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국의 록밴드 조이 디비전의 데뷔 앨범 ‘Unknown Pleasures’의 커버 앨범 아트는 꽤 인상적이다. 지글지글하게 요동치는 곡선 형태의 패턴이 여러 줄 겹친 독특한 디자인이다. 이건 최초로 발견된 중성자별, 펄사 PSR B1919+21에서 방출된 전파 스펙트럼 관측 데이터를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자신들의 음악 세계가 펄사만큼이나 미스터리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담았다.
1967년 천문학자 조셀린 벨은 멀라드 전파 천문대를 통해 아주 이상한 천체를 포착했다. 특정한 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아주 짧은 간격으로 일정하게 전파 펄스가 날아왔다. 1.337초에 한 번씩 0.04초 정도 길이로 전파 펄스가 날아왔다. 너무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연 현상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떤 외계인이 인공적으로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은 녹색 인간을 뜻하는 ‘리틀 그린 맨(LGM, Little Green Man)’이라는 별명으로 이 신호를 불렀다.
아쉽게도 이 전파 펄스의 정체는 외계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존재였다. 아주 거대한 별이 높은 밀도의 작은 덩어리로 붕괴하면서 남긴 중성자별이었다. 거대했던 별이 매우 작은 크기로 붕괴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중성자별이 된다. 중성자별은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는데, 자기장의 축은 자전축에 대해 살짝 기울어질 수 있다. 자기장을 따라 중성자별은 강한 에너지를 토해낸다. 그런데 실제 자전축과 자기장 축이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다 보니 중성자별이 토해내는 에너지 제트의 방향도 일정한 주기로 조금씩 회전하게 된다. 불빛이 돌아가는 등대처럼. 일정한 주기로 깜빡이는 펄스 신호와 같은 전파를 방출하는 별이라는 뜻에서 펄사라고 부른다.
보통 펄사는 아주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이기 때문에 펄스 신호의 주기도 굉장히 짧다. 중성자별 하나가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거의 수 밀리초 수준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펄사 중에서 가장 빠르게 자전하는 펄사는 2004년에 발견된 PSR J1748−2446다. 이 펄사는 1분에 무려 4만 3000바퀴를 자전한다. 분당 회전수로 보면 4만 3000 RPM이란 뜻이다. 현재 RPM이 가장 높은 슈퍼카가 고든 머레이의 T50 모델로 1만 2100 RPM을 자랑한다. 거대한 중성자별이 무려 슈퍼카보다 거의 3~4배 가까이 더 빠르게 회전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통 펄사의 세계에서는 아주 빠른 속도, 짧은 주기가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아주 긴 주기로, 너무나 느리게 자전하는 펄사를 발견했다. 너무 주기가 길고 너무 느려서 일반적인 펄사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이상한 펄사는 놀랍게도 그 자전 주기가 1초도, 1분도 아닌 53분에 달한다! 거의 한 시간을 주기로 아주 느리게, 천천히 자전한다! 역대급으로 느리게 자전하는 이 펄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번에 포착된 너무나 느린 펄사는 정말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원래 천문학자들은 밤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밝기가 변하면서 급변하는 감마선 폭발 천체와 같은 급격한 천체들을 모니터링할 계획이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급격한 현상이기 때문에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다보면 놓치기 쉽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한꺼번에 넓은 영역의 하늘을 훑어보면서 급변하는 현상을 한 번에 포착할 필요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서호주 넓은 사막에 펼쳐진 ASKAP 전파 망원경을 활용했다. 각각 12m 크기의 거대한 접시 모양 안테나가 36개가 모여서 마치 하나의 안테나처럼 같은 방향의 하늘을 바라본다. 사막에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미어캣 무리 같다. 이 망원경으로 총 30스퀘어 디그리의 면적, 보름달 150개가 덮을 수 있는 아주 거대한 크기의 하늘을 훑어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통해 2022년 10월 15일 총 여섯 시간에 걸쳐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빠르게 밝기나 위치가 변하는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모니터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이상한 현상이 포착되었다. 1만 6000광년 거리에 떨어진 별 ASKAP J1935+2148에서 매 3225초에 한 번 10~50초 길이의 감마선 펄스가 반복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3225초 간격으로 반복되는 펄스라는 건, 무려 53분에 한 번씩 아주 느리게 펄스가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관측된 이 수수께끼 별의 스펙트럼 형태를 보면 분명 일반적인 펄사처럼 보인다. 