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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아바의 나라'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 만드는 이유

장르적 실험 가능한 K팝, 작곡가에게 매력적…높은 수익 보장하면서도 창작자 자율성 보장이 장점

2024.09.13(Fri) 16:47:08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팝음악 강국 스웨덴이 K팝 산업 성장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K팝 히트곡 중 일부가 스웨덴 작곡가 작품이다. 피프티피프티의 노래 ‘큐피드’와 뉴진스 데뷔곡 ‘어텐션’도 스웨덴 작곡가가 작곡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아바 박물관. 세계적인 팝밴드 아바 이후 스웨덴은 음악 산업 강국이 됐다. 사진=전다현 기자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는 “단순하게 아이돌 시스템 말고, 대안적인 시스템들로 송라이팅(작곡)을 가르치는 등 본인의 음악성을 개진할 수 있게 아이돌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음악 교육 시스템을 봐야 한다. 스웨덴은 아이돌을 키우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1위를 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국내음악 저작권자의 라인업이 스웨덴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스웨덴은 1970년대 ‘아바’ 이후에 학교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하고, 국가적으로 공교육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학습할 수 있게끔 했다”고 말한다. 

 

스웨덴 작곡가들은 어떻게 K팝​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그들은 왜 K팝 작곡에 열을 올리는 걸까? 스웨덴 작곡가와 음반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배운다

 

스웨덴 작곡가 루이즈 프리크 스빈(Louise Frick Sveen)은 다수의 K팝을 작곡했다. BTS 정국의 ‘Stay Alive’, 프로미스나인 DM, 레드벨벳 아이린&슬기의 ‘놀이(Naughty)’ 등이 대표적이다. 

 

루이즈가 처음 작곡을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다. 처음에는 혼자서 작곡을 공부했다. 이후 그가 선택한 길은 ‘직업학교’다. 그는 스웨덴의 유명 음악학교인 무시크마카르나(Musikmakarna)에 입학했다. 루이즈는 스웨덴의 독특한 학교 시스템 덕에 작곡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음악학교는 학생들이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육성합니다. 8개월 동안 공부하고 6개월 동안 인턴십을 하는 과정으로 이론 공부보다 실습을 중점에 둡니다. 이 경험 덕에 실제 음악 산업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진로 설정이 비교적 자유로운 스웨덴의 교육 과정도 도움이 됐다. “스웨덴은 9학년(초·중등 교육)까지 기본 교육을 받고 10~12학년(고등교육)에는 경제, 사회과학, 음악, 춤 같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전공을 선택했더라도 대학에서도 다른 분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찍 진로를 설정해도 되지만, 스무 살이 넘어가서 갑자기 음악을 전공하더라도 무리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직업이라는 개념도 없고, 직업 서열을 나누기도 어렵습니다.”

 

스웨덴 출신의 유명 아티스트들은 스웨덴 음악 시장 전반을 넓혔다. 루이즈는 맥스 마틴과 쉘백, 아바 같은 스타들 덕분에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 덕분에 스웨덴 작곡가들의 평판이 높아져 시장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봅니다.”

 

루이즈는 K팝을 주력으로 만드는 스웨덴 작곡가다. 사진=루이즈 프리크 스빈 제공

 

작곡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루이즈가 K팝을 작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K팝 안에 있는 다양한 장르를 장점으로 꼽았다. K팝은 기존의 음악 장르로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루이즈는 주로 팝, R&B, 또는 시티팝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K팝을 작곡할 때는 실험적인 장르도 시도해볼 수 있다. 곡을 만들 때 그룹 멤버에 따라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든다는 점도 독특한 포인트다. 

 

그는 최근 K팝 작곡을 선호하는 스웨덴 작곡가들이 많아졌다고도 말한다. “처음 K팝을 작곡했을 때는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특히 음악뿐 아니라 춤, 패션 등 한국 문화 전반이 스웨덴에서 유행하고 있어요. 많은 작곡가가 K팝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루이즈는 스웨덴 음악 산업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양국 음악 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습생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는 두 산업이 꽤 비슷하다고 봅니다.”


#K팝 좋아하는 이유? “높은 앨범 판매량 덕분”

 

 

루이즈가 속한 스웨덴 주요 음반 회사 코스모스뮤직(Cosmos Music)도 최근 K팝 작곡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코스모스뮤직은 가수뿐 아니라 작곡가·프로듀서도 육성한다. 뉴진스의 어텐션을 만들 때도 코스모스 소속 작곡가가 참여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코스모스뮤직 본사에는 소속 작곡가들을 위한 스튜디오가 조성돼 있다. 현재 코스모스뮤직에는 16명의 작곡가·프로듀서가 소속돼 있다. 

