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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한국 육성 시스템을 미국에?" LA 프로듀서가 고개 젓는 까닭

팬데믹 기점으로 K팝 인기 폭발, 미국 작곡가들도 협업 원해…엄청난 희생 필요한 한국식 시스템, 미국엔 안 맞아

2024.09.05(Thu) 16:44:23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미국에 진출한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주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스쿠터 브라운의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해 하이브 아메리카를 설립한 하이브는 LA와 산타모니카에 회사를 뒀다. 지난해 설립한 SM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북미 합작 회사도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에 자리했다. SM의 ​기존 ​북미 회사 역시 모두 LA에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또한 LA에 JYP USA를 설립했다. 

 

LA에 위치한 HYBE Holdings Inc 건물. 사진=전다현 기자


LA에 위치한 JYP USA Inc 건물. 우편물이 쌓여 있고, 내부엔 사람이 없었다. 사진=전다현 기자

 

미국으로 간 국내 엔터사들이 LA를 중심으로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에이전시를 상대로 LA에서 컨설팅, 회계 업무를 하고 있는 A 회계사는 “LA에 한국 사람들이 많다보니 한국 회사의 비즈니스 상대가 더 많고,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그렇다고 다른 주보다 LA의 제도나 법률이 사업을 하기에 더 유리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미성년자 노동법이 까다롭다. 아이돌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한국과 달리, 캘리포니아는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를 노동자로 인정한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캘리포니아 산업 관계부(California Department of Industrial Relations)에 6개월마다 신고해야 하고, 엔터사는 미성년자 고용 시 별도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업계 관계자들은 K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현지화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비즈한국은 LA 현지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월 2일(현지 시각) 한국 기획사들과 활발히 협업하고 있는 미국인 음악 프로듀서를 만났다.  


#BTS 이후. K팝 작업 원하는 작곡가 늘었다

 

 

LA에 사는 음악 프로듀서 데이비드 앰버(David Amber​)는 트와이스의 ‘Heart Shaker’, ‘YES or YES’, 아이즈원의 ‘Eyes’ 등 여러 곡을 작곡했다. K팝​이 현재 그의 주력 분야다. LA에 거주하는 미국인 프로듀서가 어떻게 K팝을 만들게 됐을까? 

 

데이비드가 처음부터 K팝을 작곡한 건 아니었다. 음악 프로듀서로서 한 첫 작업은 광고 음악이었다. 뉴욕에서 광고 음악을 만들던 그가 K팝과 접점이 생긴 건 2011년경. SM엔터테인먼트가 뉴욕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에 데이비드를 초대하면서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K팝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소녀시대가 가장 인기 있는 그룹이었는데요, 저도 K팝을 알고 나서 ‘와, 이거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죠.”

 

데이비드가 K팝에 주목한 요소는 ‘다양성’이다. 그는 한국 엔터사마다 음악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SM, YG, JYP 등 각 회사마다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이 있었어요. 서양 팝과는 분명 달랐죠. 회사마다, 아티스트마다 추구하는 음악이 분명했습니다. K팝이 다른 음악 장르와 다른 것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K팝은 ​컨트리, 힙합, 록 음악처럼 특정한 소리가 있는 게 아니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K팝을 작곡하는 것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까. 데이비드는 K팝을 작곡할 때는 ‘그룹’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그룹을 위해 곡을 만들다보니 그룹 내 관계성과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고려하는 편이죠.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멤버별 특성을 고려해서 곡을 만듭니다. 다른 서양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는 만나서 함께 작곡하지만, K팝은 조금 달라요. 소속사에서 곡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하고, 저는 곡을 만들어서 보냅니다. K팝 아티스트와 같이 작업한 건 한 번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씨스타의 효린이 LA에 와서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게 유일한 경험입니다.”

 

그는 K팝 음악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BTS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엔터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엿본 거 같아요. 그때부터 K팝 음악도 더 글로벌하게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이나 아시아를 위한 음악이 아닌, 더 넓은 시장을 목표로 음악을 만들게 된 거죠.”

 

데이비드가 K팝을 처음 작업한 2010년대 미국 작곡가들 가운데에는 K팝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20년 전에는 LA 작곡가들이 K팝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에는 ‘K팝 작업을 하고 싶다’고 저에게 연락을 합니다. 특히 BTS의 성공 이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있는 모든 작곡가가 K팝 작업을 하고 싶어해요. 이제 K팝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죠.

 

#아이돌 대단하지만…내가 하고 싶진 않아

 

지금 LA 작곡가들은 K팝에 열광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어떻게 생각할까. 

 

데이비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시도가 ‘흥미롭다’고 말한다. “정말 흥미로운 시도죠. 한국과 미국의 방식이 정말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은 어린 나이에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이 되어 수년 동안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시스템이 없습니다. 미국은 아티스트를 개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성장한 아티스트를 보고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그나마 유사한 사례가 ‘디즈니’인데, 셀레나 고메즈, 사브리나 카펜터처럼 어렸을 때 캐스팅해서 활동을 시키죠. 물론 그것도 한국 아이돌과는 방식이 다릅니다.”

 


데이비드 앰버 프로듀서는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미국에서 정착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전다현 기자


미국 내에서 한국의 육성 시스템을 따라 하려는 움직임은 없을까. “마케팅 같은 일부 요소는 서양 아티스트들이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습생 시스템을 따라 하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유니버설뮤직그룹, 워너뮤직그룹 같은 주요 레이블 회사들은 아티스트를 개발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그들의 역할은 ‘마케팅’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헌신하고 노력하죠. 이 시스템 덕분에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만들어졌고, 한국의 음악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게 됐어요. 그러나 제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데이비드는 현재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캘리포니아의 제도와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에는 매우 엄격한 아동 노동법이 있습니다. 미성년 아이들은 제한된 시간만 일할 수 있고, 매일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한국처럼 하루 종일 연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아이들이 하루에 12시간씩 훈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미국 부모들도 이런 훈련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문화적인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개인주의와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엄격한 연습생 훈련을 따르도록 하려면 큰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미국 아이들이 있겠지만, 생각과 현실은 다릅니다. 저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연습생들이 훈련 받는 모습을 봤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몸무게를 재고 기록하는 것도 그랬어요. (아이돌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나면 대부분의 미국 아이는 그만둘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데뷔한 하이브의 현지 걸그룹 ‘캣츠아이’와 JYP의 ‘비챠’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할까. “캣츠아이의 노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서도 반응을 듣지 못했어요. 비챠의 노래는 K팝보다 서양 팝에 더 가까워 보이더군요. 어떻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죠. 정말 큰 프로젝트인데요. 마케팅, 팬과의 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매우 궁금합니다.”​ 

 

※다음 편에는 미국 에이전시가 본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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