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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119 소방대원, 몸보다 힘든건 '심리적 무력감'

이송 시간 60분 이상 '1만 3940건', 전년비 22% 증가…PTSD 우려되지만 상담 프로그램 한계

2024.09.17(Tue) 15:56:09

[비즈한국] 의료공백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진료 가능’ 답변을 받을 때까지 환자를 처치하며 전화를 수차례 돌려야 하는 소방대원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와 보호자도 의료기관의 인력 부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대원들은 계속해서 상황 설명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구급대가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 점에 대해 심적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환자를 재이송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지속되며 소방대원들이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로 환자와 보호자가 들어서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시간 지날수록 무력감 느껴…심적 부담 누적돼”

 

병원에서 인력 부족으로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이송에 1시간 이상 걸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방대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환자 곁을 지키면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점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소방대원 A 씨는 “대원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원치 않는 상황에 놓여 심리적으로 평온하지 못하다. 이들을 안정시키고 컨트롤해야 하기에 평소에도 스트레스가 되게 많지만, 최근에는 이동 시간 자체가 증가하면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A 씨는 최근의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구급대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심적 부담도 불어나고 있다. A 씨는 “구급대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했으면 제대로 된 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응급처치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서고 있다”며 “30분 동안 중증도 환자를 구급차에서 처치하면서 전화 돌리는 것과 2시간 동안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환자와 1시간 반 더 같이 있었다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A 씨는 “1시간 걸리는 출동이 두 건 있는 것과 한 건이 2시간 걸리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가 훨씬 심적 부담이 크다. 환자와 보호자는 신속하게 병원에 가기를 원하고 대원으로서는 이를 지체 없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로바로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것이다. 응급실 운영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환자와 보호자도 인지하고 계시긴 하지만, 대원은 병원에서 받아 주지 않는 이 상황을 계속해서 안내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이송시간 60분 이상 ‘1만 3940건’…이송 거리, 서울 2.2배 늘어

 

환자와 보호자도 상황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 A 씨의 설명이다. A 씨는 “가장 큰 피해를 보고 계신 분들은 환자와 보호자다. 이분들도 알고는 계시지만 급해서 부르셨는데 이송이 안 되니까 우리에게 답답함을 토로하시기도 한다. 대원들도 수없이 전화를 돌리는데 ‘전화 뺑뺑이’가 벌어지니까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환자분들이 본인이 아는 사람이라든가, 병원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직접 응급실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 앞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의료공백 이후 집계된 통계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소방대원들의 어려움은 여실히 드러난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8월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걸린 시간이 60분을 넘어선 경우는 전국에서 1만 3940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 증가한 규모다. 지역별로는 광주와 전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이송 지연 사례가 늘어났다. 이송 거리도 늘어났다. 환자 발생 현장과 병원 간 이송 거리 중 30km를 넘은 사례를 보면 대전 2.6배(170건→449건), 서울 2.2배(161건→362건), 대구 1.75배(451건→788건) 등으로 나타났다. 

 

재이송 사례도 이미 지난해 전체 건수의 85%를 넘어섰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119 구급대 재이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8월 20일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3597건으로, 지난해 연간 재이송 건수 4227건의 85.1%에 달하는 수치다. 응급실 진료를 두 차례 이상 거부당한 경우는 지난해 기록을 넘어섰다. 응급실 재이송 2회는 121건, 3회는 17건, 4회는 23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는 재이송 2회 84건, 3회 14건, 4회 16건이었다. 

 

#“​상담 인원 제한적…계약 종료 후 상담사 바뀌어 어려움도”

 

소방청은 소방 업무 특성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겪을 우려가 높은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을 위해 △마음건강 설문조사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소방 조직은 지시는 소방청에서 내리지만 각 지자체의 예산으로 운영되다 보니 모든 시도가 동일하지는 않게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찾아가는 상담실의 경우 고위험군을 조금 더 관리하는 정도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은 공지에 ‘최근 몇 년 이내에 참여한 사람은 제외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말했다. 

 

상담은 외부 상담기관과 계약을 맺는데, 이 때문에 계약 종료 후 상담사가 바뀌는 점도 대원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이다. 해당 관계자는 “외부와 계약을 통해 하다 보니 상담사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번 상담을 받아보고 상담사분을 정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업체가 바뀌는 등의 이유로 상담사가 새로 배정되면 대원들은 다시 본인의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업들이 도움은 분명히 되지만 조금 더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원들에 심적 부담을 지우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에 대해 “병원 간, 그리고 관계부처와의 협력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현 시스템이 완벽하게 맞지가 않다. 대원들도 병원이 인력이 없어서 못 받는 상황을 알고 있다. 다만 병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응급실과 관련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한다”며 “대원들이 항상 전화를 하는 이유도 적혀 있는 것과 상황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늦은 시각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이 환자를 받지 못해 적막에 쌓여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정부가 13일 발표한 ‘응급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두고는 “일부 병원의 ‘떠넘기기’ 행태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침에는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춰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앞서의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지침이 과연 상황을 나아지게 할지 모르겠다. 경증인 사람은 응급실에 오지 않는 것이 좋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경증인 사람은 치료가 금방 끝나기 때문에 처방 후 바로 보내면 된다. 기존과 같이 위급한 환자가 오면 접수 순서와 상관없이 이들을 보면 되는 것”이라며 “병원의 어려운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환자를 이송하는 입장에서는 병원의 수용 거부가 더 심해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환자가 재이송되는 ‘응급실 뺑뺑이’는 발생했다. 16일 대전 동구의 한 60대 남성은 복부에 30cm 길이, 1cm 깊이의 자상을 입은 후 4시간 10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119 구급대는 대전 지역 의료기관에 연락했지만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인근 지역의 의료기관 10곳으로부터 진료 불가 답변을 받은 이후에야 천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15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25주 차 된 임산부가 양수가 터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지만 75곳에 전화를 돌리고, 8시간 반이 지난 이후에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날 광주 광산구의 한 50대 남성은 손가락이 절단됐지만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94km 떨어진 전주에서 접합수술을 받았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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