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가 진료 청탁 및 병원 전원 등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병원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와 진료·수술 연기 등을 겪는 환자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앞서 코로나19가 정점이던 2021년에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아들의 서울대병원 특실 입원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의료계는 “청탁 등은 정치인에 국한해 발생하지 않는다”며 망가진 의료전달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짚었다.
#헬기 이송, 병원 전원에 이은 ‘진료 청탁’ 의혹
지난 5일 인요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의 연설 도중 환자의 수술을 부탁한 듯한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의사로 추정되는 이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부탁한 환자 지금 수술 중. 조금 늦으면 죽을 뻔. 너무 위험해서 수술해도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야”라고 적혀 있었고, 인 의원은 “감사감사”라고 답했다. 인 의원은 “응급 수술이 아닌 이미 예정된 수술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로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4월 말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고위 공무원이 서울 대형병원으로 전원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1급 공무원인 A 씨는 뇌출혈 증세로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있는 세종 충남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다. 당시 충남대병원에서도 수술이 가능했지만, A 씨는 기존에 진료 기록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아산병원으로의 전원을 택했다. 이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전원 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병원에 압력을 넣어 전원 및 수술이 가능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지워지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A 씨와 복지부 공무원 B 씨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지난 1월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습격을 당한 후 부산대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헬기로 이송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을 두고 특혜 및 지역의료 홀대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응급상황이었다면 부산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어느 국민이 지역 병원이나 국가 외상 응급의료 체계를 신뢰하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산대·서울대병원 의료진과 부산소방재난본부 구급대원 등에 대해 “명백히 규정을 위반해 특혜를 제공했다”며 “감독기관에 통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와 전원을 요청한 천준호 의원에는 “국회의원에 적용되는 행동강령이 없다”며 종결 처분을 내렸다.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에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아들이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해 특혜 의혹이 일었다. 홍 전 부총리 아들은 2021년 11월 다리 발열 및 통증으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지만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와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을 안내받았다. 그러나 약 2시간 뒤 입원 결정이 내려져 특실에 입원했고, 이 과정에서 홍 전 부총리가 김연수 당시 서울대병원장에 연락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공공운수노조는 “청탁은 없었다고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언제부터 돌려보낸 환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특실 입원을 안내했단 말인가. 부총리와 병원장의 전화 통화 이후 타 병원 이동에서 특실 입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통화 자체가 청탁”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분명한 사실은 병상 부족으로 코로나 환자도 일반 환자도 입원이 어려워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 돈·권력·연줄을 가진 특권층이 손쉽게 국립종합상급병원의 병상을 차지했다는 점”이라며 “정부는 치료 포기와 다름없는 재택치료를 대책으로 내놓더니 부총리 아들은 특혜 입원 의혹에 휩싸인 것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해 3월 홍 전 부총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혐의가 인정되지 않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김 전 서울대병원장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경제부총리 및 기재부 장관의 일반적 직무범위에 ‘서울대 병원 소속 의사’에 대한 직무상 감독과 지시권이 포함된다는 근거가 없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탁금지법도 “부정 청탁을 인정할 단서가 없고 두 사람의 진술이 일치한다”며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전문가 “전원 시 1차의료 의사 역할 미미…의료전달체계 바뀌어야”
전원이나 입원 특혜 등은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 청탁금지법은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행하는 법령 해설집에 따르면 원무과장을 통한 입원 순서 변경 등은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난 부정청탁’이다. 입원 관련 직무는 공공기관인 국립대학교병원이 생산 및 관리하는 용역이므로 법령상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해당하며, 입원 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접수 순서대로 하는 것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났는지 여부는 행위의 의도 및 목적과 다른 사람이 받는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현장의 의료진은 이 같은 청탁 사례가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나타난다며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잘못된 의료전달체계로 지역의료 붕괴 역시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조석주 부산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전 대한응급의학회 이사)는 “우리나라는 환자가 상급병원으로 가야 할 때 1차의료 의사의 역할이 거의 없다. 소견서를 적어 주면 환자 스스로 병원을 선택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막연히 빅5 병원 등 잘 알려진 병원을 가고 싶어 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치인들도 같은 이유로 청탁 등을 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각각 1차의료 의사와 보험사가 특정 상급병원과 의사를 지정해 주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도 이전에는 응급의 경우 1339번이 지정을 해줬었다. 병원 간 전원 시 새벽 2시라도 어느 병원이든 수술을 해줄 전문의에게 직접 전화해 수술을 잡았다. 이게 없어지면서 지금은 응급실로 전화를 하는데, 응급실 의사들은 의사 정보를 찾고 관리하는 것이 아닌 환자 진료가 우선이기에 처리가 잘 안되고 있다”며 “결국 상급 의료기관으로 바로 가버리는 환자들이 생겨나면서 지역 병원이 문을 닫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환자가 상급 병원을 가는 이유는 작은 병원이 신뢰를 얻지 못해서’라는 논리는 말도 안 된다. 1339를 다시 도입하고, 환자 진료 시 병원 간 의료진이 소통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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