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하는 고급 SUV G바겐은 매끈한 도시형 SUV가 대세인 요즘에도 각진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정통 오프로더다.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 모델을 이제 블록 모형으로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G바겐 출시 45주년을 기념하여 라인업에 추가된 레고 테크닉 G500 프로페셔널 라인(모델 번호 42177)은 스페셜 컬러인 ‘쿠퍼 오렌지 마그노’ 도장으로, G바겐 특유의 무채색보다 강렬한 인상을 뽐낸다.
이 모델은 레고 하면 떠오르는 단순한 장난감 차가 아니다. 크고 작은 2900개에 가까운 부품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실제 차량처럼 기능한다. 스티어링 휠을 통해 방향을 조절할 수 있고, 구동, 중립, 후진 설정이 가능한 트랜스미션과 직렬 6기통 엔진 블록을 갖추고 있어 동력원만 있으면 바로 RC카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유튜브에는 모터를 장착해 실제 야외에서 주행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클러치, 서스펜션, 디퍼렌셜 기어 같은 주요 부품도 실제 차량과 유사한 구조로 구현되어, 이전에 발매된 랜드로버 디펜더와 비슷한 기계적 특성을 자랑한다.
이전에도 부가티 시론, 포르쉐 911, 포드 GT, 코닉세그 예스코 등 많은 명차가 레고 테크닉을 통해 발매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태생적인 한계에 있다. 제한된 부품을 연결하거나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조립하는 레고는 곡면이 많은 차량을 구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립된 차량을 보면 헤드램프, 휠 같은 특징적인 몇몇 부분으로만 원본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미니어처는 램프류나 로고 같은 세부 디테일보다 전체적인 라인이 얼마나 실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뉜 모습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특히 테크닉 람보르기니 우라칸(42161)의 디자인을 보면 설명 없이는 어떤 차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반면 직선 위주의 스타일인 G바겐과 레고의 결합은 완성도 높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리지널 모델의 디자인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에 투박한 부품 사용으로도 원본 느낌이 무난하게 구현되었다. 원형 헤드램프, 이를 둘러싼 사각형 하우징, 사다리꼴 펜더, 아래쪽에 낮게 깔린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스페어타이어 주변의 디테일이 자동차와 완구 마니아를 동시에 자극한다. 엔진룸을 열면 눈에 띄는 피스톤의 노란색 포인트도 매력적이다.
물론 외형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테크닉 모델과 마찬가지로 블록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도어 부분은 결합된 라인이 너무 복잡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최소한 이 부분은 범용 부품보다는 전용 패널을 사용해 한 부분으로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출시된 랜드로버 디펜더(42110)가 이 모델 전용으로 설계된 오버 펜더를 사용해 몰입도를 높인 것과 비교된다. 측면 윈도우는 부품과 부품을 연결해 사각형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설계되었는데, 원래 G바겐의 측면 윈도우가 사각형이긴 하지만 각 꼭지점에 약간의 라운딩이 있는 디자인이다. 이런 디테일까지 구현했다면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G500 프로페셔널 라인은 자동차와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조립 본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제품이다. 레고 개발진이 현재의 정밀도를 유지하면서, 향후 출시되는 테크닉 차량의 스타일은 더욱 매끄럽게 다듬어 주기를 기대한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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