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쿠팡 근로자 사망사고가 이어지면서 쿠팡 배송기사들의 근로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이 연일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배송 캠프에는 제대로 된 냉방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았으며, 기사들은 과다한 물량을 처리하느라 마감 시간에 쫓겨 잠깐의 휴식 시간도 확보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에어컨 없는 캠프에서 물류 작업 “쿠팡이 챙겨주는 건 생수 두 병이 전부”
쿠팡 배송기사(퀵플렉스)로 일하는 A 씨는 매일같이 인터넷에 ‘땀띠 치료법’을 검색한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긴 땀띠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배송기사 중 땀띠가 없는 기사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거다. 매일 아침 캠프(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소분하고 싣는 작업을 하는 동안 더위가 말도 못 한다. 말 그대로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했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온열 질환 환자가 속출하면서 쿠팡 배송기사들이 근무 환경에 대한 고충을 쏟아내고 있다. 배송기사들이 상품을 상하차 하는 캠프가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근무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주장이다. A 씨가 근무하는 캠프에는 냉방을 위한 에어컨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캠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것은 천장에 달린 환기용 실링팬이 전부다. 배송기사들은 “실링팬마저도 몇 대 없어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한 배송기사는 “물류 차량이 들어오는 진입로를 항상 열어 두다 보니 실외와 마찬가지 환경”이라며 “문을 열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다면 선풍기라도 배치해야 하는 게 아닌가. 더위가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통상 배송기사들은 상품 상하차 작업을 위해 하루 5시간가량을 배송 캠프에서 보낸다. 이른 아침 배송 상품을 차량에 싣는 작업도 고되지만, 특히나 힘든 것은 오후 배송을 위해 상품을 싣는 작업이다. 쿠팡은 다른 택배 업체들과 달리 다회전 배송 시스템을 운영한다. 주간 배송의 경우 오전, 오후 두 차례 캠프에서 배송 상품을 싣는 작업을 하는데 오후 배송의 경우 가장 더위가 극심한 시간인 13~16시 사이 상품 상차작업이 진행된다. A 씨는 “에어컨도 하나 없는 캠프에서 두 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작업해야 한다. 회사에서 챙겨주는 거라고는 350ml 생수 두 병이 전부”라고 푸념했다.
상품을 배송하는 과정에서도 더위와의 싸움은 이어진다. A 씨는 “더위 속에서 배송하다 보면 현기증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파트 지역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 고충이 덜 하지만, 계단을 이용해 배송하는 기사들은 정말 땀 범벅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송기사도 “배송을 끝내고 나면 땀으로 옷이 다 젖어 바지가 벗겨지지 않을 정도다. 더위 때문에 반소매, 반바지를 입고 싶지만 그러기도 힘들다”며 “쿠팡은 상품 배송 외에도 프레시백 회수까지 해야 한다. 프레시백 정리 과정에서 벨크로에 긁혀 상처가 많이 생긴다. 더위에도 긴 옷을 입고 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클렌징’ 조항 때문에 쉴 수도 없어
정부는 최근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폭염주의보 및 폭염경보 시에는 매 시간 10~15분씩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더위가 극심한 14~17시 사이에는 가급적 야외작업을 피할 것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매일 배송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기사들에게 한낮의 휴식 시간은 그림의 떡이다.
한 쿠팡 택배 기사는 “오전 7시 40분 캠프에 도착해 배송을 마감하는 시간이 저녁 8시다. 일에 능숙한 편이라 마감이 빠른 편이지만 배송 구역이 외곽이거나 복도식 아파트 등은 통상 3~4시간 더 소요된다. 밤 10~11시 퇴근하는 동료도 많다. 덥다는 이유로 어떻게 쉴 수 있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쿠팡은 폭염, 폭우 등 날씨로 인해 근무가 어려울 시에는 배송 업무를 중단하라고 공지하고 있다. 기상 문제로 인해 배송을 중단하게 되더라도 기사에게는 불이익이 없고, 배송 물량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기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배송기사들은 날씨 때문에 배송을 쉴 경우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한 배송기사는 “대리점의 월평균 배송 수행률이 95% 미만이면 대리점 구역 회수(클렌징) 조건에 해당한다. 대리점이 담당하는 구역이 줄게 되는 셈”이라며 “배송기사는 물론이고 고정 기사들이 쉴 때 배송을 대신하는 백업 기사들도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날씨 때문에 마음대로 배송을 중단할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는 있으나 마나 한 공지”라고 지적했다.
쿠팡의 배송기사 근무 환경은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왔다. 지난 5월 남양주2캠프에서 근무하던 배송기사가 사망했고, 7월에는 경북 경산에서 폭우 중 배송하던 기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달 제주지역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분류 작업을 하던 노동자도 사망하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쿠팡의 근로 환경 점검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7월 30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9명이 남양주2캠프를 방문해 노동 환경 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쿠팡 측은 사전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방문을 막았고, 현장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는 “택배 업계에서 쿠팡의 노동 강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회전 배송을 시행하고 있어 배송기사들의 운전 및 노동 시간이 길다”며 “예전에는 쿠팡이 배송기사들을 직고용하고 5일제, 52시간 근무, 연월차 수당 등을 제공해 업계에서 평판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위수탁 배송기사를 돌리고, 분류인력도 없이 배송기사들이 분류작업의 일부까지 담당하는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쿠팡은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노동 강도가 강하다 보니 폭염 등이 더해졌을 때 노동자 사고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진다. 배송기사 중 누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쿠팡은 근로자들이 강도 높게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클렌징 제도를 폐지해야 하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즈한국은 쿠팡 측에 캠프 근무 환경 등에 대해 질의했으나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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