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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주는 것만도 다행인 상황" 의료 피해 환자들 '원치 않는 침묵' 속사정

"의료계 집단행동에 두려움 느낀다" 토로…환자단체들 "여야의정 협의체 아닌 '여야환의정 협의체' 필요"

2024.09.26(Thu) 18:03:51

[비즈한국] 의료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환자에 악담을 퍼붓고,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해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독립투사에 비유하며 모금 운동을 벌이는 등 의료계가 직간접적으로 환자계를 옥죄고 있다. 한 환자단체는 블랙리스트를 두고 “환자를 선택한 의사를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행위로 공공연한 살인 모의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환자단체 안팎에서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 ‘여야의정 협의체’가 아닌 ‘여야환의정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의 한 응급의료센터(응급실)로 환자와 보호자가 들어서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환자 피해 입어도 목소리 내기 두려워”

 

최근 의료계의 집단행동 때문에 진료 피해를 입고도 목소리 내기가 두렵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의료공백으로 수술이 연기된 사이 암이 재발하거나 사망하는 등 인과 관계나 피해가 명백한데도 선뜻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구속된 전공의를 ‘돈벼락 맞게 해주겠다’고 하는 등 의료계가 뭉쳐서 대응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을 하더라도 이들이 어떤 대응을 할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라며 “환자들은 이 상황에 익숙해져 가며 견딜 뿐이다. 암 환자는 8개월이면 중반기가 지나 치료 한 바퀴가 끝나갈 시기다. 지금은 병원을 옮겨 2차 병원에 있는 환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계는 소송 등을 어려워하는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라고도 말한다. 암 환자 A 씨는 “환자들은 계속 진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제한된 분야이기에 불만을 드러내면 다 공유되고, 이런 상황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병원을 옮기면 본인들은 전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첫 진료에서 ‘환자분이 불만이 많으시다면서요’와 같은 말을 듣는다. 환자가 얼마나 당황스럽겠나. 이런 분위기에서 진료기록부를 발급받고 문제까지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는 선택할 수 있는 의료진의 폭까지 줄어들어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느껴진다”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의 의료이용 불편을 해소하고 법률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 및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거나 진료 일정을 조율하도록 하고, 증상 악화 및 입원 지연 등에 대한 법률 상담을 진행한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월 19일부터 9월 6일까지 센터에 접수된 신고는 총 877건으로 수술 지연이 494건(56.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진료 차질 201건 △진료 거절 139건 △입원 지연 42건 순이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의정 협의 대신 여야환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A 씨는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무너진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A 씨는 “소송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포함해 어떤 이유에서라도 원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정도라면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설명하고 사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그런데 그런 의사들은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 환우는 왼쪽 폐에 암 진단을 받았는데 의료진이 오른쪽 폐를 수술했다. 그래놓고도 의료진이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소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재원 접수 건수 전년과 비슷…여야의정 협의체도 환자는 제외

 

환자계가 소송을 택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지난달 기준 피해신고·지원센터에서 법률 상담을 지원한 경우는 345건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집계한 의료사고 건수는 전년과 비교해 별다른 차이가 없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중재원을 거친 의료사고 건수는 의과 기준 한 해 평균 1986건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9년 2479건 △2020년 1936건 △2021년 1886건 △2022년 1782건 △2023년 1849건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집계된 건수는 1002건으로 전년 대비 54.19% 정도다. 대개 소송으로 넘어가기 전 중재원을 거치는 점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다. 

 

이 가운데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논의에서도 환자계가 제외돼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자신할 수 없는데, 그 시간마저 온전히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데 쓰지 못하고 의료개혁 경과를 애태우며 지켜보고 있다. 정치권 일부가 환자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의료계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야를 불문하고 용납할 수 없다”며 “‘여야환의정 협의체’를 만들어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을 차례다. 비록 의사 면허는 없지만 의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이 환자의 눈에는 보인다. 의료개혁의 여러 측면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6월까지 두 차례 진행한 암환자 피해 사례 설문조사도 중단했다. 설문조사 발표 이후 정부나 의료계에서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성주 대표는 “협의회에서 조사해서 알려도 정부는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고, 의료계도 부담을 갖는 모습이 없었다. 8월 이후에는 전공의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블랙리스트까지 문제가 되면서 설문조사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피해신고·지원센터 운영에 대해서는 “행정지도는 지자체에서 병원에 하는데, 지도 이후 환자는 상황을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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