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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그래도 가족, 그러니까 가족인 '파친코'와 '장손'

파친코 시즌2 2차 세계대전 막바지 피난길 가족 역경 그려…3대 대가족 서사 다룬 독립영화 '장손'도 뭉클한 감동

2024.09.12(Thu) 10:48:40

[비즈한국] 추석이다. 이번엔 토요일인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무려 5일을 쉰다. 일찌감치 국내로든 해외로든 여행을 떠난 집도 있겠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차례와 성묘를 지내야 하는 집도 있겠지. 추석 때 모이는 집안 풍경도 집집마다 사뭇 다를 것이다. 차례 지낸 뒤 윷놀이나 화투패를 꺼내 드는 집도 있고, TV를 켜거나 영화관에 가는 집도 있고, 혹은 한 차례 식사 후 각자의 일정으로 돌아서기도 할 거다. 어릴 적 우리집은 TV나 영화관행을 택했는데, 그때마다 모두의 취향을 고려해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인지라 제법 신중했던 기억이 있다. 이젠 TV나 영화관보다는 각자의 휴대폰이 더 편해 보이지만, 여전히 후보작을 훑고 있다. 올해는 뭘 볼까?

 

#OTT: 여전히 깊은 울림과 여운 안겨주는 ‘파친코’ 시즌2

 

이번 추석에 가족들과 거실에서 TV 틀어놓고 부쳐 놓은 전과 떡 집어먹으며 OTT를 본다면 내 선택은 ‘파친코’다. 2022년 봄, 시즌1을 선보이며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재일 한국인 가족사를 다뤘던 ‘파친코’. 시즌2가 8월 23일부터 시작해 매주 한 편씩 공개 중이며, 연휴 직전인 9월 13일에 4화가 공개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한 순간도 선자를 놓쳐본 적이 없는 고한수의 배려로 선자네 가족은 대규모 공습을 피해 농촌으로 피난을 온다. 사진=애플티비플러스 제공

 

시즌2은 1945년 일본 오사카에서 가족을 건사하며 살고 있는 젊은 선자(김민하)와 1989년 늙은 선자(윤여정)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인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 하)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지난 시즌이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던 선자가 고한수(이민호)와 엮였다 배신당한 뒤 목사 이삭(노상현)과 결혼해 일본에 오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이번 시즌에선 일본의 패망을 눈앞에 둔 2차 세계대전의 상황에서 공습으로 인해 농촌 피난 생활을 시작한 가족들의 역경을 보여준다.

 

장장 14년을 만난 적 없다 재회하게 된 선자와 고한수. 그러나 선자는 인간의 도리를 외면하기 힘들다. 한편 선자의 동서 경희는 자신들을 돌보는 창호와 가까워진다. 이 또한 인간적이다. 사진=애플티비플러스 제공


젊은 선자 역의 김민하는 시즌1에 이어 여전히 다부지게 빛난다. 감옥살이한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 노아와 모자수를 키워내고, 그 와중 노아의 생부인 고한수와 재회하며 빚는 여러 감정을 이 젊은 배우는 실감나게 표현해낸다. 시즌2 들어 새로 합류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감정선도 볼거리. 선자의 동서인 경희와 가까워지는 김창호 역은 원작소설에서부터 감정선의 진동이 깊은 인물이라 눈길을 끌었는데, 배우 김성규가 맡아 경희 역의 정은채와 좋은 호흡을 보인다. ‘동백꽃 필 무렵’ ‘재벌집 막내아들’로 이미 단단한 연기력을 보여준 아역 배우 김강훈이 선자와 한수 사이의 아들인 노아 역을 맡았고, 노년의 선자와 친해지는 일본인 카토 역엔 ‘곡성’으로 친숙한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등장해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의 연기를 즐길 수 있을 것.

 

시즌2 들어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여럿이다. 특히 선자와 고한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노아 역에 ‘믿고 보는 아역배우’ 김강훈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사진=애플티비플러스 제공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애플티비플러스의 콘텐츠이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본다면 이만큼 좋은 선택이 또 있을까 싶다. 국가나 민족이란 단어가 무척이나 낡게 느껴지는 시대지만, 그래도 “니가 누군지는 잊지 마래이”라는 선자의 말은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영화: 가족의 의미는 달라져도, 그 역사는 계속될 것 ‘장손’

 

올 추석 극장가에 가장 많은 관객이 들 영화는 유일한 텐트폴 영화인 ‘베테랑2’일 것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베테랑2’ 외엔 볼 영화가 없느냐? 노노.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깊은, 가족이 함께할 만한 유의미한 영화들이 꽤 있다. 그중 내 선택은 오정민 감독의 ‘장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 독립영화상 등 3개 부문 수상과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웰메이드 인디버스터로, 경북 지방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대가족 3대의 모습을 담아냈다.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볼 만한 영화 ‘장손’. 영화를 보고 나서 성진의 가족처럼 모두 사진이라도 한 컷 남겨두면 어떨까.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요즘이야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는다 해도 기껏 한 명인 경우가 태반이니 ‘장손’이니 ‘대를 잇는다’는 말이 한참 퇴색됐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한 경북. 게다가 집안을 유지하는 두부공장의 시작은 조부·조모이니 어른의 명(命)이 아직은 살아 있는 집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는 법. 밤 12시 제사를 고집하던 할아버지(우상전)의 뜻은 장손의 부탁과 손녀의 애원에 의해 꺾이고, 장손 성진(강승호)은 두부공장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제사를 끝내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장손 성진은 가업인 두부공장을 잇지 않겠노라 폭탄선언을 한다. 과연 이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영화는 제사를 지내는 여름부터 예기치 않은 이별을 겪는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세 계절을 화면에 담으며 3대의 이야기와 가족의 비밀을 훑는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아닌데, 한국인 고유의 습성이랄까 누적된 관습 덕분인지 웃음과 눈물의 포인트가 세대가 달라도 주효한 점이 놀랍다. 전기세 아까워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던 할머니(손숙)가 장손의 등장과 함께 온도가 이렇게 높았냐며 능청스럽게 에어컨을 트는 장면에선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법대생이었으나 데모로 뜻이 꺾이고 주사를 갖게 된 아버지 태근(오만석)을 둘러싼 가족들의 대응이나 어머니 수희(안민영)의 방귀까지, 쿡쿡 웃고 꾹꾹 눈물 누를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찬찬히 깊게 들여다보면 어느 가족이나 그들의 깊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영화가 담아낸 풍광 역시 마찬가지.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가족처럼 편안하고 그윽한 한국의 풍광이 계절을 타고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담긴다.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여전할 것 같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세태에 따라 달라지는 가족의 의미를 여러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고, 그를 통해 나의 가족을 되돌아보는 묘미가 쏠쏠한 영화다. 우상전, 손숙, 차미경, 오만석, 안민영, 정재은, 서현철, 김시은, 강승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배우들이 빚는 앙상블 연기도 인상적이다. 엔딩 신에서 7분가량 할아버지가 걸어가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아낸 장면은 어쩐지 먹먹할 것. 12세 관람가, 9월 11일 개봉.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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