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90년대까지 인류가 행성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그 단어는 곧 태양 주변을 맴도는 태양계 행성만을 의미했다. 태양계 너머 다른 별 곁을 도는 외계행성이 있을 거라 상상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 존재였을 뿐, 실제로 그 존재를 입증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드디어 외계행성의 실체적 데이터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케플러 우주 망원경, TESS 등 다양한 우주 망원경의 대활약 덕분에 만 개가 넘는 외계행성과 그 후보 천체들을 확인했다. 이젠 행성이라는 단어가 태양계 행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계 바깥 다른 별을 맴도는 셀 수 없이 많은 우주의 행성 모두를 의미한다.
사실 인류가 외계행성을 찾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분명하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외계행성 연구는 곧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연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기 좋은 조건을 충족하려면 중심 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구처럼 딱딱한 암석 표면을 가져야 한다. 목성처럼 대기권으로만 덮인 구름 행성이라면 생명체가 발을 딛고 살 대륙이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외계행성 가운데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충족한 행성은 얼마나 될까? 사실 그 비율은 상당히 적다. 오히려 태양계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태양계에서는 전혀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이상한 종류의 외계행성들을 많이 발견했다. 목성처럼 덩치가 거대한 가스형 행성이지만 중심 별에 너무 바짝 붙어 있는 뜨거운 행성이다. 이러한 이상한 행성을 뜨거운 목성형 행성이라고 분류한다.
뜨거운 목성형 행성은 우리 태양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계에서 볼 수 있는 목성처럼 거대한 가스 행성은 모두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만 분포한다. 이는 아주 쉽게 이해된다. 태양에서 먼 곳에서는 가스 물질이 다 날아가지 않고 남아 비교적 가벼운 기체 성분으로 이루어진 가스 행성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반면 태양계 안쪽에서는 열에 강한 암석, 금속으로 이루어진 지구와 같은 작고 단단한 행성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별 주변 가까운 곳에는 단단한 돌멩이들이, 별에서 멀리 벗어난 외곽에서는 가벼운 구름 덩어리 행성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건 우리 태양계만 봤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원리였다.
그런데 태양계 바깥 외계행성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세세한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 천문학자들은 혼란스러워졌다. 행성계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가 태양계 바깥 대부분의 외계행성에는 잘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목성형 행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약한 가스 행성들이 어떻게 중심 별에 바짝 붙어 뜨겁게 달궈졌을까? 우리 태양계는 사실 우주 전체로 보면 독특한 순서로 행성들의 크기가 배열된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닐까?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뜨거운 목성형 행성들이 처음부터 지금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별에 바짝 붙어 100일도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주기로 도는 공전 궤도에서는 가벼운 기체 성분만으로 이루어진 행성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형성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신 원래는 중심 별에서 멀리 벗어난 행성계 외곽에서 탄생한 가스 행성이 모종의 사연으로 궤도가 틀어지면서 조금씩 항성계 중심으로 흘러들어왔을 거라 추정했다. 행성 버전의 이주 현상인 셈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뜨거운 목성형 행성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 시나리오를 입증하는 아주 놀라운 관측적 증거를 발견했다!
천문학자들은 2020년 TESS 우주 망원경을 활용해서 약 1100광년 떨어진 별 TIC 241249530 곁에서 외계행성을 하나 발견했다. 외계행성이 중심 별 앞을 주기적으로 가리고 지나갈 때, 중심 별 밝기가 살짝 어둡게 관측되는 트랜짓을 활용했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또 다른 방법을 활용해 외계행성의 질량까지 파악했다. 행성이 별 곁을 맴돌면서 별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고, 그로 인해 중심 별의 자리가 미세하게 요동칠 수 있다. 그 움직임을 측정하면 별 곁에서 별을 괴롭히는 행성의 중력, 즉 행성의 질량을 파악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행성 TIC 241249530b는 목성 질량의 약 4.98배, 거의 목성 다섯 개를 모아놓은 수준에 맞먹는 아주 육중한 가스형 행성이다.
이 외계행성은 약 165일밖에 안 되는 짧은 주기로 중심 별 곁을 맴돈다. 이 행성의 1년은 지구 1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이 행성이 그리는 궤도가 정말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이라는 사실이다. 행성의 움직임을 꾸준히 관측한 끝에 천문학자들은 타원 궤도가 찌그러진 정도, 이심률이 0.94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심률이 거의 1이라는 건 사실상 거의 직선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크게 찌그러져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행성이 우리 태양 곁을 맴돈다면 중심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는 수성보다 10배 더 가까이 접근하고, 가장 멀리 벗어날 때는 지구 거리까지 다다른다. 이 외계행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행성들 중에서 가장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린다. 행성이라기보다는 거의 혜성에 가까운 궤도다. 게다가 중심 별의 자전과 정반대 방향으로 공전하는 역행을 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움직임을 갖게 된 건 중심 별이 별 두 개가 짝을 이룬 쌍성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독특한 궤도를 그리는 이 행성의 역학적 진화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했다. 앞으로 10억 년 뒤 이 행성의 궤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예측했다.
원래는 이 행성도 평범하게 한 별 곁에서 꽤 먼 거리를 두고 형성된 가스 행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곁에 있는 다른 별과 중력을 주고받으면서 궤도가 심하게 찌그러졌다. 그래서 지금처럼 극심한 이심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결국 이 행성의 궤도는 현재 곁을 맴돌고 있는 중심 별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별 곁에 바짝 붙은 작은 크기의 원 궤도를 그리게 된다. 우리가 오늘날 뜨거운 목성형 행성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궤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찌그러진 궤도를 그린다면 이 외계행성의 대기는 아주 들쭉날쭉할 것이다. 별에 가까이 접근할 때와 별에서 가장 멀리 벗어날 때, 행성 표면에 도달하는 별빛 에너지의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1년 중 가장 더울 때는 1200도까지, 가장 추울 때는 200도까지 온도가 오르내릴 수 있다. 이전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극단적으로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행성은 HD 80606 b였다. 이 행성의 궤도 이심률도 거의 1에 가까운 0.93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기록이 깨진 것이다. 두 행성 모두 극단적인 궤도로 인해 행성 대기의 순환 시스템과 계절 변화도 아주 극단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적인 이심률을 그리는 외계행성들이 조금씩 발견되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뜨거운 목성형 행성의 기원에 실마리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뜨거운 목성형 행성들도 처음부터 이상한 모습으로 생겨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주변에 다른 별이나 육중한 행성의 중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섭동을 받으면서 궤도가 틀어져 조금씩 중심 별 곁으로 다가가면서 지금의 끔찍한 궤도를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행성들은 차가운 목성형 행성이 뜨거운 목성형 행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양계 바깥 모든 별 곁의 외계행성을 다 뒤져본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 태양계가 정말 드문 사례인지 아니면 우리와 비슷한 동족들이 흔하게 존재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우주 속 행성의 환경과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다양하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의 외계행성들이 분명 우주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688-3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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