다만 그 주기가 수 밀리초, 수초도 아닌 53분에 달하는 아주 느린 주기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이번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ASKAP J1935+2148에 조금씩 다른 세 가지 형태의 펄스 형태가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우선 10~15초 길이의 가장 강한 세기로 방출되는 펄스 신호가 총 15번 파악되었다. 그 다음으로 그에 비해 약 26배 정도 세기가 훨씬 약한 펄스 신호가 있다. 이 약한 신호는 약 370밀리초의 짧은 길이로 방출되며 전체 관측 기간 동안 총 두 번 파악되었다. 마지막으로 뚜렷한 펄스 신호를 방출하지 않는 상태가 섞여 있었다. 이렇게 지속 시간과 세기가 각기 다른 펄스 신호가 약 53분 간격으로 방출되는 아주 복잡한 형태를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이 역대급 느림보 펄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붕괴한 중성자별이 빠르게 자전하면서 만들어지는 펄사로는 이해할 수 없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자전하는 중성자별 펄사의 주기도 겨우 76초 수준이다. 1분 조금 넘는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한 바퀴를 도는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발견된 느림보 펄사의 자전 주기는 53분이다. (53초가 아니다!) 이런 엄청나게 느린 주기로 방출되는 펄스 신호를 설명하려면 조금 다른 방식의 펄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성자별이 아닌, 백색왜성이 펄사가 되는 가능성이다.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백색왜성은 중성자별에 비해서 조금 덜 극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질량이 가벼운 별이 핵융합을 모두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외곽의 물질을 날려버리면 그 중심에 남아 있는 높은 밀도의 핵이 남게 된다. 더 이상 핵융합을 못 하기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지는 못하고, 폭발 직후 남아 있는 열기가 서서히 식어갈 뿐이다. 이렇게 남게 된 뜨거운 표면 온도와 작은 크기를 갖고 있는 왜소한 찌꺼기 덩어리를 백색왜성이라고 한다. 중성자별은 그보다 훨씬 더 무거운 별이 붕괴하면서 남기게 되는 더 극단적으로 높은 밀도의 찌꺼기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앞서 2016년 천문학자들은 중성자별뿐 아니라 백색왜성에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방출되는 전파 펄스가 관측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전갈자리 방향으로 380광년 거리에 떨어진 별 AR Scorpii는 적색거성과 백색왜성이 함께 짝을 이뤄 궤도를 돌고 있는 쌍성이다. 이곳에서 천문학자들은 약 1.97분 간격으로 일정하게 방출되는 전파 펄스 신호를 포착했다. 물론 이번에 발견된 53분 주기의 아주 느린 펄사에 비하면 여전히 주기가 짧지만, 수 밀리초 스케일로 자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기존 중성자별 펄사에 비하면 매우 느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포착된 느림보 펄사도 어쩌면 곁에 다른 동반성을 거느린 채 일정한 주기로 펄스를 내뿜는 백색왜성 펄사일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칠레의 VLT 망원경의 적외선 관측 장비 HWAK-I를 통해 ASKAP J1935+2148 주변 하늘을 관측했다. 하지만 그 주변에서 적외선을 방출하는 별다른 주변 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곁에 무언가 다른 동반성을 함께 거느린 채 쌍성을 이루고 있는 백색왜성 펄사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펄사의 자전 주기를 통해 이 별의 대략적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그 분석 결과도 굉장히 당황스럽다. 별의 자기장 세기, 별의 표면이 휘어진 곡률 등 다양한 요인을 아주 폭넓은 범위에 걸쳐 가정하고 이번 관측으로 확인된 아주 느린 자전 주기를 대입해본 결과, 만약 이 별이 정말 백색왜성 펄사라면 일반적인 백색왜성의 사이즈인 태양 반지름의 0.14배를 훨씬 벗어나는 절대 불가능한 수치가 나온다. 따라서 이 펄사를 단순히 백색왜성 펄사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아주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고 있는 펄사, 마그네타일 가능성이다. 보통 마그네타는 아주 강력한 자기장으로 인해 그 주변에서 주기가 다른 복잡한 펄스 신호를 함께 방출한다. 이번에 관측된 ASKAP J1935+2148의 변칙적이고 복잡한 전파 스펙트럼 형태도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어쨌든 마그네타도 결국에는 아주 자기장이 강한 중성자별 펄사라는 점이다. 어떻게 그 작은 크기로 붕괴한 고밀도의 중성자별이 50분이 넘는 주기로 천천히 자전하면서 펄스 신호를 방출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해결하지 못한다.
과연 이번에 발견된 이 느림보 펄사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중성자별 펄사, 또는 최근에 발견되기 시작하고 있는 백색왜성 펄사, 둘 중 하나에 해당할까? 어쩌면 전혀 다른 세 번째 카테고리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4-02277-w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2-01688-x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8620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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