등장은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날로 고급화, 대형화되는 것은 소형 클래스라고 예외가 될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재해석된 아이콘들이 하나같이 계륵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흐르는 것은 안타깝다. 그저 트렌디하기만 한 디자인 대신, 큰 부분부터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소형차의 기본을 고민하면서 한 끗의 세련됨을 잡은,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덜어낸 모델을 보고 싶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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