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표면에 액체 호수와 바다를 가진 행성은 우리 태양계에서 몇 개나 있을까? 지구 하나? 그렇지 않다. 하나가 더 있다. 토성 주변을 맴도는 토성의 가장 큰 위성, 타이탄이다. 타이탄은 토성 못지 않게 아주 짙은 구름으로 표면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타이탄의 구름 속에 어떤 세상이 숨어 있을지는 오랜 비밀로 남아 있었다.
2007년 카시니 탐사선이 토성과 타이탄 곁을 지나가면서 레이더 관측을 통해 구름 아래 숨어 있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타이탄 표면에는 지구처럼 크고 작은 액체 호수와 바다가 있었다. 물론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에 타이탄의 기온은 지구에 비해 훨씬 낮다. 표면 기온이 평균 -179도에 달한다. 당연히 물은 다 얼어붙어버릴 만큼 끔찍한 추위다. 타이탄 표면의 호수와 바다를 채우고 있는 액체의 주 성분은 물이 아니라 에테인과 메테인 같은 탄화수소 성분이다. 재밌게도 너무 추운 곳이다 보니 타이탄에서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물 얼음 덩어리들이 마치 지구에서의 돌멩이와 같은 역할도 한다.
당시 카시니는 주로 타이탄의 북극 지역 주변의 지도를 그렸다. 타이탄 표면에서 확인된 호수 중에서 가장 거대한 곳은 그 면적이 무려 50만 ㎢에 달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내륙해 카스피해보다도 더 넓다. 이 거대한 호수에는 전설 속 바다 괴물 크라켄의 이름이 붙었다.
타이탄에 이런 거대한 호수와 바다가 존재한다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타이탄의 호수와 바다에서도 지구처럼 파도가 칠까? 그 파도로 인해 타이탄의 지형이 변하는 풍화 침식도 벌어질까? 머지않은 미래, 타이탄에 방문한 인류가 메테인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을까?
꽤 최근까지 타이탄의 호수와 바다에서 파도의 존재 여부는 치열한 논쟁 거리 중 하나였다. 카시니 탐사선이 촬영한 위 사진에서는 타이탄 표면 한 곳에서 아주 밝게 빛나는 작은 점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타이탄의 액체 호수 표면 위로 태양 빛이 비추면서 호수 표면에 반사된 순간이 포착된 것이다! 당시 태양 빛을 반사한 호수는 거대한 크라켄 호수 서쪽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작은 호수, 징포 호수다. 중국에 있는 징포 호수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 이러한 관측을 근거로 과거 천문학자들은 타이탄 호수의 표면이 거울처럼 아주 매끈할 것이라 추정했다. 또 지구의 호수와 달리 큰 파도가 출렁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껏 토성과 타이탄을 곁에서 가장 자세하게 관측한 탐사 미션은 카시니가 유일하다. 게다가 카시니 탐사선은 2017년 9월 15일 토성의 짙은 구름 속에 다이빙하면서 미션을 종료했다. 카시니가 관측한 타이탄의 이미지가 지금껏 인류가 확보한 가장 세밀한 타이탄의 관측 데이터 전부다. 또 카시니 탐사선의 흐릿한 카메라로 겨우 담아낸 타이탄의 이미지만 보고, 그 표면 호수에 정말 파도가 존재하는지를 검증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타이탄의 호수에서 파도가 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조금 색다른 곳에 주목했다. 타이탄 호수 표면 자체가 아니라 그 가장자리, 호숫가의 모습이다.
지구의 해안 가장자리, 호수 가장자리는 파도가 치면서 조금씩 지형이 깎이고 모양이 변하는 풍화 침식을 겪는다. 만약 타이탄의 호수에서도 거대한 파도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면 파도의 작용으로 인해 타이탄 호숫가의 모습도 변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앞서 카시니 탐사로 확인한 크라켄 호수, 리지아 호수 가장자리의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 총 세 가지 모델을 가정했다. 첫 번째 아무런 풍화 침식이 벌어지지 않는 모델. 두 번째 타이탄의 얼음 표면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오는 방식으로 호수 가장자리 전역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균일하게 침식이 벌어지는 모델. 세 번째 호수 가장자리 곳곳에서 파도가 치면서 물리적인 방식으로 호수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게 깎여나가는 모델. 이 셋 중에서 어떤 모델이 실제 타이탄 호수 가장자리의 형태를 가장 잘 재현하는지 비교했다.
특히 마지막 두 가지, 호수 가장자리가 침식되는 방식을 달리한 두 가지 모델의 결과를 비교하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모양을 갖고 있던 타이탄의 호수 가장자리 전역에서 균일한 침식이 벌어진다고 가정하면, 위치에 상관 없이 거의 모든 지역이 균일하고 부드럽게 깎여나간다. 다만 육지가 호수 안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곶 부분만 크게 깎여나가지 않고 그 형태를 거의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파도가 치면서 직접 호수 가장자리가 깎여나가고 있다고 가정한 모델에서는 명확한 차이가 나타난다. 호수 안쪽으로 넓게 육지가 들어오면서 노출된 가장자리로는 파도가 치면서 밀려오는 액체의 유입량이 크다. 그래서 훨씬 뚜렷하게 호수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깎인다.
