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침수 위험' 서울 반지하 7632가구, 차수벽 설치 안 한 황당한 이유

전체 반지하주택의 31% 달해…"집값 떨어진다" 집주인 반대한 탓

2024.08.08(Thu) 18:37:06

[비즈한국] 서울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2022년 8월 8일 오후 9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40대 발달장애인 여성과 그 여동생, 13살 난 여동생 딸이 침수로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주택에서도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서울에 내린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반지하주택을 가장 먼저 덮쳤다.

 

2022년 8월 8일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 모습. 사진=차형조 기자


반지하주택은 침수에 취약하다. 주거 공간 절반 가량이 지면 아래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특성상 많은 비가 내리면 빗물이 실내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지상으로 향하는 출입문이나 창문은 침수 시 수압이나 방범창에 막히기 일쑤다. 반지하주택에 물막이(차수)판·역류방지밸브·수중펌프 등 차수시설이나, 개폐식방범창·침수경보기·피난사다리 등 피난시설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시는 침수 사고가 발생한 2022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서울 시내 반지하주택 상태를 전수 조사하고, 지난해 7월 침수 위험이 있는 반지하주택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서울시에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전체 반지하주택 23만 7619호 중 2만 8439호(12%)가 차수시설(2만 4842호)이나 피난시설(1만 4586호) 등 침수방지시설이 필요한 침수 위험 가구였다.

#채광·환기 불편, 집값 하락 우려해 거부

서울시가 지난해 빗물을 막아줄 시설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서울 시내 반지하주택 2만 4842호 중 9440호(38%)는 6일 현재 차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여기에는 기존 침수 이력으로 차수시설 필요성을 인정받은 반지하주택 1만 6855호 중 5405호(32%)도 포함됐다. 전수조사 이후 주택이 멸실되거나 거주민이 떠난 가구, 구조적으로 설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가구를 제외하면 현재 실질적으로 침수 위험에 노출된 반지하주택은 7632가구(31%)로 파악된다.

차수시설이 제때 설치되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 집주인 반대 때문이다. 서울시는 차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반지하주택 9440가구의 미설치 사유를 △집주인 미희망(4738호) △거주자 3회 이상 부재(2894호) △구조적 설치 불필요(1230호) △공가(397호) △멸실(181호)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차수시설 설치를 반대한 반지하주택 집주인들은 채광이나 환기 불편,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해 설치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난시설 설치 현황은 더욱 열악하다. 서울시는 당초 반지하주택 상태조사에서 피난시설 설치가 필요한 반지하주택을 1만 4586가구로 파악했는데, 자치구 조사 과정에서 이 숫자는 지난 6월 기준​ 1만 5252가구까지 늘었다. 하지만 실제 피난시설을 설치한 반지하주택은 5108가구(33%)로, 피난시설이 필요한 나머지 반지하주택 1만 144가구(67%)는 여전히 피난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서울시 치수안전과 관계자는 “차수시설 설치를 희망하는 가구에는 대부분 무료로 설치를 해주고 있는데, 집주인이 거부하면 설치를 강제할 수단이 현재로서는 없다. 반지하주택도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설치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 건축기획과 관계자도 “현재 피난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가구 대부분은 무응답 또는 미동의 세대”라며 “기존에 반지하주택 전수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피난시설 설치 필요 가구에 자치구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피난시설 필요 가구가 더해지면서 수치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 모습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차형조 기자


#세입자는 비만 오면 노심초사…“강제력 동원해야” 목소리도  

침수 피해를 겪었던 반지하주택 주민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거주중인 70대 세입자 A 씨는 “집을 나서던 참에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 안에 물이 들어올까 걱정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다행히 금방 그쳐서 집을 나섰다. 2년 전에 큰비가 왔을 때는 실내에 물이 차서 바가지로 비가 그칠 때까지 수 시간 물을 퍼냈다. 비가 참 무섭다”고 말했다. 비즈한국이 A 씨를 만난 7일 오전 신림동에는 국지적인 호우가 내렸다. A 씨가 사는 반지하주택에는 차수시설이 없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2022년 침수로 인근 반지하주택 주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값싼 집을 찾던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지하에 가면 살기 불편한 것을 넘어 죽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현재 반지하주택을 찾는 수요자는 대부분 외국인 학생이다. 한국인은 반지하를 찾더라도 지대가 높은 곳을 보여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반지하주택에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강제할 방법은 있다.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침수위험지구 등 행정안전부장관이 침수 피해가 우려된다고 인정하는 지역에서는 반지하주택에 물막이판, 역류방지 밸브 등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나 일선 지자체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민 반발을 의식해 지구 지정이나 지정 요청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에서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종로구 광화문 일대, 강서구 화곡1지구, 서초구 방배사당지구, 서초구 서초지구, 강서구 개화지구 등 5곳뿐이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물막이판과 같은 침수방지시설은 사실상 건물에 심각한 하자를 주는 설치물이 아니다. ​서울시가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면서 집주인 동의를 강조하는 것은 안전 문제에서조차 건물주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며 “적어도 서울시가 침수방지시설이 필요하다며 위험하다고 분류한 반지하주택에는 행정강제력을 발동해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반지하주택 거주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반지하(지하)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총 20만 1000가구로 우리나라 전체 반지하주택 거주자 32만 7000가구의 61%를 차지한다. 서울시 반지하주택 거주 비중은 5.8%로 인천(2.2%), 경기(1.9%)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반지하(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월세 51%, 전세 22%로 대부분 자기집이 아니었다.

세입자들이 반지하주택에 사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현재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 원룸 전세 매물 가격은 3000만 원, 월세 매물 가격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수준으로 같은 건물 지상층 임대 매물과 비교했을 때 30%~40%가량 저렴하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지난 7일 반지하 폭우참사 2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반지하는 물론 옥탑을 개조한 집에서 살아왔다. 반지하는 안전하지도, 쾌적하지도 않았지만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세입자가 값비싼 서울에서 몸을 뉘일 수 있는 최선의 거처였다”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핫클릭]

·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 2세 체제 가시화, 지분 확보까진 '먼 길'
· LIG넥스원 비궁, 미국 수출길에 도사린 두 가지 변수
· 신도림 접고 청주·부산·광주로…현대백화점 지방 출점 나서는 까닭
· 장마 코앞, 지난 10년간 지역별 기상재해 피해액 따져보니
· 영화 '기생충'으로 이슈화, 서울시민 6%가 반지하에 산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