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족’과 ‘멜로’라는 단어만큼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특히 손 붙잡고 다니며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는 중년 커플을 보면 절대 부부 아닌 불륜 커플일 거라 단언하고, ‘가족끼리 그러는(스킨십) 거 아니야’라는 농담이 비일비재하게 퍼져 있는 대한민국에서. JTBC 토일 드라마 ‘가족X멜로’는 상반된 지점에 있는 두 단어를 붙여 놓으면서 색다른 가족 드라마, 색다른 멜로 드라마를 선보인다.
‘가족X멜로’에서 현재진행형 가족은 엄마 금애연(김지수)과 딸 변미래(손나은), 아들 변현재(윤산하), 그리고 강아지 금메달이다. 야구선수 출신이었으나 아빠와 남편, 가장의 역할에 모조리 실패한 변무진(지진희)은 11년 전, 미래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애연과 이혼하며 가족에게 내쳐졌다. 이후 소식이 끊겼다 죽었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1년 전. 그러던 어느 날, 버려지고 죽은 줄 알았던 변무진이 돌아온다. 그것도 미래네 가족이 살고 있는 용동동 가족빌라의 건물주가 되어서!
30억 원 가치의 빌라 건물주가 될 만큼 졸부가 된 변무진의 속내는 처음부터 심플하다. 전 아내인 금애연(과 세트로 가족들)을 되찾으려는 것. 그러나 딸 변미래의 철벽방어가 만만치 않다. 결국 변무진은 금애연과의 재결합을 두고 미래와 각서를 쓴다. 4주 안에 재결합에 실패할 시 가족빌라를 금애연에게 위자료로 넘기고 떠나겠다는 조건. 아빠 없는 빈자리를 메우며 집안의 가장과 엄마의 원더우먼을 자처했던 변미래는 엄마의 철옹성 같은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엄마가 흔들림을 느낀다.
‘가족X멜로’의 초반 분위기는 앞선 줄거리처럼 무척 가벼운 톤이었다. 변무진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교통사고가 뉴스에 보도됐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죽음을 확신했던 깃털만큼 가벼운 개연성도 그렇고(물론 변무진을 죽은 사람 취급한 고모의 말투도 오해를 확신하게 된 이유였지만), 10년 넘게 연을 끊고 살 만큼 삭막한 가족 사이임에도 변무진의 귀환 이후 가족과 빚는 충돌은 얼음장처럼 차갑지 않다. 곳곳에 지진희의 코믹한 연기를 부려 놓으며 너무 무겁지 않은 가족 멜로 드라마를 표방한 때문이다. 그래서 단절됐던 가족의 서사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X멜로’는 특유의 톤을 유지하면서도 차근차근 가족의 의미, 가족 구성원 간의 역할과 관계를 짚어 나가며 오해를 불식시키는 중이다. 직장에서 쓰러질 만큼 무리하면서도 힘듦을 내색하지 않던 변미래는 8화에서 각서를 발견한 금애연이 “내가 니 보호자야. 왜 자꾸 너 혼자 죄다 짊어지려고 하는 건데?”라며 화를 내자 “그럼 누가 다 짊어져. 난 뭐 이러고 사는 게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라며 그간 짊어온 K-장녀의 무게를 표출했다. 아무리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기 위함이어도, 누군가에게 책임의 균형추가 쏠리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엄마 금애연 역시 미래에 대한 미안함을 이웃 안정인(양조아)에게 토로한다. 딸이 어릴 적부터 남편에게 쌓인 불만과 삶의 힘듦을 털어놓아 자신도 모르는 새 딸을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든 것 같다는 죄책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자식을) 놔주는 것도 부모가 할 일인 것 같다”라는 이웃 황진희(황정민)의 조언도 절절하게 곱씹는다. 이런 문제는 현실의 많은 가정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겪어가는 일이기에 한층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호적상으로는 미래가 일하는 회사 제이플러스마트 사장 남치열(정웅인)의 아들이지만 사실은 남치열의 이복동생인 남태평(최민호)의 사정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존재라는 상처를 가진 태평은, 가족 때문에 갈등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족들을 꼭 껴안고 있는 미래의 존재를 보며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반추해 본다. 혼외자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당하거나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가족X멜로’는 미래의 가족과 태평의 가족을 통해 그들의 상처를 톺아보고, 세상이 재단하는 가족의 의미가 아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갑자기 졸부가 되어 나타난 변무진의 의문에 쌓인 과거와 가족빌라 화재 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곳곳에 양념처럼 부려 놓지만 ‘가족X멜로’의 방점은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천착하는 데 있을 것이다. 가족을 천륜이라 하지만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반드시 가족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도 나이가 들고 상황이 바뀌면서 서로의 역할이 바뀔 수도 있고, 구성원에 변화가 생길 수 있으며, 쌓이고 쌓인 감정의 골로 서로를 잃어갈 수도 있다. 가족이 고인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쌓아가야 하는 생물의 존재라는 점을 ‘가족X멜로’는 단절되었다 다시 묶이려는 가족의 성장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 제목에 멜로를 붙인 것처럼 ‘가족X멜로’는 부부 사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말한다. 오매불망 금애연을 향한 변무진의 순정은, ‘자식 때문에 산다’ ‘전우애로 산다’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흔한 부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감정의 떨림이 옅어진다고 한들, 세월이 쌓인 정만으로 산다는 건 너무 낭만이 없지 않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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