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앞으로 우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물론 천문학자는 예언가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우리가 현재 파악하고 있는 물리 법칙이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앞으로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앞으로 40억~50억 년 정도가 지나면 결국 태양은 비대하게 부풀면서 진화를 멈추고 행성상 성운을 남기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미래에 우주에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예측이 있다. 우리 은하가 이웃한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해 하나의 거대한 은하로 반죽된다는 것이다.
2008년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서로 중력을 주고받는 과정을 총 130만 개의 파티클로 구성된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했다. 그 결과 두 은하가 약 50억 년 후에 하나로 반죽되어 거대한 타원 은하가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는 곧바로 천문학계에서 빠르게 받아들여졌고, 이제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최근 업데이트된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은하의 미래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은하는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안드로메다은하가 우리 은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 천문학자 베스토 슬라이퍼의 스펙트럼 관측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슬라이퍼는 안드로메다은하의 스펙트럼이 아주 짧은 파장 쪽으로 치우쳐서 관측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두 은하가 서로를 향해 거의 110km/s의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두 은하가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서서히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많은 시뮬레이션들은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하나로 병합될 것이라는 예측을 지지했다. 성질 급한 천문학자들은 50억 년에서 70억 년은 지난 뒤에야 완성될 하나로 합쳐진 은하에게 ‘밀코메다’라는 그럴 듯한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밀키웨이와 안드로메다의 이름을 앞뒤로 절반씩 잘라서 붙인 이름이다).
워낙 많은 곳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시나리오다 보니, 이러한 예측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결국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를 예측하는 일은 꽤 까다롭다.
우선, 놀랍게도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의 정확한 질량을 아직도 잘 모른다. 단순히 빛을 내며 밝게 빛나는 별들뿐 아니라 별과 별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암흑 물질까지 포함해야 은하의 정확한 질량을 잴 수 있다. 당연히 암흑 물질은 직접 볼 수 없다. 대신 은하 전체 중력에 붙잡혀 궤도를 맴도는 별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각 별을 붙잡고 있는 은하 중력의 세기, 곧 은하의 질량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은하 안에 살고 있으니 우리 은하의 질량을 재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별과 가스 구름이 너무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채워진 은하수 속의 별들을 하나하나 분간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전히 천문학자들이 추정하는 우리 은하의 질량은 두 배 정도 오락가락한다.
그렇다고 해서 안드로메다은하의 질량을 재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250만 광년이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참 애매한 거리다. 안드로메다은하 주변을 맴도는 위성은하나 구상성단 정도까지는 잘 분간할 수 있지만, 개개의 별을 보는 건 여전히 까다로운 문제다. 민망하게도 천문학자들은 아직도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 둘 중에 누가 더 무거운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과연 밀코메다 은하가 완성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각 은하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위성은하들의 존재다. 위성은하들은 물론 중심의 거대한 메인 은하에 비해서는 질량이 100에서 1000분의 1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무시할 수 없다. 또 위성은하들은 겨우 수만에서 수십만 광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중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효과가 빠르게 줄어든다. 따라서 훨씬 먼 250만 광년 거리에 놓인 안드로메다은하 못지않게, 비교적 가까이 붙어있는 위성은하에 의한 효과도 만만치 않다.
현재까지 우리 은하 주변에서 실제 관측돼 그 존재가 확인된 위성은하의 수는 60개 정도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적게는 100여 개에서 많게는 500개 수준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많은 위성은하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숨어 있을 거라 추정한다. 이러한 위성은하들은 당연히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의 궤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들을 모두 고려할 수 없다면, 우리 은하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완벽할 수 없다.
현재 가이아 위성은 우리 은하 속 별들뿐 아니라 우리 곁을 맴도는 마젤란은하를 비롯해 비교적 가까운 위성은하 속 별들의 움직임까지 추적한다. 우리 주변 수억 개 별들의 정확한 3D 공간 분포 지도와 세밀한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 가이아의 대활약 덕분에 우리는 이전에 비해 더 정교하게 우리 주변 별들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가이아의 관측 결과를 통해 업데이트된 정보를 바탕으로 은하 충돌 시뮬레이션을 다시 세밀하게 구현했다. 그 결과가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만 세팅한 상태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니,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실제로 충돌할 가능성은 겨우 50%로 나왔다! 50 대 50으로 두 은하가 충돌하거나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무책임한 예측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할 가능성이 당연히 100%라고 생각해왔다. 그랬던 예측치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시뮬레이션에 규모가 조금 큰 위성은하 하나를 더 적용했다. 안드로메다은하 곁을 맴도는 삼각형자리 은하를 새롭게 추가했다. 이 위성은하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를 중심으로 하는 국부은하군에서 세 번째로 큰 은하다. 따라서 이 은하의 중력도 두 거대 은하의 충돌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 삼각형자리 은하까지 적용했더니, 다시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의 충돌 가능성은 3분의 2 수준으로 상향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대마젤란은하까지 적용했더니,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의 충돌 가능성이 다시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충돌 가능성 50%의 경우에서도, 실제 두 은하의 충돌이 벌어지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80억 년 후로 예측되었다.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앞으로 40억~50억 년 안에 반드시 충돌해 병합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가능성도, 예상 충돌 시점도 너무나 다르다!
설령 두 은하가 충돌해서 끝내 밀코메다 은하가 만들어지더라도 그 시점은 원래 예상했던 것에 비해 한참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쯤이면 이미 우리 태양계는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태양은 진화 막바지 단계를 거치고, 태양 표면 속으로 지구가 홀랑 흡수된 뒤일 것이다. 업데이트된 예측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굳이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할 때 지구가 무사할지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그때는 이미 지구가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작은 돌멩이가 지구에 언제 추락할지를 예측하는 것도 아니고, 별 수조 개가 잔뜩 모여 있는 육중한 두 은하가 언제 충돌할지, 아니 둘이 충돌하기는 할지조차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 우주가 얼마나 작은 변수에도 운명이 달라지는지, 우주가 얼마나 예민한 세계인지를 보여주는 증빙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할까? 그동안에는 아주 자신 있게, 당연하다는 듯이 답을 했지만, 이제는 좀 더 신중하게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나를 소개할 때 은하들의 충돌과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소개했다. 당연히 그 중에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 커플도 포함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충돌과는 거리가 먼 운명에 놓인 은하에 사는지도 모른다. 먼 미래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한다면 우리 태양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걱정은 굳이 할 필요 없는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386/1/461/978865?login=false#1695398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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