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0년 전 과학자들은 파블로 피카소의 초기 작품 ‘푸른 방’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작품을 발견했다. 적외선 카메라로 분석한 결과 캔버스를 덮은 물감 아래에서 한 남자의 초상화가 드러났다. 이 미지의 초상화에 담긴 주인공이 누구인지, 피카소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린 건지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이 남았다.
이처럼 적외선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 너머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미지를 밝혀낸다. 우주에서도 그렇다. 적외선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기존의 허블 망원경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천문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발견이 있다. 우주 끝자락에서 계속해서 발견되는 미지의 작은 붉은 반점(Little Red Dots, LRD)이다. 제임스 웹으로 훑어본 다양한 관측 사진을 보면 밝게 빛나는 가까운 별과 은하들 사이 까만 배경 우주에 어딘가 하나씩 꼭 이 붉은 반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 수도 너무 많다. 더 당황스러운 건 이 작은 붉은 반점들이 우리 주변 가까운 우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임스 웹으로 봐야 겨우 볼 수 있는 훨씬 먼 우주를 볼 때만 보인다. 이 반점들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아직 천문학자들은 알지 못한다. 적외선은 우주에서도 숨어 있는 새로운 미지를 들춰내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붉은 반점이 우주 끝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반점을 찾을 목적으로 관측한 것도 아니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서 새로운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면서 우주를 통째로 밝게 비추며 이온화했을 거라 추정되는 재이온화 시기를 입증하기 위해 관측했는데, 사진에서 너무나 많은 붉은 반점이 발견됐다.
이 천체들이 유독 적외선 파장에서 붉게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우주 팽창으로 인한 아주 극단적인 적색편이를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실상 빅뱅 직후 6억~7억 년밖에 안 되는 정말 어린 시절의 우주에 존재한 원시 은하일 것이다.
하지만 은하의 빛을 붉게 물들이는 것은 단순히 우주 팽창뿐만이 아니다. 만약 은하가 굉장히 많은 먼지를 머금고 있다면 은하는 더 붉게 보일 수 있다. 먼지들이 은하에서 새어나오는 빛 대부분을 흡수한 뒤 더 긴 적외선 파장에서 재방출하면서 은하의 빛을 붉은 쪽으로 물들일 수 있다. 먼지는 특히 은하의 정확한 스펙을 파악할 때 천문학자들을 괴롭히는 귀찮은 녀석이다. 은하가 먼지를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에 따라 은하의 밝기, 빛으로 추정하는 은하의 전체 질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을 통해 재이온화 시기의 우주를 관측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 두 가지를 진행하고 있다. EIGER(Emission-line galaxies and Intergalactic Gas in the Epoch of Reionization)와 FRESCO(First Reionization Epoch Spectroscopically Complete Observations)다. 지금까지 아주 좁은 영역의 하늘을 관측했다. 얼마나 작냐 하면, 팔을 쭉 뻗어 엄지손톱이 가리는 면적의 20분의 1 정도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천문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그들은 “우주 끝자락을 손톱으로 살짝 긁었을 뿐”이다.
이 붉은 얼룩들이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그 크기가 너무나 작게 추정되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 사진에 찍힌 붉은 반점의 사이즈를 통해 유추한 이들의 크기는 500광년을 채 넘지 않는다. 더 작으면 100광년 수준까지 작은 것들도 보인다. 이건 은하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작다. 우리 은하만 해도 그 지름이 10만 광년에 달한다. 그런데 이 붉은 반점들은 평범한 은하에 비해 거의 100~1000배 이상 크기가 더 작아야 한다. 정말 수천만~수억 개가 넘는 별들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진 은하라고 볼 수 있을까?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작고 붉은 반점 중심에 이제 막 성장하는 아기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있을 거라 추정한다. 그 근거 중 하나는 붉은 반점의 스펙트럼에서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수소 원자의 방출선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있다는 것은 그 주변에서 강한 중력에 붙잡힌 채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가스 구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수소 원자를 머금은 가스 구름은 특정한 파장에서 빛을 방출한다. 그 흔적은 은하 전체의 스펙트럼 속에 얇고 뾰족한 방출선의 형태로 남는다. 그런데 가스 구름이 중심 블랙홀 중력에 붙잡힌 채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그로 인해 방출선의 파장이 더 짧거나 긴 쪽으로 치우치는 도플러 효과를 겪게 된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파장이 양쪽 방향으로 치우치는 정도도 더 커지고, 방출선은 더 펑퍼짐한 모양으로 넓어진다. 중심에 거대하고 난폭한 블랙홀을 품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성 은하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은하 중심에서 움직이는 가스 구름의 속도를 잴 수 있다면 그 중심에서 성장하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 규모도 파악할 수 있다. 