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시중은행이 지방자치단체 금고 경쟁에 뛰어들면서 지방은행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에서 지방은행은 모두 높은 등급을 받았지만, 지방은행의 지자체 금고 사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월 28일 금융위원회가 2024년도 금융회사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지역재투자 평가는 금융사의 지역 경제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20202년 도입됐다. 15개 국내은행과 자산규모 1조 원 이상의 상호저축은행 12개가 대상이며 수도권 외 지역에서 지역 내 자금 공급, 중소기업 지원, 서민 대출 지원, 금융 인프라를 얼마나 구축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올해는 시중은행·특수은행 중 △하나은행 △아이엠뱅크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이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지방은행은 △부산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이, 상호저축은행 중에서는 JT저축은행만이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최우수 은행이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은행별 등급이 높아지는 등 지역 투자가 활발해진 모습이다.
지역재투자 평가가 주목 받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의 금고 선정 기준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지자체 금고 경쟁에 시중은행이 뛰어들면서, 금고를 사수해온 지방은행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자체 본청 금고 약정이 올해 만료(2024년 12월 31일)되는 곳은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다.
하지만 지방은행은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도 웃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본력을 가진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지자체 금고를 뺏길 수 있어서다. 지방은행은 최근 3년간 지역 재투자 평가에서 모두 우수·최우수 등급을 유지했지만 주요 경영지표, 협력사업비 등 배점이 크고 자산 규모가 중요한 항목에선 시중은행 대비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부산시가 8월 14일까지 금고 신청 접수를 받은 결과, 1금고 입찰에 부산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과 기업은행까지 나서며 파장이 일었다. 2024년 부산시 예산은 15조 6998억 원으로 1금고(주금고)는 일반회계 포함 예산의 70%를, 2금고(부금고)는 특별회계·기금 등 30%를 맡는다.
부산은행은 24년간 1금고를 사수했으나 이번엔 국민·기업은행과 경쟁하면서 자리를 위협 받게 됐다. 부산시는 2020년 5월 1금고와 2금고에 동시 지원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는데, 그해 1금고 입찰에는 시중은행이 나서지 않아 부산은행만 단독 지원했다. 김대성 금융노조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부산시 금고 선정에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이 나서면서 다른 지자체 금고 경쟁까지 과열시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의 경기침체로 위태로운 가운데 지자체 금고까지 시중은행에 뺏길 위기에 처하자, 지방은행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8월 19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지방은행노조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시중은행의 지역시금고 유치공세는 지역 자금 유출을 가속할 것”이라며 “기업은행의 부산시 1금고 입찰은 지역 자금의 유출을 야기해 지역소멸을 부추기는 등 국가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8월 26일 금고 지정 신청 공고를 내고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신청서는 9월 23~24일 양일간 접수한다. 2024년 광주시 예산은 총 8조 2100억 원으로 1금고는 일반·특별회계(10개), 기금(1개)을, 2금고는 특별회계(4개)와 기금(18개)을 관리한다.
광주시는 이번 금고 선정 기준에 지역재투자를 포함했다. 지난 4월 ‘금고 지정 및 운영 조례’를 개정해 평가 항목 중 ‘시민 이용 편의성(24점)’ 항목 중 ‘지역재투자 실적 및 계획(6점)’을 신설했다. 해당 항목에는 최근 3년간 금융기관의 지역 자금 공급,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지원, 금융위 평가 결과 등이 포함된다.
광주시도 차기(2025~2028년) 금고 선정에서 부산시처럼 1·2금고를 나눠 모집하면서 시중은행이 1금고와 2금고에 모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1금고는 광주은행, 2금고는 국민은행으로, 국민은행이 1금고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특히 광주은행의 경우 2023년 7월 조선대학교의 주거래 은행 자리를 50년 만에 신한은행에 빼앗긴 바 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는 지방은행의 주요 ‘밥줄’ 중 하나다. 지방은행은 수도권 금고로 경쟁할 수 없는데 시중은행은 지방까지 확보하려 한다”며 “광역시 예산이 조 단위라 언뜻 커 보이지만, 경기도 시금고 중에서도 예산 규모가 비슷한 곳이 있다. 서울·경기권을 장악한 시중은행이 굳이 지자체 금고까지 맡아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농협은행과의 금고 약정이 올해까지인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예산 규모가 4조 6000억 원대에 달한다. 지난 7~8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차기(2025~2028년) 금고 접수에 농협은행만 지원한 것으로 확인돼, 농협은행이 다음 차례에도 금고를 지킬 전망이다.
지자체 금고 선정의 평가 기준이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평가 항목 중 ‘금융기관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에는 은행의 총자본비율 등 주요 경영지표가 포함된다. 부산시(25점)와 광주시(27점) 모두 이 항목의 배점이 가장 크다. 또한 ‘대출 및 예금 금리’와 ‘금고 업무 관리 능력’도 20점 이상 배점된 항목인데, 자산 규모가 작고 한정된 지역에서 영업하는 지방은행에 불리하다는 평가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부산경실련)은 8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지역재투자 현황에 대한 금융위 평가는 변별력이 없어 지방은행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라며 “지역경제를 위한 지방은행의 실적을 고려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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