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노 웨이 아웃: 더 룰렛’(노 웨이 아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드라마 속 반성 없는 흉악범이나 돈에 미쳐 무슨 짓이든 저지를 각오가 돼 있는 인간 군상을 보고 있으면 씁쓸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솟는다. 그런가 하면 날고 기는 배우들의 색다른 연기 변신을 보는 재미로 피가 뜨거워지는 느낌도 받는다. 지난 8월 21일 마지막 7, 8화를 공개한 디즈니플러스의 ‘노 웨이 아웃’에 시즌2의 희망을 불어넣는 이유다.
사실 ‘노 웨이 아웃’의 기본 스토리는 그리 신선하진 않다. 현실의 아동강간범 조두순을 떠올리게 하는 흉악범 김국호(유재명)가 13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다. 그렇지 않아도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인데, ‘가면남’이라 불리는 인물이 인터넷방송을 통해 200억원의 현상금을 걸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어떤 방식으로든 김국호를 죽이기만 하면 200억이란 거금을 지급된다는 현실 앞에 김국호를 노리는 사람은 많아지고, 흉악범인 그를 지켜야만 하는 형사 백중식(조진웅) 같은 처지의 사람도 생긴다. 과연 김국호는 200억 현상금 앞에 무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김국호를 죽이는 사람은 누가 될까?
현실의 법이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가해자에게 사적 복수나 제재를 가한다는 설정은 근래 들어 많이 보이는 설정이다. 시즌2까지 나온 ‘모범택시’나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가 대표적인 작품. ‘노 웨이 아웃’ 또한 국민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사법 판단을 받은 흉악범이나 혹은 아예 법의 심판을 피해간 이들에게 ‘가면남’이란 미스터리한 인물이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단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직접 나서서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거액의 돈을 건다는 점, 그로 인해 겉으로는 ‘정의구현’을 외치지만 실상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려 든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노 웨이 아웃’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던 건 익숙한 사적제제물의 형식에 다양한 인간들의 욕망들을 생동감 있게 불어넣었다는 것. 투자 사기로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였다 ‘가면남’의 또 다른 현상금 10억원을 손에 넣으며 딜레마에 휩싸이는 백중식, 귀를 잘리면서 얻을 예정이었던 돈을 백중식에게 빼앗긴 뒤 김국호를 자신 앞에 데려오라며 백중식을 협박하는 윤창재(이광수), 자신의 정치 생명을 살리고자 김국호를 이용하려는 호산시장 안명자(염정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김국호에게 접근하는 변호사 이상봉(김무열), 평생 김국호로 인해 상처받은 김국호의 아내 서윤주(최희진)와 아버지가 김국호이기에 음악 천재임에도 제대로 살아나갈 수 없는 아들 서동하(성유빈) 등이 얽힌다.
각자의 욕망과 이해타산이 얽히고설키면서 빛나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연기.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철면피 흉악범 김국호를 연기한 유재명은 단연 그 선두에 서 있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 ‘행복의 나라’의 전상두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비호감 캐릭터를 스스럼없이 소화하며 은퇴작 논란을 일으켰던 배우 리스트의 최고봉에 올라섰다.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와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으로 전천후 활약 중인 염정아의 정치인 안명자 연기도 기가 막히다. 순간순간 코믹하면서도 정치인의 추악하고 불쾌한 민낯을 활어처럼 소화한다. 본업인 연기보다 예능으로 더 친숙했던 이광수의 핏발 선 연기는 어떻고. 핏발 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가 화면 밖을 뚫고 나올 기세다.
능글맞은 현실주의자 이상봉 역의 김무열과 그간 침착한 정신과 의사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최희진의 심연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서린 연기 등 전반적으로 ‘노 웨이 아웃’은 익숙하다 여겨온 배우들의 익숙하지 않은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김국호에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인간들 중 복수심을 안고 킬러 뺨치는 액션을 선보이는 할머니도 인상적.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대만 배우 허광한이 킬러 ‘미스터 스마일’로 출연한다는 점도 팬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그래서 김국호는 어떤 결말을 맞느냐고? 김국호를 죽이라 사주하는 ‘가면남’의 정체는 뭐냐고? 어쩌면 ‘노 웨이 아웃’에서 김국호의 끝이나 ‘가면남’의 정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요소일 수 있다. 그보다는 김국호로 대변되는 허술한 사법부의 판단과 국민의 법감정 사이의 괴리,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 다양한 사유로 발생하는 2차 피해자들의 괴로움, 거액의 돈 앞에 인간은 어디까지 굴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등이 드라마의 숨가쁜 서사 사이사이를 메우며 곱씹게 한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단죄하고, 끝을 모르는 고통 속을 살아가는 피해자를 아주 조금이나마 위무한다는 점에서 사적제재물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휘몰아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노 웨이 아웃’이 또 다른 흉악범을 내세워 시즌2로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란 소리. 물론 일말의 씁쓸함은 남는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사적제재물이 인기일지, 이런 작품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끄는 이 땅의 현실은 얼마나 불행한 건지 하는 씁쓸함.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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