반면 육지 안쪽으로 호수가 깊게 스며들어온 좁은 강줄기와 같은 지역으로는 파도가 치면서 밀려들어오는 액체의 유입량이 크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은 가장자리가 눈에 띄게 부드럽게 깎여나가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한다. 그 결과 넓은 가장자리 경계는 부드럽게 변하는 반면 중간 중간 사방으로 가늘게 뻗어들어오는 강줄기와 같은 경계는 처음 모습 그대로 계속 뾰족하고 복잡한 가장자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타이탄의 호수들은 마치 사방으로 가느다란 가닥을 복잡하게 뻗어나가는 듯한 ‘스파게티 괴물'과 비슷한 모습이 된다.
흥미롭게도 실제 타이탄 표면에서 확인된 여러 호수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실제 파도가 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모델이 관측 결과를 가장 잘 재현한다. 이렇게 천문학자들은 타이탄 호수 가장자리에 대한 분석을 통해, 타이탄 호수에서도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이번 발견을 통해 타이탄에서도, 비록 호수를 채우고 있는 액체의 주성분이 액체 물이 아닌 전혀 다른 메테인이라 할지라도, 지구에서처럼 바람이 불고 그에 밀려 호수 표면이 출렁거리는 파도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지구 바깥 다른 천체 표면에도 액체로 채워진 바다, 호수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도 지구의 바다, 호수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더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도의 존재는 타이탄 호수의 생태를 추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된다. 파도는 물리적으로 호수, 바다 표면의 물질과 더 깊은 심층의 물질이 골고루 더 잘 섞일 수 있게 해주는 물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분석에서 활용했듯이 호수, 바다 가장자리, 해안가의 지형을 바꾸는 침식 작용을 일으키면서 보다 더 다양한 생태계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질학적인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이탄의 대륙에 가라앉아 모여있던 화학 성분들이 다시 파도와 함께 부서지면서 호수, 바다 속으로 녹아드는 화학적인 작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파도는 주변 생태계 칵테일을 더 다양하고 아름답게 뒤섞어주는 과정인 셈이다.
만약 우리가 타이탄의 호숫가에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면, 낮게 깔린 지독한 메테인의 구름 아래에서 출렁거리는 호수의 파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도와 부딪히면서 호수 가장자리의 절벽에 있던 암석과 얼음들이 조금씩 깍여나가는 장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토성 곁을 맴도는 작은 위성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던 타이탄은 지구 못지않게 아주 아름답고 복잡한 지질학적인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인 것이다.
카시니 탐사선은 단순히 타이탄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넘어서 직접 착륙선을 분리해 타이탄 구름 속으로 떨어뜨리는 탐사도 진행했다. 카시니에서 분리된 하위헌스 착륙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바깥 다른 행성 표면도 아닌, 다른 위성 표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짙은 구름을 뚫고 무사히 착륙한 하위헌스 착륙선은 숨어 있던 타이탄 표면의 진짜 모습을 들춰냈다.
하위헌스의 착륙을 통해 직접 바라본 타이탄의 표면은 아주 놀라웠다. 타이탄의 대기권과 호수를 가득 채운 메테인은 타이탄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더 크게 기대하는 근거가 되었다. 과하게 높은 메테인 함량은 지구 생명체에게는 독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메테인은 지구 생명체들이 생명활동을 하면서 남기는 주요 부산물이다. 어쩌면 타이탄을 가득 채운 메테인의 존재는 그곳에서 숨어 살고 있을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들의 날숨의 흔적일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타이탄도 목성과 토성 곁을 맴도는 얼음 위성, 유로파나 엔셀라두스와 마찬가지로 꽁꽁 얼어붙은 얼음 표면 아래에 액체 물로 채워진 더 거대한 바다가 숨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타이탄의 밀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실상 타이탄 전체 부피의 약 40-60%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지하 바다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조그만 타이탄이 품고 있는 액체 바다의 전체 양은 지구 표면에 고여있는 전체 바다의 양보다 6배나 더 많을 수도 있다. 우주 생물학 관점에서 타이탄은 꼭 방문해야 할 탐나는 곳이다.
토성 곁을 맴돌던 유일한 탐사선 카시니의 임무가 막을 내리면서, 현재 토성 곁에는 아무것도 없다. 토성 탐사의 역사는 잠시 쉼표를 찍었다. 천문학자들은 다시 토성과 타이탄을 더 깊게 살펴보는 새로운 미션을 준비하고 있다. 카시니 탐사선이 함께 싣고 갔던 하위헌스 착륙선은 단순히 타이탄의 구름 속에서 낙하산을 펼치고 천천히 떨어지면서 끝났다. 따로 바퀴가 달려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착륙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추락에 가까웠다. 떨어진 그 위치에 그대로 남겨진 채 그 주변의 좁은 영역만 겨우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30년경 발사가 계획된 차세대 타이탄 미션, 드래곤플라이 미션은 조금 특별하다.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드론을 띄워서 타이탄 곳곳을 누비면서 호수와 하늘을 직접 살펴보는 미션이다. 이미 앞서 화성 탐사선 퍼서비어런스 탐사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지구 바깥 다른 천체에서 드론으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이제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잠자리처럼 타이탄의 하늘을 나는 드론을 꿈꾸고 있다.
따지고 보면 화성에서의 비행보다 타이탄에서의 비행이 더 쉬운 측면도 있다. 화성은 지구에 비해 대기압이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대기가 아주 희박한 환경이다. 그래서 프로펠러를 돌려도 충분한 양력을 얻기 어렵다. 그에 비해 타이탄은 아주 짙은 대기권으로 덮여 있다. 따라서 화성보다 더 쉽게 양력을 얻어 비행을 할 수 있다. 머지않아 드래곤플라이 미션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타이탄 호수의 출렁거리는 파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n419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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