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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 조정제 도입 후 의사 기소 더 늘어난 이유

정보 비대칭으로 환자에 오히려 불리 "차라리 소송"…환자 대변인제·국민 옴부즈만제 도입 방침

2024.08.09(Fri) 17:52:10

[비즈한국] 정부가 조정을 조력하는 제도인 ‘의료분쟁 조정제도’ 도입 이후에도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기소 건수가 증가하고 있어 그 원인에 관심이 쏠린다. 의료분쟁 조정제도를 두고 환자계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어려움을 겪어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의료분쟁제도 개선 협의체’를 운영해온 정부는 환자 권익 개선을 위한 ‘환자 대변인제’와 ‘국민 옴부즈만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가 ​6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환승센터 주변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최준필 기자

 

#국내 의사 기소 건수, 영국의 580배

 

우리나라의 의료분쟁 건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의료행위의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2022)’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8년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기소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다. 일본(연평균 51.5건)과 영국(연평균 1.3건)에 비해 14.7배, 580.6배에 이른다. 독일의 의료과실 인정 건수(연평균 28.4건)보다 26.6배나 많다. 활동의사 수 대비 기소 건수 또한 우리나라는 0.5%에 달한다. 일본은 0.02%, 영국 0%, 독일은 0.1%에 불과하다. 

 

정부가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인 ‘의료분쟁 조정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기소 건수는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조정제도 시행 연도인 2012년의 경우 기소 건수가 945건으로 오히려 전년(621건)보다 52.2% 증가했다. 같은 해 1심 형사공판은 878건으로 전년 대비 7.3%, 1심 민사재판은 1009건으로 15.2% 늘어났다. 사망이나 의식불명 시 자동개시하는 자동조정제도가 실시된 2017년도에도 기소 건수는 전년 대비 2.3%, 1심 형사공판은 7.3%의 증가율을 보였다. 다만 1심 민사재판은 970건에서 955건으로 1.5% 감소했다. 

 

환자계는 조정제도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에게 불합리해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소송 역시 입증 책임이나 시간 측면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부담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문서 작업은 환자가 하는 것보다 유리할 수 있어도 상당수의 자료를 결국 환자나 유족들이 준비해야 하고, 1심만 평균 2~5년 걸린다. 패소하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데 사망 사건은 의사 한 명당 4500만 원 정도여서 2명이면 비용이 1억 원에 가깝다. 그래서 최근에는 먼저 조정제도를 거치고, 조정이 안 되면 소송으로 가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환자계 “절차에서 환자들 배제…중대사건 아니면 조정 개시도 어려워”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른 의료분쟁 조정제도는 2012년 시작됐다. 피신청인(의사)이 조정 참여 수락 시 조정이 개시되며, 진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작성된 조사보고서를 의료인, 법조인, 소비자대표로 구성된 감정부에서 심사한다. 심사 후 손해배상책임 유무와 배상액 등을 판단해 조정을 권유하는 방식이다. 120일 이내 조정·중재를 마무리할 수 있어 비교적 빠른 시간 내 분쟁 해결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의료계와 환자계 양쪽 모두가 의료사고 감정 및 조정·중재 절차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5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과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이유를 알리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환자계는 △환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점 △환자에게 법률적 지원이 없는 점 △피신청인이 조정 참여를 수락하는 경우에만 조정이 개시되는 점 등에 불만을 갖는다. 조정절차 내내 조정 신청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면 환자는 개입할 여지가 적고, 조사관이 조사를 진행하다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면 보내주는 정도라는 것. 마지막에 조정할 때 ‘과실이 이 정도이고 배상액이 얼마 정도인데 조정에 응하겠나’를 물으면 답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안기종 대표는 “비전문가인 환자들은 신청서를 직접 쓰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피신청인이 조정 참여를 수락하는 경우에만 조정이 개시되는 점도 비판을 받는다. 사망, 의식불명, 중증장애 사건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한 일반 사건은 조정에 앞서 피신청인 측의 수락이 필요하다. 안기종 대표는 “법안 도입 초기부터 지적했던 부분”이라며 “다만 자동조정제도(사망 등의 경우 자동으로 조정 개시) 도입 이후 피신청인 의지와 상관없이 법 감정서도 나오고 조정 절차에 돌입하는 등 환자의 피해구제 측면에서는 크게 발전했다. 그동안 병원 측은 조정을 하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가 많았고, 환자들은 소송을 하거나, ​돈이 없으면 그냥 포기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 같은 환자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환자 대변인제’와 ‘국민 옴부즈만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환자 대변인제는 △의료사고 초기 피해자 관점에서의 전문 상담 △감정 쟁점 선정 △감정 결과 설명 등의 방식으로 환자를 조력하는 것이다. 국민 옴부즈만제는 3자 협의체(의료분쟁중재원-환자·소비자·시민단체-의료인단체)를 구성해 의료사고 감정에 대한 모니터링 및 평가하는 제도다. 환자 대변인제의 경우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영구장애 발생 등 중상해의 사건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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