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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관심종자들의 도파민 자극 방송 '더 인플루언서'

'팔로워가 곧 돈' 현실 직관적으로 묘사…단순 '어그로' 아닌 심도있는 능력 묘사 '아쉬워'

2024.08.16(Fri) 10:58:33

[비즈한국] 역시 도파민의 최고봉은 넷플릭스인가. ‘더 인플루언서’를 보고 있으면 넷플릭스가 도파민 중독 시대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더 인플루언서’는 영향력이 곧 몸값이 되는 대한민국 인플루언서 77인 중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경쟁하는 소셜 서바이벌 프로그램. 넷플릭스가 선보인 드라마 ‘셀러브리티’의 현실판을 가져온 셈이다.

 

77인의 인플루언서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극 I’ 성향은 기가 빨릴 수 있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옷차림과 게임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특수분장으로 장식한 이들이 장내를 채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호기심에 ‘더 인플루언서’ 1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내심 이내 방송을 포기할 것 같았다. ‘관종’을 싫어하는 ‘극 I 성향’에 ‘유교걸’인지라 팬티 노출 차림으로 등장한 뷰티 패션 유튜버 큐영을 볼 때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것. 그런데 충격에 적응하고 나면 궁금증이 치솟는다. 나름 인기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정도는 아는 트렌디한 중년이라 자부했는데, 77인의 인플루언서 중 태반이 모르는 얼굴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재질의 인플루언서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정말 놀랐다. 심지어 틱톡 크리에이터 시아지우는 무려 275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팔로워가 있음에도 몰랐거든. 

 

‘더 인플루언서’는 2750만 명이란 어마어마한 팔로워 수를 지닌 틱톡커 시아지우와 1세대 크리에이터로 꼽히는 대도서관 등 거물급 인플루언서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끈다. 심지어 이들이 게스트로 모시는 이들도 배우 설인아, 가수 에일리, 댄서 아이키 등 화려하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1세대 크리에이터로 꼽히는 대도서관부터 이사배, 진용진, 빠니보틀, 오킹, 장지수 등 스타 인플루언서들을 죄다 모은 섭외력이 우선 돋보인다. 대중성 외에도 코스프레 최강자 마이부, 사주 크리에이터 도화도르와 무속 크리에이터 연꽃금화선녀 등 자신만의 독특한 콘텐츠가 돋보이는 인플루언서들도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연예인도 출연했다. 자기 스스로 ‘싸이월드로 흥망성쇠를 누린, 원조 인플루언서’라고 설명하는 ‘아시아 프린스’ 장근석과 배우 기은세가 ‘더 인플루언서’에 출연해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했다. 

 

‘아시아 프린스’이자 자기 스스로도 ‘싸이월드로 흥망성쇠를 맛본 원조 인플루언서’라고 말하는 배우 장근석. 연예인이지만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빠른 판단을 보이며 분투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개개인이 워낙 파급력이 높은 인플루언서들인지라 뭘 해도 눈길을 끌고 도파민이 자극되리라 예상은 되었다만, 1라운드부터 77인 중 30명만 남기고 탈락시킬 줄은 몰랐다. 인플루언서들의 팔로워 수는 2750만 명부터 1만7000명까지 어마어마한 간극을 보인다. ‘더 인플루언서’는 우승 상금 3억 원을 이들의 팔로워 수 비율로 환산한 몸값으로 책정하고, 라운드마다 생기는 탈락자의 몸값은 생존자에게 흡수되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이 3억 원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몸값은 팔로워 수가 곧 돈인 현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영리한 방법인 셈.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를 찾는 라운드도 눈길을 끌었다. 솔직히,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중 대다수는 대중의 관심만 추구하는 ‘관종’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어그로’를 끌면서 자칭 크리에이터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경멸의 시선도 내심 있었다. 그런데 ‘좋아요’와 ‘싫어요’를 각각 15명씩 투표하는 1라운드 미션이 주어졌을 때, 이 미션의 핵심이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라고 빠르게 파악한 진용진의 모습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보통 ‘좋아요’의 숫자에 ‘싫어요’ 숫자를 차감하는 방식이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진용진은 관심이 곧 영향력인 인플루언서의 특수성을 캐치하며 ‘싫어요’를 갈구, 영리하게 살아남는 모습을 보인다. 

