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류의 불모지로 꼽히던 북유럽에 최근 K팝의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에는 북유럽 지역 최초로 스웨덴에 한국문화원이 설립되어 그 열기를 체감케 했다. 북유럽에서 K팝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비즈한국은 지난 6월 8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K팝 노르딕 페스티벌을 방문해 현장의 열기를 실감했다.
#북유럽에 부는 K팝 열풍
오전 10시, 스웨덴 오스카 극장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보슬비가 머리를 적셨지만 줄을 선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듯 상기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K팝 노르딕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2회를 맞은 K팝 노르딕 페스티벌은 K팝 댄스, 노래 등을 선보이는 ‘경연 대회’로 아직 ‘신인’이지만 열렬한 인기를 얻고 있다. 북유럽 각지에서 참가한 이들은 총 19개 팀으로 인원수는 150명에 달했다. 스웨덴부터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까지 국적은 물론 인종, 직업, 연령도 가지각색이었다.
이들은 항공과 체류비를 자비로 충당하고 이 행사에 참가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K팝 페스티벌 하루를 위해 반년가량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선곡 역시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부터 투애니원의 ‘Fire’까지 다양했다. 17명으로 구성된 ‘대형’ 댄스팀도 출전했다. 무대를 보러온 관객들도 많아 1층부터 3층까지 940여 석이 가득 찼다.
한국에서 비행기로만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북유럽에서, ‘팝’ 음악 전설인 아바와 맥스 마틴을 보유한 데다 ‘록 문화’가 저변에 자리한 스웨덴에서 왜 K팝에 열광하는 걸까.
북유럽에서 최초로 K팝 페스티벌을 개최한 주스웨덴 한국문화원 이경재 원장은 북유럽에서 K팝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북유럽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K팝이 조금 늦게 전파됐다. 그런데 지금은 행사를 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길을 가다가도 K팝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작년 행사에서도 K팝을 즐기는 친구들이 만나서 정말 행복해했다. K팝 페스티벌이 (그런 사람들의) 네트워킹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덴마크 다큐멘터리팀도 취재를 왔다. 덴마크 CODE9 Dance Crew팀을 취재하던 조세핀 엑스너(Josefine Exner) 감독은 “4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DR(덴마크 방송국)에 방영될 예정이다. 덴마크에서도 K팝이 점점 주류가 되고 있다. 덴마크 언론에서는 K팝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성별과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다. 덴마크 젊은층의 20% 정도는 K팝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손자의 공연을 보러온 92세 아마누 씨는 “손자가 역사 깊은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오늘 K팝 노래를 처음 들어봤는데, 무대가 정말 좋았다”고 전했다.
이 행사의 홍보대사로 무대를 선보인 한국의 걸그룹 프림로즈 멤버들 역시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크고 호응이 좋다”고 밝혔다.
오전에 리허설로 시작한 경연대회가 끝난 시간은 오후 6시경. 7시부터는 심사위원의 피드백을 듣고, 참가자끼리 친목을 다지는 애프터파티도 열렸다. 지칠 법도 하지만 150명의 참가자들은 연신 활기를 내뿜었다.
공연 수준도 높았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취미’로 K팝 페스티벌에 참가했지만, 공연은 진지하고 완성도가 있었다. 페스티벌 심사위원이자 안무가인 제이킴(Jay Kim) 씨는 “지금까지 봤던 K팝 콘테스트 중에 가장 좋았다.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참여하는 학생들의 공연도 모두 훌륭했다”고 평했다.
#“아이돌 너무 혹사당한다”
150여 명의 북유럽 청년들은 왜 노르딕 페스티벌에 참가했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바로 K팝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K팝 아이돌도 하나쯤은 있다. 이날 참여한 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아이돌은 ‘에이티즈’. 이들은 입을 모아 ‘퍼포먼스’가 K팝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칭찬했다.
PSYQE팀의 알렉산드라 올스타드(Alexandra Olstad)는 “우리는 모두 K팝 팬이다. 댄스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춤을 추고 소통하는 것이 좋다. K팝 팬들과 춤을 출 수 있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했다는 Luc1d팀의 엘라 칼베리(Ella Karlberg)는 “작년에도 K팝 노르딕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멤버 모두 K팝과 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스웨덴의 OMNIA팀은 “몇 개월을 연습했다. 처음으로 안무도 직접 만들었다. 2020년부터 구성한 댄스팀이다. 모두 K팝을 좋아한다. 오늘 행사를 마친 후 다 같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또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직장인끼리 팀을 구성한 경우도 있었다. 장래 희망도 직업도 다양했다. 간혹 ‘전문 댄서’가 되고 싶다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다만 이들 중 ‘K팝 아이돌’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 아이돌을 희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HARD WORKING”이라고 답했다.
CODE9 Dance Crew팀은 “전문 댄서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는 있지만,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친구는 없다. 아이돌이 되는 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돌들은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연습해야 한다”고 답했다.
PSYQE팀의 알렉산더 오키니 우오드-마게로 네프지(Alexander Okinyi Wuod-Maggero Nefzi)는 “(K팝 아이돌의) 아이디어와 시스템은 좋지만 너무 혹사시킨다”고 지적했다. K팝을 사랑하는 북유럽의 열기가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으로 이어질지는 물음표다.
※다음 편에는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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