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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블랙홀보다 더 미스터리한 존재 '화이트홀'

블랙홀과 정반대지만, 우주 바깥에서 보면 '똑같아' 보이는 이상한 현상의 원리

2024.09.09(Mon) 16:53:41

[비즈한국] 블랙홀은 우주의 가장 거대하고 어두운 비밀이다. 블랙홀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블랙홀은 얼마나 클까? 또 하나, 블랙홀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화이트홀이다. 

 

블랙홀, 직역하면 검은 구멍이다. 정확하게 그 반대 개념인 하얀 구멍이 화이트홀이다. 흔히 블랙홀을 수영장 바닥에 뻥 뚫린 배수구처럼 생각한다. 무작정 주변에 있는 것을 모두 빨아들이는, 시공간에 뚫린 배수구로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블랙홀이 모든 걸 다 빨아들이는 존재라면 그 집어삼킨 것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먹는 입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나오는 곳이 있듯이 블랙홀이 집어삼킨 물질도 결국 어딘가로 빠져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홀을 블랙홀의 정반대, 모든 걸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밖으로 토해낼 것이라고 상상한다. 

 

블랙홀은 일찍이 그 존재가 예측되었다. 그리고 실제 모습을 지구 전역의 전파 망원경을 동원해서 확인까지 했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다르다. 지금까지 화이트홀의 모습을 관측한 사례는 없다. 심지어 꽤 많은 천문학자, 물리학자가 화이트홀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이다. 

 

만약 화이트홀이 우주에 정말 존재한다면, 단지 우리가 아직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면 우린 무엇을 찾아야 할까? 어디를 봐야 할까? 얼핏 생각하면 블랙홀과 반대로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토해내는 존재일 테니 막대한 에너지를 사방으로 토해내고 있는 아주 밝은 천체를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실수다. 화이트홀을 찾고 싶다면 밝게 빛나는 곳을 찾아선 안 된다. 

 

 

우선 블랙홀의 특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주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보다 수십 배 더 무거운 별이 진화를 마치고 한꺼번에 빠르게 붕괴하면서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별이 마지막 순간 초신성 폭발을 한 뒤 그 중심에 남는 찌꺼기가 블랙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핵융합을 마친 별의 중심부가 붕괴되면서 사방으로 빠르게 뉴트리노를 비롯한 고에너지 입자들이 분출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양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밖에서 함께 무너지고 있던 별의 껍질층과 부딪히게 되고, 결국 별의 외곽 물질도 밖으로 반동하면서 빠르게 튕겨 날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초신성 폭발이다. 

 

그래서 초신성 폭발을 하고 나면 중심에는 중성자별 정도가 남는다. 애초에 붕괴한 별 중심부 질량이 너무 무거웠다면 안에서 새어나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의 힘마저 짓누를 수 있다. 그러면 그 어떤 폭발도 하지 않고 곧바로 별 전체가 한 점으로 붕괴해버린다. 이것이 별이 죽으면서 남기는 블랙홀이다. 

 

요약하면 초신성 폭발 결과 남는 잔해가 블랙홀이 아니라, 죽은 별이 초신성 폭발을 하거나 또는 초신성 폭발 없이 그냥 한꺼번에 블랙홀로 붕괴하거나 두 갈림길 중 하나를 따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밝게 빛나던 별(왼쪽)이 블랙홀로 붕괴하면서(오른쪽) 그 모습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별다른 폭발은 목격되지 않았다. 사진=NASA/ESA/C. Kochanek(OSU)


이렇게 만들어진 블랙홀은 사실상 붕괴된 별 전체 질량이 ​거의 한 점에 ​모여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질량에 의해 휘어지고 왜곡된다. 질량이 무거울수록 시공간은 더 크게 왜곡된다. 그리고 중력이 강한 곳, 즉 공간이 더 크게 왜곡된 곳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간다. 

 

블랙홀의 중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블랙홀에서 적당히 멀리 벗어난 곳에서는 아직 시공간이 왜곡된 정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속도를 빨리 낼 수 있다면 블랙홀 쪽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지 않고 무사히 밖으로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면 위험하다. 시공간이 너무 깊고 가파르게 휘어진다. 그 가파른 시공간의 곡률을 벗어나 밖으로 탈출하려면 빛보다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블랙홀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블랙홀 주변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해야 빛이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되는지, 블랙홀 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한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이런 극한의 상황을 예견했다. 하지만 정작 아인슈타인 본인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라는 개념을 처음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수학이 보여주는 우주의 진리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 그 중심으로 빠져 들어가는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우주선이 아주 튼튼해서 부서지지 않는다면 그 안에 타고 있는 우리는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될까? 놀랍게도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블랙홀에서 멀리 떨어져 평범한 우주를 떠돌든, 사건의 지평선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맴돌든, 심지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가도 우리에게 시간은 계속 똑같이 흘러간다. 

 

단 사건의 지평선에 접근하는 우리를 멀리서 ​누군가 ​지켜본다면 그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가 봤을 때 우리 우주선은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 이론의 묘한 부분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내가 보는 나의 시간은 항상 문제없이 흘러간다. 단지 다른 관찰자가 바라본 나의 시간만 다르게 보일 뿐이다. 

 

블랙홀의 강한 중력으로 인해 깊게 왜곡된 시공간의 모습을 2차원 방식으로 표현한 그림.


이해를 돕기 위해 3차원의 시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한 단계 낮춰보자. 블랙홀은 2차원 시공간을 끝없이 깊게 파고 들어가는 구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블랙홀은 계속 이 시공간의 구덩이를 더 좁고 깊게 파고들어간다. 끝없이 깊게 파여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 구덩이의 깊이가 정말 무한하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빠르게 더 깊이 내려갈 뿐이다. 

