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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때만 반짝, 내용은 복붙' 딥페이크 성범죄 법안 살펴보니

4주 만에 '54건' 발의…"냄비 입법 대신 제대로 된 합의안 통과가 중요"

2024.09.20(Fri) 17:45:44

[비즈한국] 대규모 ‘딥페이크’ 성범죄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국회가 부랴부랴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현행법상 딥페이크 합성물은 불법 촬영물과 달리 형량이 낮고 유포 목적이 아니면 처벌하지 못하는 탓에 범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에서도 대응에 나선 것인데 제도 공백을 메울 실효성 있는 입법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불법 합성물 성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긴급 대학생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대규모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터지자 입법 50건 이상 쏟아져 

 

딥페이크 기반 불법 합성물 성범죄 피해가 전국 대학가를 넘어 초·중·고교, 군대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한 가운데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 발의가 빗발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대규모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가 대두된 지난달 말부터 현재까지 발의된 관련 법안은 총 54건에 달했다. 이 중 법안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에 ‘딥페이크’를 명시한 법안만 총 35건이다. 

 

약 4주간 국회는 불법 합성물 대책 마련에 열을 올렸다. 지난달 27일부터 9월 20일까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관련 법안 54건 중 절반가량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25건)이었다. 유포할 목적이 없더라도 성적 허위영상물 등을 제작하거나 소지·구입·시청한 경우 제재할 수 있도록 처벌 범위를 확대하고 가해자에 대한 법정형을 높이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개별 법안에서 △상습 행위에 대한 가중 처벌(황명선 의원 대표안)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신분 위장 수사 및 신분 비공개 수사’ 근거 마련(조은희 의원 대표안) △수사기관이 피해 영상물을 직접 삭제·보전할 수 있는 ‘보전명령제도’ 신설(박은정 의원 대표안) 등이 제안됐다. 

 

국가적 차원의 피해자 지원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방지법 개정안’도 3건 발의됐다. 현행법상 피해자 지원 사업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맡고 있지만 불법 촬영물과 합성물의 삭제 처리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책이다.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11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이용한 협박, 강요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8건) 등도 잇달아 발의됐다. 이 밖에도 ‘영상물 삭제 등 교원 보호 방안을 규정한 ‘교원지원법’(1건), 치료비·위자료 배상을 규정한 ‘소송촉진법’(2건), 학교폭력예방법’(1건),‘보호관찰법’(1건), ‘방송통신위원회법’(1건) 등의 개정안도 입법이 추진된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현장. 사진=연합뉴스


#“유포 목적 없어도 처벌해야​ 딥페이크 방지법 실효성 확보하려면 

 

발의시기를 살펴보면 사태가 불거진 처음 한 주 동안은 범죄에 가담한 개인의 처벌 강화에 집중됐다가 플랫폼 환경, 교육 현장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부 대안이 추진되는 모습이다.

 

직접 촬영된 불법 영상물과 다르게 허위로 합성한 영상물은 현행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다. 촬영 영상물과 합성 영상물에 대한 규정 차이로 법적 공백이 발생한 것.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지인을 조롱하는 성 착취물 공유 채널에 참여하고, 불법 합성물을 두고 금전 거래가 이뤄졌다는 심각성을 고려하면 당장 처벌이 어려운 현행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입법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형량 강화 등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보좌관은 “작년 한 해 딥페이크 사건 관련 24만 건의 삭제 지원 요청이 있었지만 기소 건수는 100건 정도였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형량 강화가 아닌 최저 형량을 규정하는 게 더 적절하다”며 “입증이 어려운 ‘유포 목적’ 조건이 처벌 규정에 유지되면 실효성 있는 제재가 불가능하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제작하면 처벌한다’는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에만 정치권의 관심이 쏠렸다가 정작 법안 통과는 흐지부지되는 전철을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불법 합성물도 소비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제작·배포한 사람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강력 처벌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국회가 지금은 민심을 무시할 수 없으니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안의 주목도가 떨어지면 최종적으로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야가 합의해 제대로 된 안을 만들고 협력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학교 내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조사 기자회견 현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번에 발의된 법안 대다수가 지난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료 폐기됐던 법안이라는 점 역시 뼈아프다. 허위영상물 소지·구입·시청·저장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지난 2020년 N번방 방지법 논의 과정에서도 필요성이 거론됐지만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긴급 토론회에서는 이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왔다. ‘냄비 입법’이 아니라 법안 실효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그동안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공지능(AI) 교육이 거의 전무했다며 관련 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AI 윤리 교육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에게 AI가 현재 기술임을 인지시키고 범죄 의지를 소멸시켜야 한다”며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성 착취물 제작·유포자 외에 유포 경로로 쓰인 플랫폼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짚었다. 

 

허민숙 입법보좌관은 “경찰은 지금까지 해외 플랫폼과의 협조 문제, 권한 부족 등의 한계를 언급해왔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걸림돌이 됐던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법 요구를 하고, 방심위와 국회가 함께 원칙을 세워야 강력한 근절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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