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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흑백요리사' 이건 최현석을 위한 판! 근데 이제 백종원을 곁들인

'이븐'한 요리 대결 아니지만 방송의 '익힘' 정도는 훌륭

2024.10.02(Wed) 12:56:24

[비즈한국] 10월 1일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 8, 9, 10화를 보고 느꼈다. 아, 이건 최현석 셰프를 위한 판이구나. 최현석이 워낙 방송을 잘 알기도 하고, 방송국 놈들의 염원도 실렸을 테지만, 심지어 ‘예능신’까지 최현석을 돕는구나. 장안의, 아니, 세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서 돋보이는 캐릭터는 여럿이나 가장 방송을 잘 휘어잡은 건 단연 최현석이다. 설령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지라도 그가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힐 것은 분명하다.

 

‘흑백요리사’는 수저론을 대입해 요리 서바이벌에 계급의식을 끼얹어 시선을 집중시키더니, 1:1 대결에선 안대를 착용한 심사로 ‘수능 정시’ 같은 빡빡한 공정을 들고 나와 화제를 증폭시켰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가 처음 공개된 1~4회까지만 하더라도 도파민에 절여지지 않은, 간만에 인간에 대한 존중이 돋보이는 요리 서바이벌이란 느낌이 강했다.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에 맞춰,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수저론을 도입해 미쉐린 별을 단 스타 셰프 등 명성과 경력이 짱짱한 ‘백수저’와 재야의 고수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흑수저’로 나뉘었음에도 그랬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자부심이 있는 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도 확연한 느낌이랄까. 특히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에게 도전하는 흑수저 셰프들의 모습에선 무협 서사물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며 환호를 샀다. 

 

2주차 공개된 5~7화와 3주차의 8~10화는 ‘역시 방송국 놈들, 예능 잘 만드네’라는 감탄이 나온 회차였다. 흑백으로 나뉜 팀전을 보여줬던 6, 7화에서 대학의 팀플 과제 수행 내지는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들의 팀워크를 생생하게 엿보는 즐거움을 줬다면, 8~10화에선 이 방송이 최고의 요리를 뽑는 대결이 아니라 방송이 구현할 수 있고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만족도 선에서 최고의 셰프를 뽑는 프로그램임을 명확하게 천명한 느낌이랄까. 

 

흑수저에 비해 백수저가 개성에서 밀릴 것 같다고?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2 우승자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최강록, ‘빠스’를 전국민에 각인시킨 정지선, “무, 물코기” 한 마디로 웃음폭탄을 안긴 에드워드 리를 보면 그런 염려는 노노. 사진=넷플릭스 제공

 

사실 ‘흑백요리사’에서 최후의 결승 2인은 몰라도 세미파이널 8인에 올라올 캐릭터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1:1 대결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안대를 쓰고 직관적인 맛에만 집중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1:1 대결 직후 심사위원들이 뽑은 패자부활자는 흑수저 ‘중식여신’과 ‘만찢남’이었다. 흑백의 수를 맞추기 위함도 있겠지만 방송 측면에서 어떤 캐릭터를 뽑아야 할지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중식 여왕이라 불리는 정지선 셰프에 도전하는 포지션인 중식여신은 물론, 만화로 요리를 배웠다는 수식어로 ‘제2의 최강록’으로 여겨질 만찢남은 방송에서 쉽게 버릴 수 있는 패가 아니다.

 

흑백 혼합 레스토랑 미션에서 2, 3위를 차지한 팀에서 세미파이널로 올릴 8인에 속할 생존자를 뽑을 땐 이런 심리가 더욱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팀에서 ‘나폴리 맛피아’를 생존자로 올리는 데는 물론 타당한 이유가 덧붙여졌지만, ‘맡은 자리에서 맡은 일을 명확히 해내는’ 서포트 포지션으로 같은 팀원이었던 요리연구가 이영숙이나 ‘급식 대가’가 모자랐을까? 나폴리 맛피아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에드워드 리를 보좌하는 역할을 잘 해내긴 했으나 그것이 세미파이널에 오를 이유로는 만족치 않아 보인다.

