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추석 연휴 기간에도 환자가 재이송되는 ‘응급실 뺑뺑이’는 여전했다. 이 가운데 손가락 절단 환자를 받지 않았던 의료기관 중 한 곳인 전남대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가 “착한 뺑뺑이였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시간을 쓰는 것이 응급실 뺑뺑이라면, 그것은 착한 뺑뺑이며 환자를 위한 선의”라고 설명했다. 한편 응급실 뺑뺑이가 증가하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를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응급실에서 무조건 대기하는 것보다 시간 더 아꼈다” 주장
전남 광주의 손가락 절단 환자가 인근 의료기관 네 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한 뒤 전주에서 수술을 받은 일을 두고 ‘착한 뺑뺑이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용수 전남대학교 응급의학과 교수는 16일 페이스북에 “모든 상황을 뭉뚱그려 응급실 뺑뺑이라고 낙인 찍어서는 안 된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당시 환자는 전남대·조선대병원과 서구 소재 종합병원 한 곳, 동구 소재 정형외과 수지 접합 수술 전문병원 한 곳 등으로부터 진료를 받지 못했고, 신고 접수 두 시간여 만에 100여 km 떨어진 전북 전주의 병원에서 접합 수술을 받았다.
조용수 교수는 “전문 의료진 부재로 환자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조 교수는 “광주에 접합 수술 가능한 의사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남대병원 수지접합은 주로 성형외과에서 담당하는데, 당시 성형외과 전문의 2명은 각각 다른 환자의 수술과 안면봉합을 하고 있었다. 대기 중인 열상환자도 5명이었다”며 “접합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의사들이 바빠서 환자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의료 인력도 명절을 대비해 1명씩 늘린 3명(응급의학과)과 2명(성형외과)이 근무 중이었다.
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손가락 절단 환자는 얼마든지 우리 응급실에 수용할 수 있었다. 먼저 온 환자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대기시켜 6시간쯤 기다렸다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누구도 불만 없이 사건은 종결됐을 것”이라며 “이게 정의롭나. 전북으로 이동해 환자는 수술까지 수 시간을 아낀 셈이다. 무엇이 진정 환자를 위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환자를 먼저 치료하지 못한 이유는 수술방, 보조인력, 장비 등 수술 자원이 이미 사용 중이었으며, 대기 환자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규 환자를 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가장 빠르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시간을 쓰는 것은 ‘착한 뺑뺑이’며, 이 같은 뺑뺑이는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19가 연락 없이 환자를 전부 응급실에 두고 가던 예전이었다면 환자는 전남대병원에서 꼼짝없이 6시간을 허투루 소모했을 것”이라며 “응급실은 다양한 이유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모든 상황을 뭉뚱그려 응급실 뺑뺑이라고 낙인찍는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시간을 쓰는 것이 응급실 뺑뺑이라면 그것은 착한 뺑뺑이며 환자를 위한 선의”라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뺑뺑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당연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것에 공감한다. 하지만 응급실의 모든 수용 불가가 곧 응급실 뺑뺑이는 아니며, 복잡한 현실에서 그것을 명확히 나누는 것은 쉽지 않아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며 “국민 대다수가 명절 연휴를 만끽하고 있던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던 이들에게 환자를 거부했다는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조 교수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이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일을 언급하며 “조선대병원이 심정지 환자를 받지 않았단 이유로 뭇매를 맞았지만, 조선대병원을 건너뛰고 전남대병원으로 이송할 당시 시간 차이는 1~2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 부활해야” 의견도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119 구급대의 환자 재이송 건수는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월 19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190일 동안 119 구급대가 병원으로부터 환자 수용을 한 번 이상 거부당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긴 재이송 건수는 총 307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 190일 동안인 지난해 8월 11일부터 올해 2월 17일까지의 집계치와 비교해 약 46.3% 증가한 수치다. 두 차례 이상 재이송한 경우도 61건에서 114건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병원의 수용 거부 이유로는 ‘전문의 부재’가 가장 많았다. 전체 재이송 건수의 40%인 1216건이 해당하며,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과 비교해 37.7% 증가했다. ‘병상 부족’으로 재이송한 건수는 14%인 452건이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250건→455건 △인천 85건→212건 △대전 13건→57건 △강원 156건→308건 △제주 80건→186건으로 늘었다. 이처럼 응급실 뺑뺑이가 급증하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인력 및 자원 부족을 지적하면서도 응급 환자의 병원 선정 및 전원 등을 담당하던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를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정부는 권역별 응급환자의 전원을 지원하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 여섯 곳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조 교수는 최근 충북 청주에서 임신 25주 차 산모가 의료기관 75곳으로부터 거부당한 사례를 언급하며 “소방은 전국 응급실과 통화해 실패했지만 도 비상의료관리상황반은 지역 산부인과 전문병원 원장에 직접 전화해 전원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응급실 의사가 아닌 배후 진료과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배후 진료과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1339의 업무 방식이 이러했다. 이번 산모 사례를 통해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없었다고 밝혔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열고 “추석 연휴 기간 개별 사례로 봤을 때 의료 이용이 불편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큰 혼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의 전문의 진찰료 가산, 응급실을 거친 중증·응급수술 가산 등은 응급의료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며 연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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