 

구덩이의 가장 아래에는 스스로 붕괴하면서 블랙홀을 만든 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진화를 마친 별은 ​분명 ​몇 초 만에 순식간에 붕괴하면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블랙홀은 훨씬 긴 시간 존재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상대성 이론의 시간의 마법이 펼쳐진다. 사건의 지평선 바깥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나 짧은 시간이 흘러갔을 뿐이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 그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블랙홀에겐 훨씬 긴 시간이 흘러간다. 즉 블랙홀의 특이점은 블랙홀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시간이 더 지난 시점, 바로 미래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붕괴된 별은 끝없이 영원히 붕괴할까?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그렇지 않다는 모델을 제시한다. 붕괴된 별은 계속 작아지다가 양자역학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스케일, 소위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면 붕괴를 멈출 수 있다. 무너지던 별이 갑자기 붕괴를 멈춘다면, 그 다음은? 바닥에 떨어뜨린 공이 다시 위로 튀어오르듯 붕괴한 별은 한계에 도달하면 다시 빠르게 튀어오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만 반대로 바꾼 것이다. 즉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똑같이, 시간의 흐름만 정반대가 된다면 너무나 간편하게 화이트홀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플랑크 스케일까지 붕괴한 시공간 구덩이 깊은 곳 별의 잔해가 어떻게 순식간에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 화이트홀로 변신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로벨리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서 너무나 잘 통용되는 현상을 활용한다. 바로 양자 터널링 효과다. 아주 작은 양자역학적 스케일이 되면 모든 존재는 파동의 성질을 더 강하게 갖게 된다. 심지어 벽을 뚫고 그 반대편으로 통과할 수도 있다. 이를 양자 터널링 효과라고 한다. 

 

태양과 같은 일반적인 별 내부에서도 서로 밀어내기만 하는 양성자들이 충돌하면서 더 큰 덩어리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양자 터널링 효과가 둘 사이의 척력을 뚫고 결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블랙홀의 구덩이 속 붕괴된 별이 양자 터널링 효과를 겪게 된다면 순식간에 시간의 방향이 거꾸로 흘러가는 화이트홀의 형성 과정으로 돌입할 수도 있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빠져 들어가면 끝없이 구덩이 속을 향해 추락한다. 밖으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반대로 화이트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는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이용해서 블랙홀과 다른 화이트홀의 존재를 관측으로 입증하는 것이 가능할까? 즉 우리가 사는 우주 ​바깥에서 봤을 때,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당황스럽게도 차이가 없다! 얼핏 생각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당신이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사건의 지평선 쪽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멀리서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그대로 넘어서 쑥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블랙홀을 향해 끝없이 추락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화이트홀의 경우 사건의 지평선 너머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결국 당신은 화이트홀의 사건의 지평선 경계에 그대로 멈춰 있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결국 밖에서 티가 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사건의 지평선에서 영원히 멈춘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블랙홀이든 화이트홀이든 사건의 지평선 경계에 도달한 당신을 멀리서 지켜본다면, 똑같이 그 경계에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멈춰 있는 듯 보인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홀의 미묘한 점이다.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는 분명 블랙홀과 화이트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반대가 된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만 존재한다. 바깥 세계에서는 차이가 없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정반대 방향으로 시간이 적용되는 개념이지만, 놀랍게도 바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면 전혀 차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 번 붕괴했다가 플랑크 스케일을 겪고 양자 터널링 효과를 통해 다시 반등을 하면서 화이트홀로 변신한 블랙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주가 망할 때까지 존재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블랙홀의 최후에 대해서는 이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깔끔하게 예측했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경계에서는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에 흘러들어가서 블랙홀이 마치 사방으로 입자를 방출하는 듯한 증발 과정, 호킹 복사가 일어난다. 이것은 온도를 머금은 물체가 열을 퍼트리는 열적 복사와 비슷하다. 그리고 열의 흐름이 바로 우주에서 시간이 결국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서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속 시간이 반대로 흘러가는 화이트홀의 탄생이 가능하지만, 결국 우주 바깥에서 보면 블랙홀도 천천히 증발하면서 질량이 가벼워지는 시간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 있는 우리에겐 정말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는 모두 순식간에 벌어진다. 별 전체가 붕괴하고 플랑크 스케일을 거쳐 다시 화이트홀이 되기까지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 지난다. 하지만 그 사이 바깥 우주는 수십억 년의 시간이 지났을 수 있다. 로벨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플랑크 별의 반등은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다. 밖에서는 영겁의 세월이 천천히 흘러가지만 잠시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길이다.”

 

이 가설을 받아들이면, 한 가지 더 놀라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난 끝에 만들어진 화이트홀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자. 결국 호킹 복사를 통해 갖고 있던 에너지와 질량 대부분을 잃어버린 플랑크 별은 밖에서 보면 아주 미세한 에너지만 방출하는 작은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미래를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광활한 세계가 있겠지만. 최후에 도달한 화이트홀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질량인 플랑크 질량 정도로 남게 될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 크기가 플랑크 스케일보다 더 짧아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화이트홀은 이 정도 질량까지만 가벼워질 수 있다. 이건 거의 털 한 올밖에 안 되는 질량이다. 

 

만약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서 한꺼번에 많은 암흑 물질 덩어리가 수축하면서 수많은 원시 블랙홀이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서서히 질량을 줄여가면서 털 한 올밖에 안 되는 작은 화이트홀로 남게 되었다면? 내 방 가득 하얀 고양이 털이 떠다니는 것처럼 0.1g도 안 되는 작은 화이트홀 조각들이 우주 곳곳을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비록 화이트홀 한 올의 질량은 너무 미미할지라도,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다면 우주 전체 질량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존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암흑 물질의 진짜 정체가 바로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 수많은 화이트홀 조각은 아닐까?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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