 

1, 2라운드에서 미션의 핵심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빠르게 ‘어그로’를 끌어 생존했던 진용진. 참가자가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라이브 방송으로 기획력과 순발력 등 많은 것을 보여주는 2라운드 미션에서도 각자의 접근법이 달라 흥미로웠다. 유명 연예인을 게스트로 섭외해 눈길을 끄는 사람도 있고, 기존 콘텐츠 중 가장 인기 있던 콘텐츠 위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도 있고, 시청자 수를 가장 많이 끄는 방법은 ‘어그로’라 판단해 다루는 콘텐츠는 물론 방제까지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유리하지 않겠느냐 싶겠지만, 접근법에 따라 쉽게 생존하는 이들도 있었고, 겨우겨우 턱걸이로 생존하는 이들도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외에도 사진 한 장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알아보는 미션, 메타인지·파급력·설득력·콘텐츠 분석력 등으로 인플루언서의 필수 자질 검증 미션 등을 거치며 이들이 ‘어그로’ 하나만으로 이런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끼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미션을 펼치면서 서로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고 영감을 받는 모습도 인상적. 경매를 통해 팀원을 정할 때 어떻게 살아남는지 빠르게 캐치하는 모습이나 아이 트래킹(Eye Tracking) 기술을 활용한 세 번째 사진 미션에서 사진에 텍스트를 크게 게시한 장근석 팀을 보고 이를 활용하는 모습 등 열려 있는 사고로 기민하게 남의 것을 흡수하고 소통하며 반응하는 인플루언서들의 능력이 돋보인다.
 

화제성 높은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이 방송의 큰 묘미. 빠니보틀이 왜 사람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지, 과즙세연은 어떻게 연 32억원의 수익을 올렸는지 방송을 보며 실감하게 된달까. 사진=넷플릭스 제공

 

물론 아쉬운 점은 많다. 도파민의 최고봉이라 할 만큼 ‘어그로’에는 성공했는데, 그에 반해 인플루언서들의 기획이나 편집 능력 등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후기 영상으로라도 보여줬으면 크리에이터로서 그들의 능력을 쉽게 체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인플루언서 사이에서도 ‘숏폼은 쉽게 돈 벌어’라는 편견이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해외에서 1000만, 2000만이 넘는 영향력이 있는 숏폼 크리에이터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미션이 전혀 없는 것도 아쉬운 지점. 최종 8인 안에 들었던 생존 인플루언서 중 각종 사회적 이슈에 휩싸인 인물이 있고, 우승자 스포일러 논란 등이 일었던 것도 대중의 기억에 남는 부정적인 요소. 

 

그렇기에 새삼 놀라웠던 인플루언서는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로 대중에게 유명한 이사배였다. 오히려 오래되어 신선한 재미는 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그로’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확실한 콘텐츠와 콘텐츠 분석력, 대중과의 친근한 소통력 등으로 매 라운드에서 생존해 진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아프리카BJ 과즙세연과의 맞대결 모습도 쾌감이 느껴지는 한 장면.

 

‘어그로’가 일상인 인플루언서의 세계에서 최대한 ‘어그로’를 지양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던 이사배. 콘텐츠의 퀄리티는 콘텐츠 분석력, 대중과의 소통이 뛰어나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인플루언서로 살아남는지를 증명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더 인플루언서’는 공개 직후부터 전 회차가 공개된 8월 13일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1위를 차지한 데다 글로벌 TOP 10 TV쇼(비영어) 부문 4위에 등극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도파민을 자극하고 싶다면 충분히 보상될 것이다. 7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물론 관심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현실과, 실상 우승 상금 3억원 정도는 우스울 출연자들의 수익 상황(과즙세연은 지난해 아프리카TV 데이터 여캠 1등으로 연 수입 32억원을 벌었다고)을 생각하면 뒤늦게 ‘현타’가 올 수도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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