제임스 웹으로 확인된 붉은 반점이 정말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은하라면 그 속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수백만에서 수억 배 수준으로 다양하고 무거워야 한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당황스럽다. 이 붉은 반점들은 겨우 우주가 6억~7억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존재한 아주 어린 원시 은하들이다. 지금 우주 역사에서 겨우 5%밖에 지나지 않은 아주 극초반이다. 이런 초기 우주였다면 당연히 은하도 그 중심의 블랙홀도 이제 갓 성장을 시작한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고, 가벼운 단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제임스 웹은 우주 초기에 이미 태양 질량의 수억 배 수준까지 육중하게 성장한 블랙홀이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유치원에 갔는데 키 2m의 덩치 큰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중심의 블랙홀 질량을 은하 전체 질량과 비교했을 때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우리 은하와 같은 일반적인 규모의 은하들은 그 전체 별 질량에 비해 중심의 블랙홀 질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적다. 은하 전체 질량의 1000분의 1밖에 안 된다. 거의 모든 은하가 이 비례 관계를 일정하게 따라간다. 은하 전체 질량이 2배 더 무거워지면 그 중심에 살고 있는 블랙홀 질량도 2배 더 무거워진다.
초기 우주에서 제임스 웹을 통해 발견한 붉은 반점들도 당연히 이 비례 관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붉은 반점 은하들의 중심 블랙홀은 그 덩치에 비해 지나치게 무겁다. 이들이 정말 은하라고 가정했을 때 추정되는 전체 질량의 30~40%를 차지한다!
이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질량 비율이다. 은하를 블랙홀 팥 앙금이 들어간 호빵이라고 본다면 보통 일반적인 우리 주변의 은하들은 호빵 안에 들어 있는 팥 앙금의 비율이 정말 적다. 사실 그냥 빵 덩어리다. 그런데 제임스 웹으로 확인한 붉은 반점 호빵들은 그 안의 절반 가까이가 팥 앙금으로 채워져 있다. 우주에서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인심 가득한 팥 앙금을 맛볼 수 있다. 그동안 팥 앙금 가득한 달콤한 맛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천문학자들을 체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초기 우주에서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블랙홀들이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도 문제가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은하 중심 블랙홀은 은하 바깥 멀리까지 강력한 엑스선, 감마선 등의 고에너지 빛을 방출한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으로 폭풍 성장이 의심되는 붉은 반점 은하들을 발견했고, 이들에서 정말 강력한 고에너지 엑스선이 방출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앞선 찬드라 엑스선 우주 망원경 관측 결과와 대조했다. 하지만 그 어떤 엑스선도 확인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빨리 성장하는 블랙홀이 있다기에는 너무 조용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붉은 반점들이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을 품지 않은, 단지 별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원시 은하의 한 형태일 가능성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은하 중심에서 폭풍 성장하는 블랙홀은 일반적인 별 하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낸다. 그래서 제임스 웹 관측으로 확인한 붉은 얼룩들의 전체 에너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블랙홀이 없다고 가정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블랙홀보다 훨씬 에너지가 적은 별들로 붉은 얼룩의 에너지 전체를 다 채우려면 지나치게 많은 수의 별들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붉은 반점은 그 크기가 너무 작게 추정된다. 겨우 100~500광년 스케일이다. 우리 은하의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비좁은 공간에 우리 은하 못지않게 많은 수의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정도로 높은 밀도로 별이 모이게 된다면 그냥 그대로 서로 반죽되면서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이 붉은 반점들이 초기 우주에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퀘이사의 아기 버전일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반점들은 아직까지 은하 천문학 분야에서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은하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들의 성장과 탄생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은하 중심에서 거대한 블랙홀이 형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현장일 수 있어서다. 그리고 은하의 전체 질량과 그 중심 블랙홀의 질량이 어떻게 똑같은 비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둘의 공생 관계의 비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제임스 웹에 발견되는 붉은 반점들은 천문학자들과 빅뱅 우주론에게 적신호가 아닌 청신호가 되고 있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4arXiv240500504M/abstract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d4265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d2345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d55f7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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