 

팀전에서 ‘메시와 호날두’급의 썰기 실력을 보여준 ‘이모카세 1호’와 ‘급식 대가’. 그리고 요리연구가 이영숙. 이모카세 1호는 팀전 우승으로 세미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급식 대가와 이영숙 셰프는 개인전에서 덜 조명되어 아쉬움을 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이런 흐름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건 최고의 요리를 뽑는 대결이 아니다. 최고의 요리란 건 얼마나 주관적인가. 안대를 쓰고 맛을 평가했음에도 백종원과 안성재 심사위원 사이에서 의견 차는 종종 벌어졌다. 고기가 얼마나 이븐하게 구워졌고, 채소가 얼마나 타이트하게 익혀졌는지를 객관적 지표로 수치화한다 치더라도, 그걸 종합해 최고의 요리를 뽑는 건 다른 문제다. 이미 깐깐함의 대명사 안성재 셰프가 급식 대가의 요리를 보고 급식의 추억을 떠올리고, 나폴리 맛피아가 선보인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게국지 파스타’를 맛보고 “할머니와 요리사, 가장 맛있는 레시피죠”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상, 이 방송이 서바이벌 예능이란 점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포착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낸 최현석 셰프가 유리하다.

 

흑백 팀전에서 등장한 100인의 미스터리 심사단. ‘피지컬 100’ ‘더 인플루언서’ 등에서 보여준 넷플릭스 예능의 스케일이 이 방송에서도 어김없이 빛났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최현석은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아는 스타 셰프로, 국내 인지도로 봤을 때 이 프로그램에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백수저 셰프 대부분이 굳이 이런 서바이벌 예능에 나올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심사위원급 커리어를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최현석은 잃을 게 더 많아 보이는 입장이었다. 경력과 실력이 월등함에도 방송을 통해 유명해졌고 동시에 ‘허세’라는 키워드를 장착한 만큼 빨리 탈락하면 실력에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산이 깎여도 산이지’란 반응을 얻은 여경래 셰프와는 또 다른 부분이다). 실제로 백종원과 안성재 사이 가장 격렬한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는 최현석의 1:1 대결을 보고 ‘분자요리 이제 트렌드 갔고, 최현석도 한 물 갔다’라는 반응도 소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팀전에서 최현석은 왜 자신이 최현석인지 유감없이 증명했다. 그것도 가자미 없는 가자미 미역국이라는, 지극히 최현석다운 창의적인 도전으로.

 

‘흑백요리사’에서 방송의 취지와 허점을 명확하게 캐치하며 승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최현석 셰프. 특히 팀전에서 그의 판단과 지략이 통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흑백 혼합 레스토랑 미션에서도 마찬가지. 서바이벌 포맷이라는 점에서 평가단의 지출이 평상시와 다를 것이라 판단해 높은 음식 단가를 책정한 그의 지략은 빛난다. ‘이게 무슨 (정상적인) 레스토랑 미션이야’라며 투덜거릴 요소가 많음에도, 그 요소의 허점을 캐치한 건 최현석밖에 없다(심지어 심사위원들도 높은 단가에 의문을 표했다). 앞선 팀전에서도 재료의 부족함을 빠르게 캐치하고 그걸 싹쓸이해도 룰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캐치한 건 최현석뿐이었다. 덕분에 팀의 승리는 물론이고 시청자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세미파이널 미션에서 봉골레에 마늘을 빼먹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뒤늦게 깨닫곤 “저는 틀리고 안성재 심사위원이 맞았습니다”라며 스스로 “마늘을 빼먹다니, 미친놈이죠”라는 대사를 남길 땐, 예능신이 최현석의 어깨를 감싸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니까.

 

백종원 또한 자신이 왜 백종원인지 증명했고, 대중의 편견 또한 부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최연소 미쉐린 3스타 셰프인 안성재는 그 특유의 심사평 패러디가 한동안 오래갈 듯. 사진=넷플릭스 제공

 

또 한 명의 수혜자를 꼽자면, 역시 방송과 대중을 잘 아는 백종원 심사위원. ‘백종원은 직관적인 맛에 익숙해 파인다이닝은 잘 모르지 않느냐’는, 심지어 방송 참가자 내에서도 흘러나온 백종원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흑백요리사’는 산산이 부순다. 빠스 먹는 장면이나 짬통에서 잔반을 맛보는 장면 등 여러 장면에서 백종원의 활약이 빛났다. 안성재, 최강록, 정지선, ‘트리플 스타’, ‘요리하는 돌아이’ 등 여러 캐릭터들이 돋보이고 있음에도 최현석과 백종원에 계속 눈길이 가는 건,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타파하고 명성을 더욱 끌어올린 덕분. 10월 8일 공개될 남은 결승의 우승자가 궁금하면서도 미치도록 궁금하진 않은 이유가 그래서다. 그나저나 이 요리사들 식당 웨이팅, 왜 이렇게 험난한가. 최강록의 무조림은 내년에나 맛볼 수 있으려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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