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18년 동안 음원 정산을 한 번도 받지 못한 톱스타.’ 9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2년 전, 그것도 톱스타의 이야기다. 2022년 불거진 일명 ‘이승기 사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부조리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승기 같은 톱스타조차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이다.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에게 정산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또는 얼마나 벌었는지 아티스트는 알지 못하는 구조다. 아이돌의 정산 비율도 종종 화두에 오른다. 연습생 비용과 소속사에서 포함하는 각종 비용을 공제한 후에도 9 대 1에서 6 대 4 비율로 나눈다. 물론 비율이 높은 쪽이 기획사다.
논란이 일자 문체부와 국회는 소속사가 아티스트에게 ‘정산 내역’을 의무적으로 고지하게 하는 일명 ‘이승기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지난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아이돌 정산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5 대 5 계약인데 실제 가져가는 건 5%
아이돌 산업에서는 모든 비용을 공제한 후에도 아이돌보다 소속사가 더 많이 가져간다. 요즘 트렌드는 7 대 3 혹은 6 대 3이다. 한 소속사 대표는 “최근 중도 이탈 아이돌이 생기면서 초창기는 7 대 3으로 배분하다가 3~4년 차 이후부터 6 대 3 혹은 5 대 5로 중간 조정하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5 대 5 조건일 경우 순수익의 절반을 가져간다고 생각되지만, 그 절반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만큼 또 나눠야 한다. 멤버수가 많아지는 만큼 개인이 가져가는 비율은 줄어든다.
정지석 변호사(법무법인 남강)는 “실제 소속사에서는 표준계약서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더 확대해서 더 많이 공제한다. 또 분배 비율이 9 대 1까지 가게 되면, 멤버가 10명인 그룹은 1인당 정산 비율이 90 대 1까지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이돌은 실제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까? 비즈한국은 유명 아이돌 멤버 A 씨의 과거 정산표를 입수해 분석했다. 2009년 ‘표준 계약서’가 제정된 이후에 받은 정산서다. 멤버는 6명이며 수익 분배 비율은 5 대 5였다.
A 씨는 순수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실제로 수익의 50%를 가져가진 못했다. 매출에서 모든 지출을 뺀 후 절반은 회사가, 절반은 멤버 6명이 나눴다. 데뷔 다음 해인 1년 차 1분기 때에는 수익이 마이너스였는데, 이 비용은 2분기에 공제됐다.
실제 A 씨가 받은 순수익 대비 정산율은 5~16%로 비율이 매번 달라졌다. 특히 매출이 가장 많았던 2년 차 3분기 29억 2639만 8105원을 번 후 A 씨가 가져간 돈은 1억 2688만 997원으로 순수익의 5%에 불과하다.
계약 기간 동안 정산 조건은 동일했지만, 소속사가 수익을 산정하는 방식은 매번 달랐다. 매출과 비용을 한 번에 계산한 후 수익을 나눌 때도 있었고, 음반과 매니지먼트 등 항목별로 나눠 수익을 각각 계산할 때도 있었다.
A 씨 측은 매출과 비용 금액이 의심스러웠다고 말한다. A 씨 측은 “3년 차 때 문제를 제기하자 소속사에서 정산 비율을 5 대 5에서 4 대 6으로 높여 주겠다며 달랬다. 그런데 정산 내역이 이상했다. 공연대금 5000만~6000만 원을 누락하거나 타 그룹의 손실액을 우리 그룹의 정산 금액에 포함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A 씨 측은 “(비용에) 소속사 대표의 출장비를 포함하고, 프로듀싱비 명목으로 대표가 거액의 돈을 가져가기도 했다. 대표를 포함한 회사 임직원의 차량 리스비도 모두 우리 그룹의 비용으로 나갔다. 무대 의상은 대부분 협찬을 받았는데도, 한 무대에 일인당 몇 천만 원이 넘는 의상 비용을 공제했다. 멤버 1인이 1분기(3개월)에 마신 물값만 600만 원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내역이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정산 근거였다. A 씨는 한 번도 정산 증빙 자료를 받지 못했다. A 씨 측은 “A4용지에 숫자로만 금액이 쓰여 있었다. 영수증은 본 적도 없다. 회계사를 고용해 검토해보기도 했다.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 청구가 모두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법적 분쟁은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산은커녕 자료조차 받아본 적 없어”
7년 동안 아이돌 생활을 했던 멤버 B 씨 역시 “7년 동안 한 번도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산은 둘째치고 ‘정산 자료’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계약서상 정산 비율은 5년 차까지가 7 대 3, 그 뒤부터 6 대 4였다. 자료나 A4용지로 얼마를 사용하고 얼마를 벌었는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멤버도 있었는데, 이야기하면 ‘16억 있으면 내고 나가든가’ 하는 식이었다. 적자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소속사에 정산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곧 활동 중단을 의미한다. 지난 2022년 11월 선고된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민사소송 판결에 따르면 아이돌 멤버 C 씨는 2018년 전속계약 이후 소속사에 정산자료를 요청했지만, 3년간 한 번도 내역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2021년에야 ‘영수증과 정산자료’가 누락된 형식적인 자료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해 전속계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정지석 변호사는 “이승기 씨는 몇 십 년 동안 정산이 제로였다. 소속사들은 계약서에 (편법으로) 독소조항을 넣고, 공제할 비용을 확대한다. 이러한 정산 시스템이 지금도 계속되는 게 문제다. 이 계약 내용을 아티스트 측에서 수정하자고 했을 경우에는 기획사에서 계약을 안 한다. 최소한 아티스트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급여를 주는 등 착취하지 않는 정산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편에는 늘어나는 미성년 아이돌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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