 

작곡한 노래의 데모곡을 녹음 중인 작곡가 시아라 머스캣(Ciara Muscat)과 요나 홀​(Jonna Hall)​.​ 사진=전다현 기자

 

코스모스뮤직 소속 작곡가 알빈 노르드크비스트(Albin Nordqvist). 사진=전다현 기자

 

코스모스뮤직의 페오 닐렌(Peo Nylén) 크레이에이티브디렉터는 한국 기획사와 협업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코스모스뮤직의 작곡가들은 소녀시대의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K팝 작곡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현재까지 무려 250개의 K팝 곡을 작곡했다. 

 

페오는 스웨덴에서는 직업학교를 통해 음악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작곡가들이 다른 시장에서 인기 있는 건 ‘​맥스 마틴(스웨덴 작곡가) 현상’ 덕분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스웨덴에는 직업학교가 있어서 작곡가들을 어렸을 때부터 육성할 수 있습니다.”

 

음악 시장이 커진 건 스웨덴 ‘언어’와 ‘기후’의 영향도 있다. “스웨덴은 날씨가 굉장히 춥습니다. 방에서 작곡을 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스웨덴어에는 멜로디가 있는데, 동양에서 이 멜로디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페오는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사진=전다현 기자


최근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을 선호하게 된 건 단순히 한류 때문만은 아니다. 페오는 자유로운 장르로 작곡이 가능하고, 앨범 판매로 인해 수익이 높다는 점을 K팝의 강점으로 꼽았다. 장르가 굳어진 다른 나라의 음악 시장과 달리 K팝은 여러 장르를 녹일 수 있다고. “최근 코스코스뮤직 소속 작곡가가 참여한 르세라핌의 ‘Smart’라는 곡도 남아프리카풍의 노래입니다. K팝에서는 여러 음악을 융합하고 더 글로벌해질 수 있다는 발전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수익도 중요하다. K팝 아이돌은 앨범 판매율이 높다. 앨범이 많이 팔리면 작곡가도 그만큼 수익이 늘어난다. “스트리밍을 통해 얻는 수익은 많지 않습니다. 또 대부분의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수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고요. 반면 K팝 아이돌은 앨범 판매 숫자가 명확하고, 많이 팔리죠. 그만큼 많은 수익을 작곡가들에게 가져다줍니다.”

 

다만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와 달리 K팝을 작곡할 때는 아이돌과 직접 만나는 일은 없다. 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달라고 먼저 요구하거나 스웨덴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기획사에 제안하는 형태로 협업이 이루어진다. 페오는 한국 아티스트와는 만나서 작업한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좋은 음악 만드는 게 목표…아이돌 제작에는 관심 없어

 

09 music 대표 니노스 한나는 K팝을 주력으로 작곡하지만, 아이돌 제작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사진=전다현 기자

 

09 music의 대표이자 작곡가인 니노스 한나(Ninos Hanna)는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K팝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SM 송캠프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샤이니 키의 ‘가솔린’, NCT 드림의 ‘UNKNOWN’ 등에 참여했다. 

 

니노스는 여느 작곡가들과 달리 직업학교 출신이 아니다. 16세까지 축구를 하다 부상을 입은 후 진로를 바꿨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다.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한 건 21세 때다. 니노스는 공부를 통해 배운 작곡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음악을 전공한 작곡가들은) 배운 것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은 저 스스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작곡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페오와 마찬가지로 니노스 역시 곡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을 K팝의 장점으로 꼽았다. “K팝은 경계 없이 자유롭게 곡을 만들 수 있어서 작곡가들에게 더 매력적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 성공한 음악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형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 있죠. K팝은 여러 장르를 작곡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요소들이 더 많죠. 또 미국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앨범이 잘 팔리지 않지만, K팝은 앨범이 많이 팔리기 때문에 수익도 더 높습니다.”

 

니노스는 K팝 시장이 더 확장될 거라고 예측한다. “K팝은 음악에 쏟는 시간과 정성이 남다르죠. 뮤직비디오도 굉장하고, 앨범까지 정성 들여 제작합니다. K팝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소속사가 있다. 니노스는 활동 초창기 스웨덴 음반사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회사를 나와 음반회사 09 Music을 창업했다. 소속 작곡가와 프로듀서도 늘고 있다. 혹 한국 작곡가들처럼 ‘아이돌’을 제작할 생각은 없을까. 니노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돌 제작을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이돌 산업은 제 관심사 밖입니다. 저의 역할은 음악을 만드는 일입니다. 또 아티스트가 성공하기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제 레이블이 음악적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일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 날즈음 니노스는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송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지만, 제 유일한 걸림돌입니다. 일이 늘어날수록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 아쉽습니다.”

 

※다음 편에는 스웨덴 록문화를 통해 모색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대안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 ​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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