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그룹의 운명이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명암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요구한 재산분할에 대해 약 1조 4000억 원에 가까운 분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SK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액수다.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을 지배하는 회사는 SK주식회사로, 최 회장은 이 회사의 17.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보유 주식수는 1300만여 주다. SK의 현재 주가는 14만 원대로, 1조 4000억 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주식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 대주주는 25%의 양도 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 회장은 이 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경영권을 잃게 된다.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폭력적 불법 비자금이 SK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재계 서열 2위로 국민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SK그룹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됐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노태우 악령이 죽어서도 SK 죽이기에 안달 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SK그룹이 사돈관계라는 점에서 그룹의 성장 배경에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은 SK의 사업을 방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SK의 유공 인수 때 경쟁 기업을 밀어줬고, 통신사업자 선정 때는 직접 사업권 반납을 지시해 SK 입장에서는 남보다 못한 사돈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살아서는 SK의 석유사업 진출과 통신사업 진출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시 말해 SK의 현재 주력사업인 석유사업과 정보통신 사업 진출에 도움은커녕 가장 앞장서서 방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노태우, 생전에 유공 인수 방해 등 SK 사업 장애물
SK그룹 최종현 선대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의 취약 사업이었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석유사업을 준비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SK의 석유사업 준비는 1972년부터 시작해, 1974년 선경석유 설립으로 본격화됐다. 1차 오일쇼크 발생으로 사업이 좌초되었고, 1978년 다시 도전했다. 바로 2차 오일쇼크의 충격으로 한국 정유사의 지분 50%을 보유한 걸프사가 한국에서 철수를 결정하자 정부는 보유지분을 포함해 대한석유공사 매각을 결정했다. 이때 정부가 내건 조건은 현금 1억 달러 조달, 석유확보 능력 등이었다.
1, 2차 오일쇼크를 통해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최종현 회장은 정부에서 내건 유공 인수조건을 가장 완벽하게 갖출 수 있었다. 당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모두 유공 인수전에 주력했다. 그 중 SK 외에 삼성과 남방개발이 적극적이었는데 정부가 요구한 인수조건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예를 들면 석유 도입량이 SK는 사우디에서 일 5만 배럴을, 삼성은 멕시코에서 수천 배럴을 들여오는 것으로 제출했다. 누가 봐도 SK가 유리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날 뻔했다.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신군부와 신군부 2인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SK의 석유사업 진출을 방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삼성의 로비를 받고 SK 대신 삼성 편에 서서 SK의 석유사업 꿈을 방해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유공 인수전이 최종 SK로 낙점된 것은 질적 양적 모든 측면에서 SK가 월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비를 받고 삼성 편에 섰던 노 전 대통령과 신군부의 오판 때문이다. 즉 멕시코는 좌파정권으로 언제든지 석유사업을 국유화하면 석유를 무기로 대한민국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간과했던 것이다.
#선정된 통신사업자에 ‘사업권 반납’도 노태우가 직접 지시
노 전 대통령의 SK 통신사업 방해는 더 노골적이었다. ‘물태우’ 소리를 듣던 노 전 대통령이 정치권의 압박을 이유로 정정당당하게 경쟁 입찰로 선정된 통신사업권을 반납하라고 직접 요구했고, 결국 SK는 사업권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반납했다.
SK가 통신사업을 미래 신규사업으로 결정한 것은 1982년으로, 유공을 인수한 지 2년 만이었다. 이는 당시 최종현 회장의 10년 앞을 내다본 경영법에 따른 준비였다. 이후 1984년 SK USA를 설립, 통신사업 구체화에 나선 SK는 1988년 미국의 소규모 통신사에 지분을 투자해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9년 유크로닉스라는 법인을 미국에 만들어 통신 실습을 하면서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하게 된다.
이 같은 철저한 준비는 1992년에 있었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때 최고 점수로 낙점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SK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오랜 기간 꿈을 달성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경쟁에서 떨어진 기업들이 정치권과 세를 합쳐 노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라는 특혜 프레임을 만들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압박을 이유로 SK에 ‘통신사업권을 반납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등장한 노태우 대통령실 명의의 반납요구서가 그 핵심 물증이다.
결국 최종현 회장은 국민을 분열하면서까지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대승적인 판단 아래 사업자 선정 1주일 만에 사업권 반납을 전격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정부가 합법적으로, 일체의 특혜 없이 진행한 사업자 선정을 뒤집은 셈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 신인도는 끝도 모르게 추락했고, 노 전 대통령이 그 선봉에 섰다.
SK는 그럼에도 정공법을 통해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한국이동통신을 공개 입찰을 통해 인수하여 통신사업 진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후에도 재계 서열 2위 SK경영권 위협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폭력적으로 갈취한 불법 비자금으로 또 다시 SK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갈취한 불법 비자금 중 환수되지 않은 일부가 그 가족들에게 은닉 관리되어 왔고, 그중 일부인 300억 원을 딸인 노소영 관장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어머니 김옥숙 씨 메모를 인용해 ‘300억은 당시 SK에 대여했고, 그걸 통해 SK가 성장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것이 비자금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원이 분할을 결정한 규모는 약 1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줘야 하는 돈이다. 최태원 회장은 선대로부터 취약한 경영권을 물려받아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바 있다. 현금도 없기 때문에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길 밖에 없다.
SK는 재계 서열 2위로 국민경제에서 1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경영권 위협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 심각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는 노소영 관장이 아버지가 갈취한 폭력적 불법 비자금으로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이 노태우의 불법 비자금에 치를 떨었는데, 다시 악몽이 되살아난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을 협박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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