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1월 정부가 폐지를 발표한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별다른 변화 없이 10월 1일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가계 통신비를 낮추고 소비자 간의 구매 가격 차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단통법은 논란 끝에 사라지게 됐다. 최근 국회에서 단통법 폐지 이후의 대책을 두고 논의가 이어진 가운데, 단말기 유통점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가 단통법 폐지 촉구와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단통법은 이동통신사 간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던 2014년에 도입됐다. 이통사가 지원금을 살포하면서 단말기 유통점(대리점·판매점)마다 할인 수준이 달랐고, 소비자마다 다른 가격에 단말기를 구매하면서 가격 차별과 정보 비대칭 문제가 지적됐다. 단통법은 이를 막기 위해 공시 지원금을 만들고, 유통점이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추가 지원금(공시 지원금의 최대 15%)을 도입했다. 자급제 등 단말기만 구입하는 소비자를 위해서는 통신비 할인(선택약정 할인제도)을 제공했다. 지난 3월부터는 법 개정으로 이통사를 바꾸면 받을 수 있는 전환 지원금도 신설됐다.
그러나 단통법은 가계 통신비 인하와 가격 차별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원금을 제한하자 ‘성지’로 불리며 불시에 특가로 단말기를 판매하는 불법 판매점이 우후죽순 나타나면서 소비자 간의 정보 격차가 이어졌다. 법안이 시행된 10년 동안 단말기 가격과 요금제 수준이 꾸준히 오른 것도 소비자가 비용 절감을 체감하지 못한 이유다.
결국 정부는 지난 1월 단통법을 국민이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규제로 선정해 폐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단통법은 몇 차례 개정을 거쳐 시행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 유통점을 대표하는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가 지난 9월 30일 간담회를 열고 단통법 폐지를 촉구했다. 단말기 유통점에는 이통사와 직접 거래하는 대리점과,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이통 3사(SKT·KT·LG유플러스)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판매점이 포함된다.
협회가 제안한 단통법 대안 방안은 △온-오프라인 채널 간 요금 할인 혜택 차별 및 고가 요금 강요 금지 강화 △자율규제 및 사전 승낙제 폐지(이동통신 유통업 신고제 전환) △채널별 장려금 차별 금지 △통신사·제조사·대형 유통의 직접 판매 금지 △불공정 행위 처벌을 위한 법 단일화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통한 통신비 경감 방안 마련 등 여섯 가지다.
협회는 특히 사전 승낙제 폐지를 강조했다. 사전 승낙제란 단통법 제8조 ‘판매점 선임에 대한 승낙’에 따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의 사전 승낙을 받은 판매점만 단말기 유통이 가능한 제도다. 7월 24일부터 단통법 개정으로 사전 승낙제도가 강화돼 사전 승낙을 받지 않았거나 거짓으로 게시한 판매점에 과태료를 부과하며, 이들과 거래한 대리점에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협회는 허가 대상을 대리점, 중고 단말기 판매업자, 온라인 판매점, 알뜰폰 유통업자, 대형 유통업자 등 모든 유통망으로 확대하고 ‘신고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관이 유통망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만큼,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함하고 영업 현황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 또 업계, 정부, 소비자단체 등으로 구성된 통신정책협의체를 설립해 대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협회는 단통법이 공정한 유통 질서를 만들지 못해 판매점이 고사했고, 소비자 권익까지 침해했다고 역설했다. 염규호 KMDA 회장은 “지난 10년간 단통법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 아직도 싸게 팔면 전산을 차단당하고, 노인에게 10만 원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게 현실”이라며 “단통법 자체는 소비자 차별을 막는 좋은 법이지만, 정부 기관과 업계 주체의 이권이 모두 달라 개선이 안 됐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협회 측은 “8월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폐업했거나 예정인 곳이 30%가 넘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단통법 이후 음지에서 지원금을 지급하는 마케팅이 심해졌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성지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하부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대놓고 영업하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단통법 이후 유통 채널 간 지원금 차별이 심해지면서 오프라인 판매점이 고사하고 소비자 정보 격차도 심해졌다는 얘기다.
다만 이들은 단통법 대안으로 떠오른 자급제 확대에는 반대했다. 염 회장은 “(단통법 대안 논의가) 진전된 것도 없고 폐지도 안 됐다”면서 “시장의 특성상 자급제 확대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판매점 입장에서는 유통망을 거치지 않는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기성 KDMA 이사는 “자급제도 판매 채널마다 가격 차별이 발생한다. 제조사 자회사와 온라인 판매점이 제공하는 혜택이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자급제 단말기로 알뜰 요금제를 쓰는 것이 가장 저렴한 구매 방법’이라고 소비자가 인식하는 것과는 시각차가 있다.
온라인 채널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하지 않냐는 지적에는 “우리가 말하는 온라인 판매처란 불법 판매처, 숨어서 소비자를 모집하는 비정형 채널을 의미한다”며 “이런 비정형 채널에서는 메신저로 중요 서류를 주고받는 등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도 높다”라며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한편 22대 국회에선 지난 6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법률안(단통법 폐지법,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대표 발의)’이 유일하게 발의된 단통법 폐지안이다. 이 법안은 먼저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의결을 전제로 한다. 단통법 조항 중에서 이용자 혜택, 공정한 유통 환경 조성, 중고 단말기 거래 활성화 등 일부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유지하기 위해서다. 단통법 폐지법은 9월 제1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고,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정안의 통과와 입법 취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선 최근 단통법의 대안과 관련한 공론장이 열렸다. 여야 모두 폐지 자체는 동의하지만 대안을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서다. 8월 22일에는 김현,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단통법 폐지 및 바람직한 가계통신비 저감 정책 마련’ 토론회에서 단통법의 대안으로 ‘완전 자급제’와 ‘절충형 완전 자급제’가 제시됐다.
완전 자급제는 단말기는 제조사에서, 통신 서비스는 통신사에서 판매해 제조사와 통신사의 판매 영역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절충형 완전 자급제는 이동통신사와 대리점은 통신 서비스만 제공하고, 제조사가 단말기를 공급하도록 분리하되 사전 승낙을 받은 판매점만 단말기와 서비스를 유통하도록 허가하는 방식이다.
9월 15일에는 국민의힘이 박충권 의원실 주최로 ‘단통법 폐지 세미나’를 열고 대안을 논의했다. 세미나에는 통신업계 단체와 시민단체, 학계,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법안 폐지 이후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고 소비자 차별을 줄이는 방안이 언급됐다. 당시 단말기 가격 인하와 완전 자급제 도입, 유통망 규제 강화 등의 안건을 두고 이해관계자마다 입장차를 보인 만큼 향후 대안 마련 과정에서 주체별 합의가 관건일 전망이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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